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피격사망한 궁정동 안가는 현재 ‘무궁화동산’으로 조성돼 있다. 당시 안가에는 중앙정보부장 집무실이 있었으나 공교롭게도 지금은 청와대 경호처장 공관(오른쪽 작은 사진)이 들어서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물론 ‘안가’는 군부정권 종식 이후 대부분 철거되면서 국민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 갔다. 하지만 청와대 부근에는 여전히 일부 살아남은 안가가 운영되고 있으며 아직 세상에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비공식 ‘안가’도 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특히 최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오찬장소로 ‘삼청동 안가’를 자주 이용하면서,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기자는 지난 2월 5일, 청와대 인근 궁정동에 있는 ‘무궁화동산’을 찾았다. 전날까지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탓에 동산은 한 폭의 ‘설경’을 연출했다. 동산 주변에는 청와대를 견학하기 위해 모인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청와대 주변 경찰 인력들의 삼엄한 경비를 제외한다면, 썩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비극의 장소다. 이곳은 지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격돼 사망한 ‘궁정동 안가’가 위치했던 곳이다. 훗날 공개된 궁정동 안가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집무실이 위치한 ‘본관’을 필두로 ‘구관’과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첨단 건물 신관(가, 나, 다 동으로 구성. 이 중 10·26사태가 벌어진 장소는 2층 양옥으로 지어진 나동) 세 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사건이 벌어진 신관 나동의 경우, 복층 구조에 1층 한가운데 양어장이 자리 잡은 독특한 형태였다고 한다.
사실 안가는 박 전 대통령 집권 중기인 1960년 말부터 청와대 인근 궁정동 삼청동 청운동 효자동 등을 중심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렇게 들어선 안가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12채. ‘안가’ 건축은 공교롭게도 중앙정보부의 건의로 시작됐다. ‘미국 등 외국의 경우, 각 국가의 원수들이 공식 공관(한국은 청와대)의 출입이 부담스런 인사와 긴밀한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안가(일명 세이프 하우스) 한둘은 다 마련돼 있다’는 인식에서 필요성이 대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자주 찾는 삼청동 안가(사진의 왼쪽 원). 길 건너편으로는 헌법재판소장 공관(오른쪽 원)이 위치해 있다.
당시 김재규의 ‘거사’에 동참했던 박선호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은 재판 증언에서 “각하는 ‘궁정동 안가’를 포함해, 한 달 평균 10번 정도 안가를 찾았다. 청와대 인근에는 궁정동 외에도 대여섯 군데의 안가가 더 있다. 여기에는 일류 연예인 수십 명이 연관돼 있다. 아마 안가의 실체가 밝혀진다면 서울시민들이 깜짝 놀랄 것이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일부 핵심 참모들과의 ‘대행사’도 자주 열었지만, ‘소연회’라 불리는 은밀한 행사도 한 번씩 즐겼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 행사에는 시중을 드는 여성들 외에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다. 소연회가 열리면, 당시 궁정동 안가를 담당하던 중정 소속 경비대원들은 “절대 들어오지 말라”는 박 전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방 밖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장충동 후암동 연희동 인근에 대형 요정 수 채를 운영했던 당대 ‘밤의 여제’ 김 아무개 마담은 ‘안가’에 여성을 공급하는 인물로 유명했다. 당시 김 마담에게는 전국의 호스티스들은 물론 ‘큰돈’을 만지고 싶은 미모의 연예인들도 대거 몰렸다고 한다.
궁정동에 들어가면 하루 족히 10만~20만 원(1975년. 쌀 한 가마 가격이 1만 8000원 정도였음)은 벌 수 있다는 은밀한 소문이 퍼지면서, 수많은 여성들이 앞다투어 몰려들었다는 것. 가수 심수봉과 여대생 신재순도 각자의 회고록에서 김 마담을 통해 안가에 입성했음을 밝힌 바 있다. 김 마담의 파워는 5공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쿠데타 작전에도 동원됐다. 김 마담은 당시 전 전 대통령의 사주를 받아 전 전 대통령이 ‘거사’를 치를 동안 장태완 등 반 쿠데타 세력들을 술집에 잡아뒀다고 한다.
10·26사태 이후 문제의 ‘궁정동 안가’는 신군부에 의해 폐쇄조치 됐지만, 안가의 밀실 정치는 그 후에도 계속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는 5공 시절 ‘비리의 온상’으로 알려진 ‘일해재단’ 설립과 관련한 중요한 논의가 삼청동 안가 등에서 이뤄졌다. 전 전 대통령은 일해 재단을 통해 매년 수백억대 기금을 조성하면서 ‘검은 돈’을 축적해갔다. 이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은 재벌들과 안가에서 모임을 가지며 기금 조성을 빙자해 ‘돈’을 요구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정원식 당시 국무총리가 ‘전교조 교사 해고’를 이유로 외대학생들에게 집단 폭행당한 뒤, 참모들과 대책을 논의하던 장소도 ‘안가’로 알려진다.
군부정권이 종식되고 1993년 YS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가’는 대대적 철거 작업을 통해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물론 그 이후에도 일부 안가는 살아남았다. 현재 공식적으로 살아남은 안가는 금융연수원(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 맞은편 비탈길 위에 자리 잡은 ‘삼청동 안가’뿐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잠깐 - 비공식 안가 존재할까 공식적으로 삼청동에 있는 몇몇 안가 건물을 제외하고 국내의 안가는 YS시절 모두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아직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공식 안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소문도 있다. 특히 청와대 경호동 위에서 북악산 줄기로 이어지는 한옥촌에 대통령이 은밀하게 사용하는 ‘비공식 안가’가 숨어 있다는 풍설이 오래전부터 나돌고 있다. 정치적 목적보다는 대통령들 저마다 청와대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비밀의 장소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청와대는 해가 떨어지면 경비인력 외에 인적이 드문 적막한 곳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에서 생활하는 대통령들 대부분 답답함을 호소하곤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청와대 생활이 너무 답답해, 영부인과 몰래 청와대를 빠져나와 종종 드라이브를 즐겼다고 밝힌 바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
10·26 비극 ‘궁정동 안가’ 비화 ‘그곳에선 김재규가 대통령’ 공판정에 출두한 김재규 피고인. ‘10·26사태’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우연이 아닌 필연에 가깝다. 현재 안가를 관리하는 주체는 국정원(10·26사태 당시는 중앙정보부)이 아닌 청와대 경호처다. 하지만 궁정동 시절 안가 경호와 관리 주체는 전적으로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였다. 당시만 해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안가를 찾으면 대통령의 경호는 중앙정보부 소속 안가 경비대원들이 맡았다. 당시 청와대에서 박 전 대통령을 모시고 나온 경호실 인력들은 안가 밖에서 대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10·26사태는 당시 이러한 사정 때문에 터졌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중앙정보부 소속 궁정동 안가 경비대원들은 모두 김재규 부장의 절대적 지휘 아래 있었다. 궁정동 안가는 사실상 김재규 부장의 ‘홈그라운드’와 다를 바 없었다. 당시 궁정동 안가는 대통령을 위한 비밀 공간이었지만, 달리 보면 대통령 경호 시스템이 전적으로 무력화되는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김재규 부장이 사전에 자신의 부하 대원들과 ‘거사’를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특수한 상황에서 가능했다. 당시 김재규 부장을 도와 거사에 가담했던 박흥주 중정부장 수행비서는 사형 직전 교도관에게 “김재규 부장이 또다시 내게 그런 명령을 내린다면, 나는 또 따랐을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김재규 부장에 대한 궁정동 안가 대원들의 충성심은 절대적이었다. 궁정동 안에서만큼은 ‘박정희’가 아닌 ‘김재규’가 ‘갑’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당시 사정을 생각해본다면, 당시 중앙정보부장 건물 자리에 경호처장 건물이 들어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0·26사태의 비극 속에서 두 조직 사이 ‘경호 권력’의 이동이 이뤄진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
박 당선인 공관 ‘삼청동 안가’ 해부 MB는 예배장소로 활용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공식 안가인 삼청동 안가는 전두환 정권 시절 건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는 지난 2월 5일, 인수위 맞은편 산비탈 길 위에 있는 삼청동 안가를 찾았다. 안가 가까이 다가가 관찰을 시도했지만, 그 앞을 지키던 경찰과 경호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접근을 차단했다. 초소에서 만난 한 경호원은 “이곳은 취재할 수 없는 지역이다. 현재 당선인이 이용하는 곳이다”며 막아섰다. 결국 한 걸음 물러서 원거리에서 주변 구조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인근 고지대에 있는 8층 높이의 ‘감사원’ 건물 옥상에 올라가 관찰을 시도했지만, 감사원 측 관계자는 입구를 막아서며 “이곳은 촬영불가 지역이다. 감사원 건물은 ‘고도제한’ 예외를 적용받은 유일한 고층건물이다. 이곳 옥상에서 청와대 측 방면으로 촬영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삼청동 안가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던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감사원을 포기하고 또 다른 장소를 물색하던 중 인근 P 대학원 건물을 발견했다. 다행히 삼청동 안가는 이 지점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보였다. 건물은 전통 기왓장이 얹어진 2층 양옥집이었다. 외벽은 푸른색 계열로 회칠이 돼 있었다. 그 옆에 빨간 벽돌 양옥집 두 채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청와대 비서실장과 헌법재판소장 공관이었다. 이 두 양옥집은 삼청동 안가의 일부 건물을 개조해 공관으로 재활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노무현 정권 2인자였던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과 잠시 이웃하며 살기도 했다(사진과 약도 참조). 이 삼청동 안가 내부는 크게 1층과 2층으로 구분된다. 1층은 경호원들이 대기하는 장소로 쓰이며 실질적으로 대통령이 사용하는 공간은 2층이라고 한다. 2층에는 20인 정도가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식당과 응접실, 주거 공간, 화장실이 있다고 한다. 여느 가정집과 별 차이 없는 구조다. 비교적 평범한 외형이지만 창문과 외벽은 모두 방탄 처리가 된 것으로 알려진다. 외부 경계를 위해 CCTV 수십 대도 실시간 작동한다. 이곳은 문민정부 시절 이후 대통령 당선인이 이용하는 ‘공관’ 역할을 하고 있다. 평시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인사 검증 등 업무 장소로 쓰인다는 얘기도 있지만, 청와대 경호처 측은 이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이곳 삼청동 안가와 사저를 오가며 당선인 인수위 업무를 이어갔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삼청동 안가를 가장 많이 활용한 대통령이다. 당선인 시절 공관으로 사용한 것은 물론 현직에서도 이곳을 자주 찾았다. 김진홍 목사 등 친분이 있는 목사를 초빙해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이용했는가 하면, 이곳에서 최측근들과 비공식회동을 하기도 했다. 특히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시절에는 삼청동 안가에서 여러 차례 여권 핵심 인사들과 현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이 대통령은 안가 앞에 있는 테니스장을 이용하기 위해 안가를 찾기도 했다. 최근 박근혜 당선인도 삼청동 안가를 자주 찾고 있다. 인수위 사무실 바로 앞에 위치한 이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장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보안’과 ‘밀봉’을 중시하는 박 당선인의 성격과 잘 어울리는 장소라 할 수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