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40여 건의 사건을 맡아 법 최면 수사를 통해 해결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최예봉 경위.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눈을 감으세요. 당신은 이제 사건 당시 현장 속으로 돌아갑니다. 뭐가 보이시나요?”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 감춰진 기억을 끌어내는 최면술. 최면을 이용해 사건의 목격자에게서 범인의 단서를 찾아내는 수사기법이 있다. 바로 법 최면 수사다.
경기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는 2009년부터 4명의 법 최면 전문 수사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해마다 40여 건의 사건을 맡아 해결의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수사팀의 중심에는 최예봉 경위가 있다.
최 경위가 법 최면 수사를 시작한 것은 2000년. 10년 넘게 법 최면 수사를 해온 최 경위는 2010년 용인에서 발생한 KT&G 현금수송차량 날치기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수사가 시작됐을 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현금수송차량을 막아선 차량의 정체였다. 사건 발생 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아무런 증거도, 흔적도 없었다. 그런데 사건의 목격자가 있었다. 우리는 그를 상대로 앞 차량의 번호판을 알 수 있는지 최면을 걸어봤다. 그는 ‘38허’까지 기억해냈다. 경찰이 렌터카 업체를 중심으로 수사를 시작했고, 피의자의 동선과 행선지를 파악해 범인들을 검거할 수 있었다.”
2009년 발생한 강호순 연쇄 살인사건에서도 최면 수사가 한몫을 했다. 최 경위는 “강호순은 경찰에 검거된 이후에도 연쇄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범행 물증이 나와야 겨우 관련 사건만 자백할 정도로 영리했다. 우리는 살해된 피해자들을 마지막으로 본 목격자를 찾아 최면 수사를 진행했다. 그들 중 강호순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이렇게 모인 증거들을 토대로 강호순에게 범행 일체를 자백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최면 수사는 피해자가 전혀 기억을 못하는 경우에도 최면을 통해 잠재의식 속 기억을 꺼낼 수 있었다.
“성남에서 강도강간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는 술을 많이 마셔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택시를 탔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눈을 떠보니 옷이 다 벗겨진 채로 여관에 있었다. 그는 택시차량이나 운전자의 모습 등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 경우는 한 번도 최면을 시도한 적이 없어 호기심이 생겼다. 최면을 걸었더니 흐릿하게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에게 손을 들어 택시를 세운 장면을 기억해내게 했다. 차량은 무엇이었는지, 택시 지붕에 표시등은 둥근 모양이었는지, 꽃 모양이었는지 등을 물었다. 다시 택시 안에서의 상황을 제시했다. 그는 운전자의 뒷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옆으로 시선을 옮겨 차량에 붙은 택시운전자격증의 기사 사진을 보도록 했다. 그는 사진 속 운전자의 모습을 묘사했고, 이를 토대로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이처럼 최면에 걸린 사람에게 상황을 제시해주고 묘사를 하게 하는 최면기법도 있다.”
그러나 법 최면 수사를 하면서 아쉬울 때는 없었을까. 최 경위는 “가장 안타까울 때가 중요한 사건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이 최면에 걸리지 않을 때다”라고 밝혔다.
“모든 사람이 최면에 걸릴 수 있지만 안 걸리는 경우도 있다. 성격이 적극적이거나, 급한 다혈질의 사람은 최면에 잘 안 걸린다. 예를 들어 내가 최면을 유도하기 위해 ‘당신은 지금 20층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타는 모습을 상상하세요’라고 말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빨리 최면에 걸려 범인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벌써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올라가버린다. 연상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니 최면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이어 그는 “한번은 최면을 걸면서 청룡열차 타는 장면을 연상하게 했다. 최면에 안 걸렸다. 이유를 알아봤더니 그가 고소공포증 환자였다. 이런 경우는 공감대 형성 과정에서 내가 피해자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법 최면 수사에서 공감대 형성 과정은 중요하다. 최 경위는 “최면 수사는 인간의 잠재의식을 다루다보니 최면 상대와의 신뢰관계 등 심리기술이 중요하다”며 “최면을 걸기 전 상대방이 나를 신뢰하고 안심하도록 만들기 위해 공감대 형성 과정을 충분히 갖는다”고 설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기자가 직접 체험해 보니… 마주보던 손바닥이 3분 만에 ‘짝’ 양 손바닥 안에 자석이 있다는 최 경위의 암시가 계속되자 떨어져 있던 손이 최면 3분 만에 맞붙었다. 이종현 기자 다소 긴장한 모습을 보이는 기자에게 최 경위는 “최면에 빠지기 위해선 마음과 자세가 편한 상태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최면에 대해 흔히 생각하는 라이터 불이나 흔들리는 추는 필요 없었다. 그는 “눈을 감고, 간격을 둔 채 손바닥을 마주보게 한 상태로 두 손을 가슴 높이로 올려라”라고 말했다. 이어 최 경위는 “양 손바닥 안에 자석이 있다고 생각해라. 자력이 큰 힘으로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다. 손의 자석은 점점 세지고 있다. 양 쪽에서 계속 잡아당기고 있다. 몸은 그 힘에 따라 간다”며 끊임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최 경위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순식간에 잠이 들듯 최면에 빠질 줄 알았지만 의식은 계속 살아있었다. 밖의 사람들의 대화 소리도 들렸다. ‘이거 정말 최면에 걸리는 건가’ 의구심이 들었다. 그 순간 정말 자력이 있는 것처럼 손바닥이 뜨거워지고 손이 미세하게 끌려가는 게 느껴졌다. 내 손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인지, 그렇게 인식만 되는 건지 눈을 감고 있어 확인할 수 없었다. 최 경위의 암시는 계속됐고, 내 손은 조금씩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손에 마주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그때서야 최 경위는 “이제 눈을 떠보라”고 말했다. 눈을 떠보니 떨어져 있던 손이 어느새 맞붙어 있었다. 시계를 보니 최면을 시작된 지 3분 정도 지났다. 이어 그는 기자에게 “감수성이 많은 편이 아니다. 공감대 형성 과정도 없어 약간의 의구심도 가졌던 것 같다”며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불과 5초 만에 손바닥이 붙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