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하고 싶었던 장르이기도 했고, 워낙 주변에서 ‘너랑 오컬트랑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많이 듣기도 했어요(웃음). 극 중 춘서는 서포터 역할이지만 서사 속에서 굉장히 큰 사건과 에너지를 주는 역할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연기한다면 정말 많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연기를 (송)지효 언니, 또 제가 엄청나게 팬인 (김)병철 선배님과 함께할 수 있다고 하니, 안 할 이유가 없었죠.”
‘구원자’는 축복의 땅이라고 불리는 오복리에 교통사고를 당해 걷지 못하는 아들을 둔 부부가 이사 온 뒤 겪게 되는 미스터리한 일들을 그린 영화다. 의사인 영범(김병철 분)과 눈이 보이지 않는 아내 선희(송지효 분)는 오복리에서 의문의 노인을 만난 뒤 다리를 전혀 쓸 수 없었던 아들 종훈이 다시 걸을 수 있게 되는 기적을 경험한다.
동시에 같은 마을에서 홀로 아들을 키우며 살아왔던 춘서는 영범 부부에게 생기는 기적과는 정반대의 저주를 받으며 고통을 겪는다. 춘서는 학교의 촉망받는 농구선수였지만 갑자기 걷지 못하게 되고, 눈까지 잃은 아들의 저주가 영범 부부에게 일어난 기적과 연결돼 있다고 믿는다. 춘서는 빼앗긴 평범한 행복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영범 부부를 향한 필사의 전쟁을 벌인다.

김히어라가 연기한 춘서는 가난하고 불행한 삶에 찌들어 있지만 유일한 피붙이인 아들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어머니다. 오복리 사람들 사이에 퍼진 기묘한 ‘종교적 믿음’ 아래 춘서는 언젠가 신의 권능과도 같은 기적이 자신의 가정에도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 차례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목사의 앞에서 마치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불만을 털어놓기도 하고, 서울에서 온 의사라는 영범과 선희 부부에게는 기적과는 또 다른 희망의 지푸라기인 것마냥 집착하기도 한다. 김히어라는 춘서의 이런 면모와 이후의 변화들을 철저히 연출을 맡은 신준 감독의 디렉션에 따라 갔다고 설명했다.
“춘서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저는 굉장히 유약한 모습으로 연기하려고 했어요. 연민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도록 춘서의 안 좋은 환경이라든지, 그런 지점이 부각되길 바랐는데 감독님께서는 춘서가 처음 등장할 때부터 ‘무슨 일이 생기겠다’는 걸 관객들에게 전달했으면 좋겠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러다가 제가 너무 강해 보이면 안 좋은 일을 안 당할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지 걱정했는데(웃음), 감독님은 ‘아무 것도 없이 자기 아들만 보던 사람이 안 좋은 일을 당하면 이런 힘이 나올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말씀 그대로 치열한 춘서를 그려내게 됐던 거죠.”
선망으로 시작된 감정이 원망으로 변해가면서 춘서는 빼앗긴 기적을 돌려받기 위해 영범과 선희 부부를 향한 복수를 강행한다. 앞을 보지 못해 진실을 알 수 없었던 선희에게는 정신적인 긴장감과 동시에 죄책감을 안겨 주고, 기적이 저주임을 알면서도 이를 감추려 한 영범과는 몸싸움까지 벌일 만큼 처절하게 맞부딪친다. 이렇듯 극 중에선 서로가 서로에게 압박으로 느껴지는 관계였지만, 현장에서 두 선배는 ‘다정함’ 그 자체였다는 게 김히어라의 이야기다.

스크린 데뷔작이라는 점에서도 물론 그랬겠지만, 현장에서 그가 느낀 긴장감에는 지난 2년의 시간이 영향을 끼쳤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었다. 2023년 9월 학폭 의혹 첫 폭로 후, 논란과 관련된 모든 이들과 오해를 푸는 자리를 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응원하겠다는 입장으로 정리했지만 대중들은 한번 낙인을 찍은 연예인을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김히어라는 잠시 한국을 떠나 미국에 머물러야 했다. 그곳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그때는 저에게 있어서 ‘진짜 괜찮았어요’라고 말하기엔 너무 많은 감정들이 오갔던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감사하게도 영화로 찾아볼 수 있게 된 순간에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가 피해갈 수 없는, 감당해야만 했던 값진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나 자기 자신만의 타이밍이 있고, 원하지 않고 또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우연히 겪은 일 때문에 많은 부침을 겪기도 하니까요. 그 시간 동안 그걸 잘 버티는 방법을 배우고 저 스스로를 공부할 수 있었기에 인간으로서, 배우로서의 김히어라가 더 깊어진 것 같아요.”
이 직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와 tv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주목받으며 날아오를 일만 남아있던 차였다. 그런 만큼 오해와 논란을 딛고 2년 만에 일어선 김히어라의 재기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시선과 관심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어떤 형태의 ‘궁금함’이든 그 방향을 바꾸는 것은 오직 배우의 힘에 달려 있으니, 김히어라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결과로 답을 대신하겠다고 말했다.
“제가 오래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저를 더 이상 궁금해 해주실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제가 겪은 일들은 모두 다 스스로 감수하고 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었죠. 하지만 그 빈 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또 배웠기 때문에 앞으로 제가 보여드릴 그런 것들을 많이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로코나, 진한 멜로 같은 작품 속 캐릭터로서의 제 연기도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해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