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오발 사고로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러스 콜럼보와 그가 생전에 낸 음반.
1934년 9월 2일 오후 1시 45분, 웨스트 할리우드의 릴리언 웨이 584번지. 할리우드의 유명한 사진작가인 랜싱 브라운의 집인 그곳에서 한 발의 총성이 들렸다. 얼굴을 감싼 채 마루 위를 뒹구는 한 남자. 총알은 그 남자의 왼쪽 눈을 관통해 뇌에 박혀 있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걸 확인한 브라운은 황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수술로 총알을 빼내는 건 불가능했다. 총성이 울린 지 6시간 만에 그 남자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러스 콜럼보. 당시 음악계와 영화계를 오가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는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에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러스 콜럼보는 전설이었다.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 세대였던 그는 어릴 적 바이올린을 배웠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클럽 밴드에서 활동하며 돈을 벌었다. 무성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영화의 흥을 돋우는 것도 그의 일 중 하나였다. 결정적 기회는 스무 살 때 왔다. 1928년 그는 LA의 코코넛 클럽에서 활동하는 거스 아른하임 밴드의 일원이 되었고 보컬로 빙 크로스비와 듀엣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배우 활동을 시작했고 1930년엔 데뷔 앨범을 냈고, 밴드와 함께 미국 전역 투어를 했다. 이후 자신의 밴드를 조직한 그는 직접 클럽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RCA 레코드와 계약했고 NBC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쇼를 시작했다.
승승장구하는 그에게 스캔들이 없을 수 없었다. 도로시 델이라는 틴에이저 배우와 연애를 시작했다. 매니저이자 작곡가였던 콘 콘래드는 무명 배우와의 관계를 끝내라고 종용하며 콜럼보가 그레타 가르보와 사귄다는 루머를 퍼트리기도 했다. 여러 여배우와 관계를 맺던 그의 정착지는 캐롤 롬바드였다(그녀는 이후 클라크 게이블과 결혼한다). 이후 뮤지컬 출연을 조건으로 유니버설 픽처스와 장기 계약을 맺었고, ‘Prisoner of Love’ 같은 노래는 이후 프랭크 시내트라, 페리 코모, 제임스 브라운 같은 명가수들이 계속 리메이크하는 명곡이 됐다.
결국은 유작이 된 <웨이크 업 앤 드림(Wake up and Dream)>(1934)의 개봉을 기다리던 시기, 캐롤 롬바드와 다툰 콜럼보는 친구인 포토그래퍼 랜싱 브라운의 집에 놀러 갔다. 브라운은 가보와도 같은 총기 컬렉션을 자랑했고 남북전쟁 시절에 사용된 결투용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이때 브라운의 손엔 성냥이 있었는데 방아쇠를 뒤로 당긴 채 찰칵 소리를 내던 중 공이와 공이치기 사이에 성냥이 들어가면서 우발적인 폭발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총은 장전된 상태였고 폭발과 함께 발사된 총알은 콜럼보의 왼쪽 눈을 관통한 후 뇌에 박혔다. 어이없는 사건이었고,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경찰 조사 후 사고사로 처리되어 브라운은 혐의를 벗었다. 수많은 스타들이 참석한 장엄한 장례식이 치러졌고 식장에서 롬바드는 실신했다.
콜럼보의 죽음이 미스터리였다면, 그의 죽음 이후 벌어진 일들은 약간은 기이했다. 당시 콜럼보의 어머니는 고령으로 앞이 잘 안 보이는 상태였으며, 심장이 좋지 않았다. 러스 콜럼보의 형제와 자매들은 아들이 총에 맞아 죽은 사실을 안다면 심장이 안 좋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어머니를 속이기 시작했다(이것은 롬바드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자식들은 어머니에게, 러스 콜럼보가 캐롤 롬바드와 결혼했다고 거짓말을 했으며, 현재 롬바드와 유람선을 타고 여행 중이라고 했다. 그들은 가짜 편지를 만들어 어머니에게 읽어 주었고 가짜 음반까지 만들었다. 이렇게 10년의 ‘위장의 시간’의 흘렀고, 러스 콜럼보의 어머니는 끝까지 아들의 비극적 죽음을 모른 채 1944년에 눈을 감았다. 그녀는 죽은 아들 앞으로 유산까지 남겼다.
사고사로 단정 지어졌던 러스 콜럼보의 죽음은 그가 죽은 지 20년 만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콜럼보의 사촌이자 RKO 라디오 픽처스의 음악 감독이었던 알베르토 콜럼보가 갱스터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 그러자 러스 콜럼보의 죽음에 대한 의혹도 소급되었다. 혹시 그도 이탈리아 마피아에 의해 목숨을 잃은 건 아니냐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밴드와 클럽 일을 주로 했고 이런저런 사업을 확장하던 그가 조직과 충돌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증언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러스 콜럼보 주변의 인물들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틴에이저 시절 콜럼보와 잠시 연인이었던 도로시 델은 콜럼보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불과 열아홉 살의 어린 나이였다. 그리고 콜럼보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캐롤 롬바드는 1939년에 클라크 게이블과 결혼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잉꼬부부가 됐다. 하지만 1942년 그녀는 비행기 사고로 3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저주와도 같은 잇단 죽음들이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