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한·슬픔 상징에 ‘흥’ 얹어 글로벌 공감 시도…한국영화학회 5월 공동 학술대회서 현시대 함의 모색
[일요신문] 올해 한국 문화계에 의미심장한 화두가 떠오르고 있다. 한국 영화의 선구자, 춘사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이 1926년 발표된 지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여기에 세계적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최근 발표한 정규 5집의 제목으로 ‘아리랑’을 내세우며 세계 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100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식민지 시대의 저항과 슬픔을 담은 무성영화 한 편과 글로벌 K팝 그룹의 신보가 같은 제목 아래 포개지며, ‘아리랑’이 다시 한국 문화의 핵심 코드로서 주목받고 있다.
1926년 나운규 감독 제작 영화 '아리랑' 한 장면(왼쪽). 1957년 김소동 감독 제작 영화 '아리랑' 홍보물. 사진=영화아리랑개봉100년기념사업회 , 국가유산청이 같은 흐름에 맞춰 한국영화학회는 오는 5월 중순 ‘아리랑 100년과 한국 영화의 미래’를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열고, 아리랑이라는 문화적 원형의 현시대 함의를 짚을 계획이다. 임대근 한국영화학회장(한국외대 디지털콘텐츠학부 교수)은 “우리 민족 공동체가 함께 살아온 근세·근대·현대사의 모습을 돌아보고, 오늘날 복잡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지, 또 아리랑이 새로운 방식으로 콘텐츠화되면서 어떤 의미를 제시할 수 있을지 고민하려 한다”고 말했다.
영화 ‘아리랑’은 3·1운동에 참여했다가 고문을 받고 실성해 귀향한 한 청년이 자신의 여동생을 겁탈하려 한 친일파 악덕 지주를 낫으로 살해하고 일본 경찰에 끌려가는 비극적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1926년 개봉 당시 일제 식민 통치 하에 울분으로 가득 찬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문화적 상징으로 기능했다. 오늘날 우리가 구전 민요처럼 익숙하게 인식하며 흥얼거려온 아리랑 선율 역시 이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출발해 대중화됐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당시 제작된 영화 원본 필름은 일본인 누군가가 소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만 전해질 뿐, 오랜 노력에도 행방이 확인되지 않아 한국 영화계의 오랜 과제로 남아 있다. 임대근 학회장은 “사라진 기원을 물리적(필름)으로 되찾아야 한다는 역사적 과제도 있지만, 그것이 지닌 아우라를 동시대적으로 다시 복원해내는 열망도 있는 것 같다. 필름을 못 찾는다고 해서 아리랑을 말할 수 없는 건 아니며, 잡지와 신문 등 방계 자료를 통해 이후 아리랑이 어떻게 계승돼 왔는지 추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3월 정규 5집 앨범 ‘아리랑(ARIRANG)’을 발표하고 월드투어 콘서트를 진행 중이다. 사진=임준선 기자영화 아리랑 최초 작품에 ‘정본이 없다’는 특수성은 오히려 다양한 변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임대근 학회장은 “아리랑이 딱 하나의 모범 답안을 갖고 있는 게 아니고,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등 지역마다 리듬과 멜로디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존재해왔다. 아리랑이라는 큰 틀 안에서 다양한 지역과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다”고 풀이했다.
BTS의 ‘아리랑’ 역시 이러한 연장선에서 읽힐 수 있지만, 과도한 해석이나 일방적 찬사보다는 차분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있다. 임 학회장은 “BTS는 정통의 아리랑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팝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한국에서 시작됐지만 그간 외국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코드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의미에 주목할 수 있으나 더 깊이 매몰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임대근 한국영화학회장(한국외대 디지털콘텐츠학부 교수). 사진=한국영화학회 제공임대근 학회장은 아리랑이 담고 있는 감정 구조로 ‘한·정·흥’을 제시하며 영화 ‘서편제’의 롱테이크 장면을 그 상징으로 꼽는다. 조용히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한 인물들이 어느 순간 북을 치고 신명 나게 노래하는 흐름이, ‘한’에서 ‘정’으로, 다시 ‘흥’으로 이어지는 아리랑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恨)을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누구나 품고 살아가는 보편의 감정으로 보고, 아리랑이 이를 함께 나누고 위로하는 문화적 매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영화학회와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한국영화교육학회, 한국영상자료원 등 4개 단체(기관) 공동 주최로 5월 16일 한국영상자료원(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열린다. 임 학회장은 “나운규의 아리랑과 BTS의 아리랑이 만난 올해 학술대회가 대중에게 공감대와 생각할 주제를 제시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