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13단독은 테라·루나 폭락 사태와 관련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혐의를 받은 금융컨설팅 전문가 하상우 씨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과 약 1억 5000만 원 추징을 8월 26일 선고했다.
하 씨는 테라폼랩스 관계사 차이코퍼레이션을 위해 2019년경 은행권 청탁을 하고 루나 코인 21만 개를 받아 약 1억 5000만 원 수익을 얻은 혐의로 2023년 4월 기소됐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AT커니 대표 등을 지낸 하 씨는 대형 생명보험사 부사장으로 2021년 12월 영입됐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 이후 2023년 4월 사임했다.
차이코퍼레이션은 간편결제 서비스 차이페이를 2019년 6월 출시했다. 차이페이는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처럼 이용자 입장에선 시중은행 계좌를 연결해 현금을 충전해서 사용하는 간편결제 서비스였다. 차이페이는 테라폼랩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간편결제 서비스 수수료를 절감함으로써 이용자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고 홍보했다.
테라폼랩스는 사업 초기 2019년~2020년경 테라·루나 코인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과정에서 차이페이를 핵심 경쟁력으로 강조했다. 차이페이를 통한 결제가 많이 이뤄질수록 테라 블록체인이 많이 사용돼 테라·루나 코인 가치 역시 올라간다고 홍보했다.
차이코퍼레이션이 차이페이 이용자를 늘리기 위해선 시중은행 펌뱅킹 연동이 필수였다. 펌뱅킹은 기업과 은행 전산 시스템을 연결해 자금 이체 등 금융 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는 서비스다. 펌뱅킹 연동 없이는 시중은행 계좌를 통한 실시간 간편결제 역시 불가능해 다른 간편결제 서비스보다 사용 편의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검찰은 신생 기업이었던 차이코퍼레이션이 시중은행 펌뱅킹 연동에 어려움을 겪자 2019년경 금융컨설팅 전문가 하상우 씨를 통해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 등을 만난 뒤 펌뱅킹 연동에 성공했다며 하 씨를 기소했다. 하 씨는 “정당한 자문계약에 따라 금융업 전반에 컨설팅 서비스를 하고 정당한 보수를 받았다”며 “펌뱅킹 연동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진행 상황을 가끔 전해 듣기만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금융감독원은 가상화폐 사업의 펌뱅킹 연동을 불허하는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 신현성 씨는 가상화폐 관련성으로 인해 펌뱅킹 승인이 진행되지 않자 하상우 씨와 자문 계약을 체결했다. 자문 계약은 신속한 펌뱅킹 승인이라는 구체적인 현안을 전제로 체결됐다. 테라 프로젝트 선결 조건인 차이페이 서비스를 위한 펌뱅킹 승인이 주된 목적이었다”며 하 씨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하 씨 행위는 의뢰인과 금융기관 임직원 사이 알선 행위에 해당함이 명백하다. 차이코퍼레이션은 4개월 만에 펌뱅킹 승인을 받았다.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로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알선 수재 대가로 받은 금품 가액도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하 씨는 판결을 들으면서 충격에 빠진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이마의 땀을 닦기도 했다. 하 씨는 선고 이후 법정을 나와서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하 씨에게 항소 여부를 물었지만, 하 씨 변호인은 “지금은 말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자리를 피했다.
앞서 하 씨 재판 증인신문 과정에선 하 씨 해명과 배치되는 증언이 이어졌다. 지난 3월 18일 하 씨 재판엔 전직 하나은행 부행장 A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A 씨는 2019년 1월 하상우 씨와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 신현성 씨를 만난 자리와 관련해 “신현성 씨가 펌뱅킹 연동을 부탁했다”며 “가상화폐와 관련한 사업이라는 느낌을 받아 펌뱅킹은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은행에서 가상화폐 관련 사업자와는 가급적 거래하지 말자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하 씨 변호인은 지난 3월 18일 재판에서 “2019년 1월 미팅 주된 논의 내용은 펌뱅킹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A 씨는 “제 기억과 맞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반박했다. A 씨는 재판부 질문에도 “펌뱅킹 미팅은 팩트”라고 강조했다. A 씨는 하나은행이 차이페이 펌뱅킹을 처음엔 불허한 이유에 대해 “자격이 안 됐으니까 그랬겠죠”라고 답했다.
다른 증인들도 검찰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언을 했다. 펌뱅킹 중개업체 쿠콘 직원 B 씨는 2024년 4월 9일 증인신문에서 “차이페이가 가상화폐와 관련 있다는 언론 기사가 있어서 은행에서 펌뱅킹 연동을 조심스러워했다”며 “차이코퍼레이션 담당자에게 문의했더니 차이페이는 가상화폐와 어떠한 연관도 없다고 답해서 믿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신현성 씨 등에 대한 공소장에서 차이페이 간편결제 서비스에 테라폼랩스 블록체인 기술이 활용된다는 홍보는 허위였다는 점도 적시했다. 반면 신현성 씨 등은 “차이페이 사업과 관련해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며 “규제당국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사실도 없다”고 강하게 반박 중이다.
신 씨는 차이페이를 중심으로 자신이 테라폼랩스 운영에 관여했던 2020년 3월까지는 테라·루나 코인이 안정적으로 운영됐다는 입장이다. 신 씨는 권도형 씨가 2020년 3월 이후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면서 폭락 사태를 야기했다고 주장한다.
지난 8월 11일 열린 신 씨 등에 대한 재판엔 테라·루나 피해자 모임 운영자 C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C 씨는 증인신문을 마치면서 “지금도 피해자들은 고통받고 있다. 조직적인 사기에 가담해 천문학적인 범죄수익금을 편취하고 반성 없이 무죄를 주장하는 뻔뻔한 피고인들에게 중형을 선고해 달라”고 촉구했다.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 권도형 씨는 미국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미국 상황은 최근 급반전됐다. 당초 권 씨는 해외 도피하며 수사를 피했다. 2023년 3월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뒤에는 온갖 법적 수단을 동원해 몬테네그로에서 버텼다.
권 씨는 2024년 12월 31일 미국으로 송환된 뒤에도 사기 등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권 씨 미국 재판은 2026년 2월부터 본격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권 씨가 지난 8월 11일 자신의 사기 등 혐의를 인정하면서 재판 일정은 크게 단축됐다. 오는 12월 11일 선고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권 씨는 미국 검찰 공소사실 중 차이페이 허위 홍보 혐의도 인정했다. 권 씨는 미국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사실관계 중 “차이페이 가짜 거래에 수백만 달러 상당 코인을 사용했다” “차이페이가 테라 블록체인을 활용해 거래를 정산했다고 거짓으로 주장하는 홍보 문서를 투자사에 보냈다” 등을 인정했다. 미국 검찰 공소장에서 차이페이 관련 혐의 내용은 79쪽 중 10쪽에 달했다(관련기사 테라·차이 관계 감추려 와이파이 비번까지…권도형 미국 검찰 공소장 해부).
신현성 씨 측은 권 씨가 미국 재판에서 형량을 낮추고자 유죄를 인정했을 뿐 차이페이 허위 홍보 등 구체적인 공소사실을 다투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신 씨 측은 “권 씨는 지난 8월 11일 미국 법정에서 2018년~2022년 사기 혐의를 공모했다고 자백했지만 내용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차이페이 등 특정 혐의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