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KT에서 존재감을 보이며 성장하고 있는 신인 듀오 김명진(왼쪽)과 장재석을 만났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부산 KT의 신인 듀오 김명진(24·176.8cm)과 장재석(22·203cm)은 올 시즌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는 KT의 ‘보물’이나 마찬가지다. 시즌 초반 나락으로 떨어졌던 KT가 중위권으로 치고 올라온 배경에는 외국인 선수 제스퍼 존슨과 신인들의 저돌적인 활약이 큰 힘이 됐다. 김명진은 2012년 1월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KT 유니폼을 입었고, 장재석은 지난해 10월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김명진과 한 배를 탔다. 같은 연도에 입단했지만 김명진이 장재석보다는 두 살 더 많아 ‘형’으로 불린다. 강한 카리스마와 옆집 아저씨 같은 부드러움을 겸비한 전창진 감독 밑에서 살림꾼으로 성장하고 있는 두 선수를 만나본다.
# 프로 첫 해, 혹독한 신고식
“지난주에는 부산에서 경기하고 새벽에 이동해서 다음 날 인천 경기를 뛰었어요. 워낙 일정이 빡빡하니까 정신도 없고,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든 것 같아요. 그래도 시즌 초반보다는 나아요. 그때는 경기도 잘 안 풀리고 기죽은 플레이를 하는 바람에 시즌이 너무 길게 느껴졌거든요. 성적이 올라가면서 요즘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어다니는 것 같아요.”
가드 김명진의 설명이다. 김명진은 LG에서 이적해 온 김현중의 백업 멤버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김현중이 KT에서 부진을 거듭하자 김명진이 대신 그 자리를 메웠다. 프로 데뷔 후 단 한 번도 경기에 제외된 적이 없을 정도로 전 감독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고, 어느새 경기 MVP를 두 차례나 받았다.
반면에 신인 최대어로 꼽혔던 장재석은 올 시즌 부침이 많았다. 2군에 두 차례나 내려갔을 정도로 프로 데뷔 해를 혹독하게 치렀다.
“이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이 정도로 못하는 선수인 줄 진짜 몰랐어요. 프로 와서 깨달았어요. 그 실망과 충격이 크기 때문에 주위에서 저에 대해 어떤 얘기들을 하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신인 최대어’로 불린 선수가 1군이 아닌 2군에서 머물렀을 때 장재석이 느꼈을 상처와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재석은 피하지 않고 숨지 않았다. 기자들의 인터뷰 때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고, 그 인정이 말로만 하는 ‘쇼’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훈련에 매달렸다. 그래야 올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예고한 대선배 서장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후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재석은 바로 KT의 ‘포스트 서장훈’이기 때문이다.
# 기대와 현실 사이
“제가 키가 작기 때문에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영리한 플레이가 특기였어요. 그런데 프로에선 그게 잘 통하지 않더라고요. 그럴 때면 영락없이 감독님의 콜이 들어와요. 작전 타임을 부르신 후 저를 크게 혼내시거든요. 왜 패스를 제대로 하지 못하느냐면서. 카메라가 절 비추고 마이크를 통해 감독님의 말씀이 TV로 방송된다고 생각하면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창피해요. 한마디로 표정 관리가 안 되죠.”
김명진은 한 박자 빠른 패스와 공격의 완급 조절로 신인답지 않은 경기 운영을 펼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평가를 받기까지 김명진은 전 감독의 호된 야단 속에서 살다시피했다. 그래서인지 이젠 웬만한 호통에는 기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면에 장재석은 감독의 호통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자기 성찰로 인해 살짝 위축된 상태다.
“키가 크기 시작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그게 실력보다는 키로 한 농구였더라고요. 대학에서는 머리를 쓰기보다 신장으로만 농구를 했어요. 그게 습관화되다보니 농구 센스가 뒤떨어지고, 그런 시행착오를 지금 겪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약간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하지만, 나중에 제 실력을 발휘하고 있을 때는 자신감 있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 만약 내가 OOO이라면?
김명진한테 장재석의 어떤 점이 부럽냐고 물었다. 키가 작다보니 당연히 신장에 대한 얘기가 먼저 거론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김명진은 다른 얘기를 꺼냈다.
“가드 포지션에는 양동근, 김태술 등 워낙 쟁쟁한 선배님들이 많으셔서 전 선수생활을 마칠 때까지 국가대표에는 뽑히지 못할 거예요. 대학 때 한 번이라도 경험해봤더라면 더할 나위가 없었을 텐데, 결국엔 기회를 못 잡고 프로에 오게 됐어요. 재석이한테 부러운 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는 점이에요.”
김명진의 얘기를 듣고 있던 장재석이 조심스럽게 이런 대답을 내놓는다.
“벌써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명진이 형한테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고 봐요. 전 체력이 ‘꽝’이라서 명진이 형의 체력과 스피드가 부러워요. 그리고 센터는 가드와 친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인지 제가 가드를 좋아해요. 저한테 없는 장점들을 가드가 갖고 있으니까요.”
김명진은 “나도 센터를 좋아한다”는 말로 장재석의 덕담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 서로를 보는 시선
단국대 출신인 김명진은 중앙대 장재석과 대학 농구에서 맞붙었을 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중앙대에는 센터가 쟁쟁했어요. (오)세근이 형도 있고 재석이도 있고…. 골밑으로 들어가는 게 두려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중앙대랑 게임이 있을 때는 아예 골밑 돌파를 포기하는 대신 외곽슛으로 승부를 했죠. 그래서 제가 KT에 먼저 입단 후 10월 신인드래프트를 지켜보면서 내심 재석이가 우리 팀에 들어오길 바랐어요. 타 팀에 있으면 상대하기가 벅차니까요(웃음).”
장재석은 자신이 힘들 때 누구보다 김명진이 먼저 다가와 위로와 격려를 해준다며 김명진에 대한 남다른 우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그는 KT로 입단이 확정됐을 때 가장 설레었던 일이 서장훈과의 만남이었다는 얘기를 전한다.
“후배들한테는 ‘전설’ 같은 분이신데, 그런 분과 한 팀에서, 같은 포지션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게 커다란 영광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했어요. 장훈이 형의 플레이를 보면 자꾸 감동이 돼요. 이런저런 부상으로 뛰는 것조차 힘드실 텐데 몸을 아끼지 않으시거든요. 앞으로 제가 어떤 선수 생활을 해야 하는지 장훈이 형을 보며 많은 걸 깨닫고 있습니다.”
부산 KT의 ‘김-장 커플’은 지난 연말 전창진 감독으로부터 편지와 선물을 받고 감동했던 일화를 털어놓았다. 항상 엄하고 무서운 존재였던 감독이 막내 선수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선물과 함께 전해줬을 땐 ‘감동의 도가니탕’에 풍덩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들은 새해 이런 각오를 다졌다. 부산 KT의 진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이 혼나고, 더 많이 창피 당하자고. 그런 성장통이 진정한 프로 선수가 되는 데 자양분이 된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