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4년간 전국 249개 대학의 성희롱·성폭력 상담 사례가 약 400건에 달하는 등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
지난 9일 대법원은 심리 상담을 받으러 온 여성을 자신의 연구실로 끌어들여 성추행한 서울 S 대학의 이 아무개 교수에게 총 40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 만에 나온 결과였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교수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지만 대학에서는 아무런 징계도 내리지 않았고, 그는 버젓이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계속해왔다는 점이다. 사실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전국 대학 성희롱·성폭력 상담소에서 분석한 전국 대학 249곳의 지난 4년간 벌어진 성희롱·성폭력 상담 사례를 토대로 대학 내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성추행 문제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민주통합당 유기홍 의원실과 전국 대학 성희롱·성폭력 상담소가 공동으로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2009년~2012년, 전국 249개 대학의 성희롱·성폭력 상담 사례 394건), 앞선 이 교수의 사례와 같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학교 내에서 버젓이 성추행을 행하는 사례가 많이 발견된다.
공주대 미술교육과에 다니는 학생 4명은 지난달 18일 학내 성폭력상담센터를 통해 지도교수 2명의 성추행 사실을 알리며 파면을 요구했다. 학생들은 “A 교수가 지난 3월 수업 도중 몸을 구부린 채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학생의 엉덩이에 자신의 성기를 대고 손으로 쓰다듬는 등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A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 침대를 들여놓고 학생들과 상담하며 손을 감싸 쥐기도 했다”고 밝혔다.
B 교수 역시 직접적인 성적 접촉은 없었지만 옷을 털어준다며 날카로운 미술도구로 옷을 들추거나 “너희들 섹스에 대해서 알아? 여자는 첫 경험을 조심해야 한다”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학생들은 설명했다.
해당 교수들은 성추행 의혹에 대해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며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나 역시 성희롱을 받았다”는 80여 명 학생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사건은 진실 공방에 들어갔다.
중앙대 사진학과의 C 교수는 지난 10여 년 동안 연구실 등에서 여학생 3명에게 강제로 입맞춤을 하거나 치마 안에 손을 넣고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한 의혹을 받았다. C 교수는 결국 지난해 학교 성평등 상담소 조사를 받은 뒤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지난해 4월 해임이 결정됐다.
학교 내에서뿐만 아니라 술자리나 심지어 모텔로 유인해 성추행을 하는 교수들도 존재했다.
경기도 성남 가천대의 D 교수는 지난 2012년 3월 술에 취한 제자를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택시에 태워 모텔로 데려가 3시간 동안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았다. D 교수는 강제 추행 사실에 대해 완강히 부인했지만 피해 학생의 몸에서 성추행의 흔적이 발견돼 학교 측으로부터 직위해제를 당했다.
지방의 한 국립대 E 교수는 지난 2010년 여제자에게 저녁식사를 제안했다. 식사 후 E 교수는 영화나 보자며 제자를 데리고 모텔로 갔다. E 교수는 모텔방에 들어가자마자 음란영상물을 틀고 제자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 제자는 바로 방에서 나와 상담소에 신고했고 E 교수는 징계위원회를 거쳐 해임됐다.
이밖에 부산의 한 대학, F 교수는 지난 2012년 5월 술집에서 여학생이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옆자리에 붙어 앉아 몸을 더듬고 입을 맞추려고 시도하는 등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아 징계위원회를 통해 직위 해제된 경우도 있다.
전국 대학 성희롱·성폭력 상담소의 상담 사례를 보면 피해자의 94.4%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남성들의 대학 성추행 피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0년 3월 충남 금산의 중부대 연극영화과의 G 교수는 술자리에서 남학생 H 씨에게 강제로 입맞춤을 한 혐의를 받았다. G 교수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완강히 부인했지만 경찰 조사과정에서 “H 씨와 입을 맞춘 건 사실이지만 이는 서로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또한 강원대에서는 지난 2011년 4월 I 교수가 춘천시 자신의 집에서 잠자고 있던 남학생 J 씨의 신체 특정부위를 만지는 등 성추행 혐의로 입건됐다. 그 후 피해 학생의 고소 취하로 I 교수는 불기소 처분됐지만 대학 징계위원회에 넘겨져 파면됐다.
성폭력 상담소의 한 관계자는 “대학 교수들의 성폭력·성추행 사건이 불거지면 대부분이 징계위원회를 통해 해임되거나 직위 해제되지만 아직도 몇몇 교수들은 처벌을 받지 않고 직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며 “성 문제에 대해 사회나 학교에서 더욱 엄격한 처벌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대학이 앞장서 비호”
우울증을 앓는 보험설계사를 자신의 연구실로 끌어들여 성추행한 서울의 유명 사립 S 대학교의 교수가 대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아무개 교수는 지난 2003년 3월부터 7월까지 조 아무개 씨를 3차례에 걸쳐 강제로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는 등 성추행한 혐의로 조 씨와 그의 남편 강 아무개 씨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성추행에 충격을 받은 조 씨는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는 등 고통에 시달렸으나 이 교수는 법정공방이 진행되는 10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이전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조 씨 부부의 손을 들어줬고 결국 이 교수는 성추행 및 무고 등의 혐의로 총 4443만 원을 배상하게 됐다. 문제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까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다는 점이다. 강 씨는 고소를 하기 전 직접 S 대를 찾아가 몇 차례 이 교수의 사퇴를 요구했으나 학교 측은 오히려 이 교수를 보호하며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
법정다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교수가 강 씨 부부에게 “돈을 줄 테니 협의를 보자”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으며 경찰 진술서에서도 일부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징계위원회조차 열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 측에서 이 문제를 쉬쉬했기에 이 교수의 성추행 사건을 모른 채 10년 동안 수업을 들어야 했던 학생들도 수두룩했다.
학교의 태도뿐만 아니라 강 씨가 밝히는 경찰의 미심쩍은 움직임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 교수가 고소를 하기 전 불법으로 강 씨의 범죄기록이 조회된 사실이 드러난 것. 강 씨는 “검사 출신 변호사 최 아무개 씨가 후배를 시켜 나의 범죄기록을 조회하고 조작하려고 했다. 나중에는 이 교수와 최 변호사가 날 찾아와 협의를 요구하기도 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게다가 강 씨가 맞고소를 하기 위해 제출했던 서류도 경찰에 의해 누락되기도 했다. 또한 있지도 않은 전과기록을 게재해 강 씨가 직접 정정과정을 거치는 어이없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강 씨는 “나를 상습범(협박에 대한)으로 몰고 가기 위해 전과기록을 조작하려는 움직임이 들통나 해당 경찰로부터 사과도 받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 교수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강 씨는 학교 재단과 이 교수의 관계에도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현재가 아닌 이전의 재단과 연관이 있는 인물인 것 같다. 아무래도 모교 출신의 교수이고 재력도 있다 보니 보호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게다가 그 시기는 재단이 바뀔 무렵이라 이미지 관리에도 소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두 재단이 이 교수를 보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 교수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학교 및 연구실로 문의했으나 부재를 이유로 연결이 어렵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