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극장가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레미제라블> <호빗> <클라우드 아틀라스>. |
연말연시 시즌을 맞아 극장가에 이른바 블록버스터급 할리우드 대작들이 줄을 이어 개봉했다. 가령 <호빗:뜻밖의 여정>이나 <레미제라블> <클라우드 아틀라스> 등이 그렇다.
그런데 이 영화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모두 상영시간이 세 시간 가까이 되는 ‘장편 중의 장편’이라는 점이다. <호빗>의 경우에는 169분(2시간 49분)이고, <레미제라블>과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각각 157분(2시간 37분)과 172분(2시간 52분)이다.
영화가 이렇게 길어지는 것은 비단 여름휴가나 연말 시즌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어느 정도 작품성을 평가받는 내로라하는 작품들 역시 길고 긴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이를테면 지난여름 개봉했던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165분(2시간 45분)이고, <헝거게임>은 142분(2시간 22분), <어벤져스>와 <007 스카이폴>은 각각 143분(2시간 23분)이다. <007 스카이폴>의 경우에는 145분(2시간 25분)이었던 2006년 <카지노로얄>에 이어 역대 007 시리즈 가운데 두 번째로 긴 작품이다.
통계 수치만 봐도 이런 사실은 잘 알 수 있다. 20년 전인 1992년 흥행순위 5위 안에 들었던 영화들의 평균 상영 시간은 118.4분이었지만, 2012년에는 142분으로 훌쩍 늘어났다. 가령 1990년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나홀로 집에>의 러닝타임은 103분(1시간 43분)에 불과했다.
이렇게 길어진 상영 시간을 보면 사실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할리우드 제작사 입장에서는 영화가 길어질수록 제작비는 더 들어가는 반면, 티켓값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이득이 될 게 없다. 더욱이 영화 상영 시간이 길어지면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횟수 또한 줄어들게 된다.
단, 상영 횟수는 제작비 증가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문제가 되기는 한다. 이를테면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늘어났기 때문에 30분마다 상영을 하는 것도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할리우드 영화들은 왜 이렇게 점점 길어지는 걸까. 이에 대해 <롤링스톤스>의 영화 평론가인 피터 트래버스는 “아카데미상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아카데미상을 노리는 영화들일수록 상영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할리우드 제작사들은 영화가 길지 않으면 아카데미상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었다. 올해 아카데미 최다부문 수상에 빛나는 <아티스트>는 100분(1시간 40분)이었고, 4개 부문을 수상했던 <킹스 스피치>는 118분(1시간 58분)이었다. 하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22분(3시간 42분)), <벤허>(201분(3시간 21분)), <아라비아의 로렌스>(216분(3시간 36분))부터 <타이타닉>(195분(3시간 15분)), <브레이브하트>(177분(2시간 57분)), <글래디에이터>(154분(2시간 34분)), <반지의 제왕>(178분(2시간 58분)) 등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아카데미는 상영 시간이 두 시간이 넘지 않는 영화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 영화가 길어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일 수도 있다.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줄어들면서 할리우드는 단순명료한 비즈니스 모델인 ‘클수록 좋다’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점점 영화처럼 스케일이 큰 드라마들을 제작하는 TV 채널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는 할리우드로선 드라마보다 더 스케일이 큰 영화를 만드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돼버렸다. 이런 까닭에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후보는 다섯 편에서 열 편으로 늘어났으며, 많은 영화들이 속편을 줄줄이 만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와 전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뉴스위크>의 영화평론가인 데이비드 얀센은 ‘영화감독의 파워’를 그 이유로 들었다. 그는 “이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라. 스티븐 스필버그, 쿠엔틴 타란티노, 피터 잭슨, 캐스린 비글로우 등이다. 누가 감히 이들에게 영화 시간을 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영화 상영시간은 주기를 따라 유행처럼 변한다. 1950년대에는 중간에 휴식시간까지 있는 네 시간가량 되는 대작들이 많았다. 가령 <자이언트>는 201분(3시간 21분), <십계>는 221분(3시간 41분), <80일 간의 세계일주>는 175분(2시간 55분)이었다”고 설명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