
논란의 발단은 에토 농림상이 한 행사에서 “나는 쌀을 사 본 적이 없다. 지지자들이 워낙 많이 줘서 집에 팔 정도로 있다”고 발언한 데서 비롯됐다. 말 그대로, 들끓는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소비자와 농가의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공감 능력이 결여된 발언”이라는 비판이 쇄도한 것. 결국 에토 농림상은 5월 21일 사의를 표명했고,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즉각 사표를 수리했다. 사실상 경질된 셈이다.
이시바 총리는 같은 날 후임 인사로 고이즈미 신지로 중의원을 지명했다. 고이즈미는 그간 독특한 발언으로 주목을 받아온 정치인이다. 일본에서는 그의 화법을 이른바 ‘신지로 구문’이라 칭하며 밈(Meme,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으로 소비해왔다. 한국에서는 2019년 9월 당시 환경상이었던 고이즈미가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의에 출석했을 때 “기후변화와 같은 큰 문제를 다룰 땐 즐겁고(Fun), 쿨하고(Cool), 섹시해야(Sexy) 한다”고 언급한 것이 화제가 돼 ‘펀쿨섹좌’라는 별명을 얻었다.
고이즈미가 농림상에 취임하자 당초 인터넷상에서는 냉소적인 반응이 적지 않았다. ‘신지로 구문’이 다시 밈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신지로 구문이란 동어반복과 순환논증의 오류, 그리고 뻔한 말을 지나치게 비장하게 표현하는 화법을 뜻한다. 일례로 고이즈미는 공식 석상에서 “지금처럼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지금처럼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모호한 발언으로 이슈가 된 바 있다.

일본의 한 정치부 기자는 “쌀값 급등,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문제, 농가 고령화와 인력 부족 등 심각한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농정 실무 경험이 부족한 고이즈미의 기용은 실효성에 의문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저널리스트 이노우에 도시유키 또한 “고이즈미가 인터넷 밈으로 인지도가 높긴 하지만, 밈화가 심화될수록 정치인으로서의 신뢰를 잃을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상이 이번 개혁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낼 경우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부상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실제로 고이즈미 농림상은 취임 직후부터 속도감 있는 정책과 이목을 끄는 발언으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지난 5월 26일, 고이즈미 농림상은 ‘쌀 대책 집중 대응팀’의 발대식을 갖고 “쌀값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하루빨리 불식시키겠다”고 밝혔다.

정책 발표 후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5㎏ 비축미 한 봉지가 시중 쌀의 반값인 2000엔에 매대에 등장했다. 높은 쌀값에 지친 서민들은 이러한 고이즈미의 속전속결을 반기는 분위기다. 반값 쌀을 사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까지 빚어졌다.
그러나 자민당 내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일본농협과 쌀 생산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민당의 이른바 ‘농림족’ 의원들은 “고이즈미 농림상이 당과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쌀 정책을 결정한다”고 비판했다. 당 농림족의 핵심인 노무라 데쓰로 전 농림상은 “고이즈미가 아버지를 닮아 혼자 판단하고 언론에 말한다. 규칙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고이즈미 농림상의 부친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과거 자민당 일부 세력과 갈등을 빚으며 ‘우정공사(우체국) 민영화’를 밀어붙였던 점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고이즈미 농림상의 정책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신문은 “이시바 총리가 농업개혁을 전면에 내세워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고 돌파구를 찾으려는 전략”이라고 전했다. 30%대의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고 있는 이시바 총리는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쌀값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지지통신은 “몰락 직전의 이시바라는 성(城)에 고이즈미라는 무기가 등장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5월 말 여론조사를 보면, 고이즈미 신임 농림상에 대해 기대감을 나타낸 응답자는 65%였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축미 방출만으로는 쌀값 안정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도 폭염으로 인한 작황 부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생산 기반 강화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비판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