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현금을 빌려주고 이자를 얹어 더 큰 액수의 상품권으로 돌려받는 사실상의 변종 대부 거래가 규제 사각지대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실질적으로 ‘고금리 단기 자금’ 융통에 가까운 구조지만 외형상 상품권 거래 형식을 띠고 있어 현행 규제 체계에서 법적 성격을 일률적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업계와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상품권 예판(예약판매)’으로 불린다. 매매업자가 상품권을 내어주는 입장이 아닌, 받는 입장인 것이 특징이다. 돈과 상품권이 오가는 시점 사이에 어느 정도 간격이 있지만 통상적 의미의 ‘예약 판매’와는 구조가 다르다.
거래는 주로 포털사이트 온라인카페 게시글을 통해 이뤄진다. 돈을 빌려줄 사람은 상품권 구매자, 돈이 필요한 사람은 상품권 판매자 입장에서 게시글을 올려 접촉해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라인, 텔레그램 등으로 상품권 거래 금액과 기한, 지급 방식 등 조건을 설정, 거래하는 방식이다. 주로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현금을 먼저 보내고, 판매자가 보통 7~10일 뒤 원금 대비 30~50% 많은 금액 상당의 상품권을 구매자에게 넘기는 구조로 거래된다. 거래에 쓰이는 상품권은 백화점 상품권이 대부분으로, 문화상품권이나 다른 모바일 상품권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지급 방식은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 비대면 전달 방식이 주로 쓰인다.

현장에서는 거래 당사자 간 갈등 발생 시 민사와 형사가 뒤엉킨 법적 회색지대가 형성된다. 판매자가 처음부터 상품권을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업자로부터 현금을 받았다고 볼 정황이 있다면 단순 채무불이행을 넘어 사기 혐의가 문제 될 수 있다. 한편 업자(상품권 구매자 입장)가 판매자의 가족·지인에게 연락하거나 반복적인 독촉, 신상 노출 행위 같은 방식으로 추심에 나설 경우 위법 행위로 볼 소지가 생긴다. 판매자의 계약 미이행이 분쟁의 출발점이 되더라도 주변인 대상 연락 행위나 개인정보 공개, 과도한 독촉 행위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취재에 응한 복수의 상품권 예판 이용자들에 따르면 △가족·지인 연락 △반복 독촉 △예고 없는 방문 △개인정보 노출 등 정부가 ‘불법 추심 행위’로 제시해 온 방식과 유사한 형태의 추심 정황이 확인된다. 일부 업자들은 별도 게시판이나 대화방에서 연체자의 실명, 출생연도, 거주 지역, 직업, 전화번호 정보 등 개인정보를 공유하며 거래 약정 이행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거래가 지연되면 하루 단위로 연체비를 요구하거나 지인 연락처 확보 여부에 따라 추심 수위를 달리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상품권 예판 거래에 대한 관리를 위해 대부업법상 ‘금전’의 개념 범위 확장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상품권이나 가상자산처럼 실질적 환가성이 높고 상환 수단으로 활용되는 매개를 일정 요건 아래 ‘금전과 유사한 수단’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상품권 예판 업자에 대해 대부업자 등록을 의무화해 불법 추심 수위에 따라 영업 정지나 등록 취소 조치를 할 수 있는 기반 마련도 요구된다.
거래 이용자들의 주의도 요구된다. 불법사채 피해 정보공유사이트 ‘사채패치’를 운영 중인 안재현 변호사는 “상품권 예판의 기형적(구조적) 문제는 판매자들의 계약 미이행 가능성에서 시작된다”며 “(현금을 먼저 받은) 판매자가 계약대로 제때 업자에게 상품권을 보내지 못하면 배송 지연이나 계약 불이행으로 규정되는 데 그치지 않고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상훈 인턴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