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선자금 논란과 관련, 특별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 ||
노 대통령 주변을 타깃으로 제기됐던 도덕성 논란은 이달 들어 굿모닝시티 사건이 불거지면서 여권 핵심부로까지 확산됐다. 지난해 대선기간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정 대표의 입을 통해 대선자금 규모를 들러싼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뒤이어 ‘신주류 핵심인사들이 굿모닝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동아일보> 보도(7월16일)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비록 비리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정 대표 등 당사자들이 검찰 발표와 언론 보도를 강력 부인하며 강경대처에 나섰지만 파문은 좀처럼 사그라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은 특히 대선자금 논란이 “지난해 대선기간 여권에 거액의 ‘검은 돈’이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돼지저금통’ 등 국민모금으로 ‘도중하차’의 위기를 딛고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자부심을 가져온 노 대통령으로서는 “돼지저금통 모금은 대국민 사기극”이란 야당과 일부 보수언론의 비판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대선기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돼지저금통 모금마저 순수성을 의심받는 상황에 내몰리자 노 대통령이 꺼낸 묘수가 ‘여야 대선자금 공개’ 제안(7월15일)으로 시작되는 ‘정치개혁 드라이브’다. 지난 88년 정계 입문 이후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면돌파’를 통해 반전을 도모해온 노 대통령 특유의 결단이란 평가다.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는 `물귀신 작전’이라며 비난하고 나섰지만 ‘승부사 노무현’의 결기가 그대로 배어 있는 카드란 점에서 향후 정국의 풍향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측근들은 밝히고 있다.
한 핵심측근은 노 대통령과 대선자금의 관계에 대해 “역대 어느 여당 대선 후보와 비교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렵게 선거를 치른 노 대통령은 대선자금의 모금·집행의 경위와 내역에 대해 관여는 물론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본인이 직접 자금을 만드는 데 관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노 대통령은 대선자금 공개에 별다른 부담을 갖고 있지 않다.
정 대표나 다른 여권 핵심인사들이 대선자금과 관련해 이런저런 의혹을 받고 있는 데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솔직하게 공개한 후 사과할 것이 있으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자는 ‘정공법’으로 대응하자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이 측근의 얘기대로 노 대통령이 대선자금 조성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은 당시 정황에 비춰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대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둔 지난해 11월12일 한화갑 당시 민주당 대표는 소속 의원 40여명을 초청해 가진 오찬에서 “노 후보쪽에서 당이 금전적으로 도와준 게 뭐 있느냐고 하지만 꼽아보면 10억원 이상 도와줬다”고 말한 후 “(그런데) 후보는 1원짜리 한푼 내놓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린 바 있다.
그렇다면 대선자금 공개 제안에 담긴 노 대통령의 ‘의중’은 뭘까. 노 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은 “기본적으로 우리쪽이 대선자금을 공개해서 한나라당에 비해 불리할 것은 없다. 핵심변수는 기업 후원금인데 지난해 11월25일 노 후보와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21 후보 간 후보단일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노 후보에 들어온 돈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쪽 후원금의 5분의 1도 안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한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선거 막판 현행 정치자금법에 위배되는 돈이 들어왔을 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한나라당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노 대통령의 구상을 신당 논의와 연결짓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신당 창당작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노 대통령의 국민지지도와 신당 인기도가 동반추락하고 있는 만큼 과감한 정치개혁을 통해 국정운영과 신당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가려는 의도란 것이다.
민주당 신주류의 한 핵심 의원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국정지지도를 반전시킬 마땅한 카드가 없던 터에 터진 이번 대선자금 파문은 노 대통령으로서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또 민주당 내 신당 추진세력들도 이번 사태에 제대로 스탠스를 잡아 정치개혁을 전면에 내세워 나간다면 신당의 당위성과 기존 정당과의 차별성 확보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대선자금 공개를 매개로 한 정치개혁 드라이브’란 노 대통령의 복안은 당면한 정권의 도덕성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소극적 차원이 아닌, 내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전반을 ‘개혁 대 수구’로 재편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대선자금 공개와 관련해서는 여권 핵심부가 확실한 이니셔티브를 장악한 만큼 이에 호응하는 시민단체들을 우군으로 삼아 ‘대세몰이’를 시도해 야당을 최대한 압박해 들어가겠다는 공세적 전략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많다. 아울러 신당의 개혁적 기치를 다시 가다듬어 범 개혁세력들을 하나로 집결시키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나오고 있다.
실제 여권은 노 대통령의 구상에 따라 정치개혁 플랜 마련에 이미 착수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정치개혁을 위한 국민 대토론회 개최 준비에 들어갔으며 중앙선관위를 통한 제도개혁 방안 등을 적극 추진중이다. 아울러 여야 정치권과 학계 전문가, 선관위 및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정치제도개혁안 연구기구를 구성해 정치개혁에 대한 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민주당도 노 대통령이 21일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여야 대선자금 공개를 거듭 촉구하며 그에 따른 후속 제도개선 방안까지 제시하자 “야당의 공개 여부와 관계없이 대선자금을 공개하겠다”(이상수 사무총장)고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특히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대선자금 공개와 검증, 그에 따른 제도개선 방안 등을 공동으로 마련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서 공개에 미온적인 야당을 최대한 압박해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승부수’를 던진 노 대통령이 위기를 다시 기회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