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순형 의원 등 민주당 중도파들이 지난 16일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50여명이 넘는 중도파는 분당사 태를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입장. 이종현 기자 | ||
‘2단계 신당창당론’이란 일단 당내 신·구주류와 외부 영입인사 중심으로 ‘통합신당’을 창당(1단계)한 뒤 내년 초 독자 신당을 창당할 가능성이 높은 한나라당 탈당파, 개혁당, 개혁신당추진연대회의(신당연대) 등과 합당(2단계)을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구상은 당내 구주류의 반발로 범 개혁세력을 총결집하는 연합신당 창당이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힌 데서 출발했다. 구주류를 설득해서 신당을 추진할 경우 당밖 개혁세력들이 불참, 국민들에게 신선감을 줄 신당창당이 불가능해진다. 반면 신주류들이 탈당, 개혁신당 창당을 추진하기에는 신당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너무 낮다.
여기에는 호남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면서 차기 총선과 관련해 호남권과 수도권 지역 신주류 및 중도파 의원들의 불안감이 증폭된 상황도 한몫을 했다.
신주류 중진의원의 한 측근은 “이 같은 구상이 정치적 현실감이 있는 신주류 중진의원들 간에 비공식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최근 구주류와의 ‘통합신당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도 신주류 중진들의 이 같은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주말부터 신주류측은 ‘통합신당’ 창당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정대철 대표 중재로 신주류의 이해찬 장영달, 구주류의 유용태, 장성원 의원 등이 참여한 조정회의는 지난 18일 첫 모임에서 오해를 상당부분 해소했고 분당은 안된다는 인식에 공감했다.
양측은 이날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2시간40여분에 걸쳐 대화를 진행했는데 회의 중 폭소가 터지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조정위원들이 신·구주류 양측의 강경파로 분류돼온 사람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회의 직후 장영달 의원은 “논의가 유익했다. 뭔가 될 것 같다”고 말했고 유용태 의원 역시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화답했다.
20일 계속된 2차 회의에서도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했다. “노무현정부의 국정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선 제1당이 돼야 한다”는 합의다. 문석호 대변인은 “첫 모임에서는 오해를 풀고 불신의 벽을 허물자는 얘기가 주류를 이뤘고 이번 회의에서는 논의의 초점을 맞춰 진일보한 셈”이라며 “서로 존중하며 흉금을 터놓고 격의 없이 토론했으며 공동 목표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 역시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3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양측이 이처럼 ‘통합신당’에 의견 접근을 이룬 것은 무엇보다도 구주류측이 “신주류측의 통합신당은 사실상 진보신당”이라며 ‘민주당 사수’를 주장해온 기존입장에서 한걸음 물러섰기 때문이다.
사실 그간 구주류측은 신주류측의 조정회의 구성에 참여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좀더 주의깊게 살펴보면 구주류측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신주류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즉 구주류가 신주류에 대한 의구심을 거둬들일 정도로 신주류측이 통합신당을 현실적 대안으로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번 조정회의에 앞서 정 대표는 “통합신당과 리모델링은 사촌간이며 중도의원 50여명이 함께 서명해 내놓은 안이 있다”며 양측의 양보와 타협을 주문했다. 구주류로서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발언이지만 신주류 기존 입장에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러나 신주류 강경파조차도 정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을 문제삼아 조정회의 불참을 주장하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당내 재야파나 중도파들이 통합신당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신주류 강경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됐다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했다. 지난주 김근태 조순형 추미애 의원 등 당 안팎에서 나름대로 신뢰를 받고 있는 중진의원들을 포함, 재야파 및 중도파 54명이 ‘통합신당’ 추진을 촉구했다. 더구나 이 흐름의 이면에는 한화갑 전 대표도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주류의 한 핵심인사는 “이번 54명 서명에는 사실 한 전 대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김근태, 조순형, 추미애 의원 등은 원래 통합신당파인데 여기에 한 전 대표가 합류하면서 중도에 서 있던 의원 대부분이 이를 대세로 인식하고 동참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의 측근도 “한 전 대표는 ‘하루 빨리 여당의 표류를 정리해야 총선도 이길 수 있는 만큼 마음을 비우고 작품이 되도록 돕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신주류측은 구주류의 반발에 따른 물리적 한계, 신당 지지율의 지속적인 하락, 당내 재야파 및 중도파의 통합신당 창당 촉구 등 안팎의 여건을 감안, 일단 통합신당으로 방향을 튼 셈이다.
그러나 신주류측이 통합신당을 최종 기착점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신주류 강경파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현시점에서 범 개혁세력 연합신당 등을 고집할 경우 신주류의 탈당 밖에 길이 없는데 탈당 후 결합할 세력은 목소리만 높았지 총선 경쟁력이 거의 없다”며 “일단 그 길로 들어서면 여권은 분열되고 그런 방식으로 분열된 여권이 총선에서 연대하기도 어려워 결국 한나라당에게 어부지리만 안겨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어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통합신당 역시 아무리 경쟁력 있는 외부 인사를 영입하더라도 지역당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만큼 차기 총선에서 제1당이 되긴 어렵다”며 “결국 통합신당을 바탕으로 총선직전 또 한차례 개혁세력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신구주류가 타협한 통합신당을 창당할 경우 총선 직전 한나라당 탈당파, 개혁당, 신당연대 등과의 통합이 가능할까.
이와 관련, 또 다른 강경파 의원의 한 측근은 “현재 당밖 개혁신당 추진 세력들은 신주류가 통합신당을 창당할 경우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한나라당 탈당파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당밖 신당 추진세력 중 독자적인 경쟁력을 가진 인물이나 세력이 거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측근은 이어 “따라서 통합신당 창당 직후에는 당밖 신당 추진세력과 정치적 거리가 멀어지겠지만 총선이 임박하면 결국 양측이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2단계 신당창당론’을 염두에 둔 의원들도 총선 직전 범 개혁세력이 총결집하는 연합신당 창당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적어도 당밖 신당추진세력들이 한나라당과 결합할 가능성은 없는 만큼 양측간에 연대는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양측이 총선 직전 각 지역구별로 ‘후보단일화’를 위한 국민경선을 치를 경우 국민적 관심을 집중시켜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와 같은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다.
신주류 핵심 중진의 한 측근은 “만약 1월이나 2월 초부터 전국 지역구별로 후보단일화를 위한 국민경선이 진행된다면 그 자체가 바로 선거운동이 될 것”이라며 “뿐만 아니라 후보의 개혁성도 부각되고 인지도도 높아져 본선을 엄청나게 유리한 상황에서 치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