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바둑 애호가들이 후원에 나서는 것과 달리, 그는 “바둑이 좋아서라는 표현은 조금 사실에 안 맞다”고 선을 그었다. 젊은 시절 골프를 즐겼지만 나이가 들며 육체적 한계를 느꼈을 때, ‘남은 인생은 뭘 하고 살까’ 고민하다 마지막에 남은 것이 바둑이었다.
그는 “맨날 앉아있어 몸에 안 좋을 것 같아 4년 전엔 바둑을 끊으려고도 했다”면서도, 결국 인생의 취미로 바둑을 받아들이고 이 바둑계에 들어온 이상 ‘내가 할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 결과가 “마침 내가 경제적 여유가 되니,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회를 열어주면 좋겠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결론이었다. 후원은 그에게 일이 아닌 삶의 일부다. “나도 즐길 수 있고, 보는 것도 재미있고, 바둑계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니 좋은 일 아니냐”며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여유가 되니까 그냥 열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후원을 통해 얻는 기쁨은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에너지를 얻는 ‘윈윈’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의 바둑 입문은 초등학교 5학년, 형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였다. 사회생활에 바빠 7~8급 기력을 유지하는 정도였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기재(棋材)가 있었다. 40년 전 우연히 바둑을 다시 시작해, 한 달 만에 아마 4단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러한 승부사적 기질은 그의 인생 역정과 맞닿아 있다. 무역맨으로 미국에 취업 이민을 가 선물 회사 사장까지 올랐으나, 1987년 블랙먼데이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 1990년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 증권회사에서 일하며 한국 선물시장의 초석을 다졌지만, IMF 외환위기로 다시 빈털터리가 됐다.
가진 것이라곤 집 한 채와 3억 원 남짓. 그때 아내가 “선물 말고 주식이나 해보라”며 3000만 원을 쥐어줬다. 벼랑 끝에서 다시 일어선 그의 승부사 기질은 이때 폭발했다. “선물 회사를 운영만 해봤지, 직접 매매를 한 건 아니었다”던 그는 아내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주식시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3년 만에 100억 원을 벌었고, 다시 4년 만에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다. 그래서 평생 승부욕으로 살아왔기에, 역설적으로 바둑에서만큼은 승부욕을 내려놓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바둑뿐 아니라 골프, 탁구 등 자신이 평소 즐기는 여러 종목을 후원하는 그는 “하늘이 재능이나 재물을 주는 것은 세상 사람을 이롭게 하라고 주는 것”이라는 확고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 빌 게이츠가 막대한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처럼, 자신 역시 받은 것을 나누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믿는다. 아내 역시 “죽을 때 가져갈 거냐”며 그의 후원을 적극 지지하는 가장 든든한 동반자다.
그의 후원 철학은 ‘나눔의 효율성’을 지향한다. 그는 “우승 상금이 많은 대회도 좋겠지만, 그래 봐야 대부분 몇몇 톱기사에게만 해당하는 잔치”라고 꼬집는다. 단순히 우승 상금 액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바둑계의 저변이 넓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금액을 조금씩 나눠 여러 번 대회를 여는 것이 더 많은 사람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대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사들은 목표 의식을 갖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으며, 이는 곧 바둑계 전체의 수준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개막을 앞둔 프로와 아마추어와 호선(互先)으로 맞붙는 더메리든배는 “프로가 쓰러져야 바둑계가 산다”는 그의 지론이 담긴 파격적인 대회다. 그는 프로들에게 “당신들이 지는 걸 보면 팬들은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즐거워할 것”이라며 아마추어에게 패하는 것을 겁내지 말고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라고 독려한다. 이러한 파격이 팬들에게는 짜릿한 관전의 묘미를, 아마추어 강자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을, 프로들에게는 건강한 긴장감을 불어넣을 것이라 확신한다. 내년 열리는 블리츠배는 참가 연령을 더 낮추고, 아마추어의 문턱을 더 넓혀 젊은 피를 수혈할 계획을 갖고 있다.
차가운 승부의 세계에서 단련된 그의 혜안과 따뜻한 나눔의 철학이 한국 바둑에 어떤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지 기대된다.
유경춘 객원기자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