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이크아웃 찻집 ‘지차바차’가 특별한 이유는 차보다 사람에 있다. 이곳은 차 한잔과 함께 사람 사이의 온기를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면 왼편에는 ‘건강’이라고 적힌 작은 휴식 공간이, 오른편에는 주문 카운터가 자리한다. 메뉴는 ‘지차(생강 호지차)’와 ‘바차(자스민 녹차)’처럼 재치 있는 이름의 차부터 말차라테까지 총 7종. 일본의 대표적인 차 산지인 시즈오카현에서 들여온 찻잎과 말차를 사용해 맛과 품질에도 공을 들였다.
주문 방식 역시 독특하다. 손님은 주문서에 음료 종류와 온도, 토핑, 컵 색상, 굿즈 구매 여부 등을 체크한 뒤 계산대로 가져간다. 주문서 작성용 펜은 실버 세대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선명한 핑크색 형광펜을 사용했다. 계산대에는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 스태프 한 명이 앉아 주문을 받는다. “글씨가 너무 작네”라며 커다란 돋보기로 주문서를 들여다보는 모습은 이곳의 명물 같은 장면이다. 결제는 선불이며, 캐시리스 방식만 가능하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스태프들은 손님 이름을 손글씨로 적은 라벨을 컵에 붙여 건네고, 취미나 일상 이야기를 편안하게 주고받는다. 단순히 차를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 사이의 교류를 만들어내는 것이 이곳의 핵심이다. 일반적인 카페에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느긋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공간을 메운다.
시부야의 문화·트렌드를 소개하는 일본 매체 ‘시부야분카’는 최근 지차바차를 집중 조명했다. ‘젊은이의 거리’로 불리는 시부야 한복판에서 고령층이 주인공이 된 새로운 노동 실험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지차바차의 스태프는 약 16명. 연령대는 60대 중반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하루 평균 6명이 교대로 근무하며, 시니어 스태프들이 손님 응대를 맡고 음료 제조 등은 젊은 스태프가 지원한다.

매장 책임자인 요시다 준키 씨는 “줄이 길어질 경우 손님들이 줄 정리를 도와주는 대신 음료를 제공하는 ‘손자 제도’도 준비 중”이라며 “세대를 넘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매장에서는 젊은 손님들이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거나, 시니어 스태프들과 옛날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매장에서 일하는 78세의 사치코 씨는 “활동적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시니어들이 많다”며 “이곳은 그런 사람들이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장소”라고 말했다. 이어 “핵가족화와 스마트폰 중심 생활로 세대 간 접점이 줄어드는 가운데, 얼굴을 맞대고 직접 대화하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된다”고 덧붙였다.

시부야는 현재 대규모 재개발이 진행 중인 지역이다. 요시다 씨에 따르면, 이번 프로젝트 역시 재개발 과정에서 생긴 유휴 공간 활용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매장은 약 1년 반에서 2년 정도 운영되는 기간 한정 공간으로, 재개발 진행 상황에 따라 종료되거나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 요시다 씨는 “재개발의 틈새에서 시작된 작은 공간이 단순한 화제성에 그치지 않고, 고령층 일자리와 세대 간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일본 전역으로 번지는 실버 프로젝트
이러한 움직임은 ‘지차바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일본에서는 건강하고 활동적인 고령층이 주체가 되는 프로젝트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고령자를 ‘지원 대상’이 아닌, 새로운 문화와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언론은 지바푸드를 초고령 사회가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지역 커뮤니티형 노동 모델’로 평가한다. 일반적인 아르바이트처럼 고용되는 구조가 아니라, 시니어들이 조합 형태로 운영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이다. 메뉴 개발부터 조리와 접객까지 함께 맡고, 운영사는 이를 뒤에서 지원한다.
매장에서 제공하는 음식 역시 화려한 유행 메뉴 대신 주먹밥과 된장국, 지역 반찬 같은 ‘집밥’ 스타일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고령층의 속도에 맞춘 운영 방식이다. 운영 시간은 점심 중심 하루 3시간 반 정도로, 무리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현재 지바푸드는 센다이를 넘어 일본 전국 50여 지역으로 확산 중이다.
지차바차와 지바푸드의 사례가 보여주듯, 일본에서는 고령층을 더 이상 돌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빈 상권을 살리고 세대 간 교류를 늘리며 사람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주체로 주목하고 있다. 시부야와 센다이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는 ‘나이 듦’을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풍경을 조금씩 바꿔놓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