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중국 푸젠성 푸저우시 삼방칠항 곽백맹 고택에서 열린 제8회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대회 결승 3번기 최종국(3국)에서 김은지 9단은 최정 9단을 상대로 223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이로써 김은지 9단은 종합 전적 2승 1패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입단 5년 만에 세계 바둑의 정상에 섰다.

이번 결승전은 한국 여자 랭킹 1위와 2위의 맞대결이자, 7년 만에 성사된 한국 기사 간의 ‘자매 결승’으로 대회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1국은 김은지의 대역전극이었다. 4시간 40분에 걸친 혈투 끝에 김은지는 최정의 판단 착오를 틈타 194수 만에 불계승을 거두며 기선을 제압했다. 그러나 최정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어진 2국에서 최정은 5시간이 넘는 장기전 끝에 승리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특히 2국 승리는 그간 두 기사 간 맞대결에서 이어지던 ‘흑번 필승’ 공식을 깨뜨린 백번 승리였기에 최정 9단의 기세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하지만 운명의 최종 3국, 승리의 여신은 김은지의 손을 들어주었다. 팽팽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승부는 초중반에 급격히 기울었다. 우변 접전에서 최정의 실수가 패착의 빌미가 됐다. 최정이 두텁게 처리하려던 수가 느슨한 실착이 된 반면, 실수를 놓치지 않은 김은지는 곧바로 중앙 백 세력을 무력화시키며 승기를 잡았다.
바둑TV 해설의 송태곤 9단은 “최정 9단의 수읽기 착오라기보다는 ‘이만하면 됐다’는 식의 판단 착오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김은지 9단은 빈틈없는 마무리로 상대를 압박했다”고 평했다. 이후 최정 9단은 판을 뒤집을 실마리를 찾지 못했고, 결국 돌을 거두고 말았다.
이번 우승은 단순한 1승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바둑계에서는 이번 승부를 두고 ‘권력 이동의 완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두 기사는 11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묘한 ‘평행이론’을 보여주고 있다. 최정이 박지은 9단을 제치고 처음 여자랭킹 1위에 오른 나이가 17세였고, 김은지가 최정을 넘어서 1위를 차지한 나이 역시 17세였다. 또한 최정이 2014년 궁륭산병성배에서 첫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했을 때가 18세였는데, 김은지 역시 18세의 나이로 오청원배를 통해 첫 세계 타이틀을 획득했다. 최정이 열어젖혔던 ‘최정 왕국’의 역사가 김은지를 통해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한편 김은지의 압도적인 성장에 중국 바둑계도 경계심과 찬사를 동시에 보내고 있다. 이번 대회를 지켜본 중국 현지 반응은 뜨겁다. 중국 바둑 팬들과 전문가들은 김은지 9단에 대해 “여류 기사의 커리어로 끝날 선수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중국 측의 한 바둑 관계자는 “김은지의 실력은 한·중·일 여자 정상권 선수들과도 정선(치수) 이상의 차이가 난다”며 “현재 실력은 이미 여자 기사의 범주를 넘어선 초일류급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실력이 더 늘 것이다. 몇 년 후에는 신진서의 바통을 이어받아 한국 바둑을 대표하는 일인자는 김은지가 될 것”이라는 극찬까지 쏟아냈다. 이는 김은지 9단이 단순히 ‘여자 최강’을 넘어 남녀 통합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기사로 성장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오청원배 우승으로 김은지 9단은 상금 50만 위안(약 1억 400만원)을 획득했다. 이로써 올해 누적 상금 3억 1000만 원을 기록, 3억 원 고지를 돌파하며 여자 기사 상금 랭킹 1위를 확정 지었다. 김은지 9단의 연간 상금이 최정 9단을 앞선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준우승을 차지한 최정 9단에게는 20만 위안(약 4160만원)이 수여됐다.
세계대회 우승으로 방점을 찍었지만, 두 기사의 승부는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다. 김은지 9단과 최정 9단은 오는 16일부터는 제30기 하림배 프로여자국수전 결승전에서 또다시 맞붙는다. 오청원배 결승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펼쳐지는 리턴매치 3번기에 바둑 팬들의 이목이 다시 한 번 집중되고 있다.
유경춘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