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법칙>이 조작 논란에 휩싸여 홍역을 치르고 있다.
모든 것이 김 대표의 헛된 주장이라 치부하던 제작진은 논란이 이어지자 일부 장면에서 과장된 표현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정글의 법칙>을 연출하는 이지원 PD는 “더욱 철저하게 준비하고 체크하겠습니다. 자칫 진정성을 가릴 수 있는 과장된 편집과 자막을 지양하겠습니다. 카메라 밖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장상황에 대한 설명도 친절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이대로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은 낮다. <정글의 법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지나칠 정도로 높기 때문. 이 프로그램은 예능으로는 드물게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구가하고 있다. <정글의 법칙>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는 이유는 브라운관을 통해 보고 듣고 간접 경험하는 내용들이 ‘팩트’라고 믿는 대중 덕분이다.
정글 개미에 물린 김병만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촬영 중단 사태에 이르고, 갑자기 불어난 물 때문에 고립되는 상황에 처한 엠블랙 미르의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위기감을 느끼고 고통을 공유한다.
항상 화려하게만 보이는 스타들이 분장기 없는 얼굴로 야생에서 생활하고 직접 먹을거리를 찾으며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벌레를 입으로 가져가는 장면 등을 통해 정글이라는 특별한 공간 속에서 보여주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장면에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실제 상황이라 믿기 때문이다. 물론 정글이라는 곳에 놓인 출연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위험은 실존한다. 하지만 맨손으로 모든 것을 일구는 것과 정해진 틀 안에서 행동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정글의 법칙>의 제작진은 “제1원칙은 안전”이라 말한다. 지당한 말이다. 출연진과 제작진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단순한 방송 사고를 넘어 정말 대형사고가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 바누아투 편.
이는 최근 홍역을 겪은 MBC 예능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결국 하차한 가상부부 이준-오연서 커플은 오연서가 동료 배우 이장우와 열애설에 휩싸이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출연자를 정할 때 ‘이성친구가 없고 출연하는 동안 이성 친구를 만들지 않는다’를 전제로 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가상부부가 실제 커플로 발전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그들의 행보를 지켜본다.
최근 이런 논란이 이어지는 이유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예능의 대세로 자리 잡은 후 생긴 풍속도다.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대중은 대본조차 없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본 없는 방송은 없다.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역시 주어진 설정과 상황은 필요하다. 세부적인 내용만 없을 뿐 대본은 존재한다. 한 방송 관계자는 “작가들이 각 캐릭터에 걸맞은 대사와 행동을 써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드라마의 대사와 다르다. 그래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프로그램의 알맹이는 각 출연진이 좌충우돌하며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제작진 역시 어떤 결과물을 낼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중은 쉽게 싫증을 느낀다. 자극에 반응하는 대중의 역치 역시 높아지기 때문에 제작진은 점점 더 ‘센 것’을 요구한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센 것’이란 ‘실제’라는 탈을 쓴 자극적인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은 ‘연출’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관계자는 “100% 실제 상황이라는 문구만큼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표현은 없다. 스포츠가 ‘각본 없는 드라마’여서 재미있듯, 대중은 연출된 상황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정글의 법칙> 역시 지나치게 ‘사실’임을 강조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상황이 초래됐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촬영 기간과 제작비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납기를 맞추기 위해 일반적인 예능프로그램은 사실상 100% 실제를 담보하기 어렵다. 이는 사실에 근거해야 하는 다큐멘터리 역시 마찬가지다. 익명을 요구한 다큐멘터리 제작 관계자는 “시간과 자금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는 특정 상황을 연출하곤 한다”며 한 예를 들었다.
야생에서 뱀이 쥐를 통째로 삼키는 장면을 찍기 위해 며칠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했다. 결국 제작진은 뱀에게 먹잇감으로 쥐를 던져줬다. 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은 뱀은 도무지 쥐를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결국 뱀에게 억지로 쥐를 먹였다. 그러니 뱀이 쥐를 토해 내더라. 이 화면을 거꾸로 돌리는 방식으로 해당 장면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물론 이것은 극히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그만큼 경우의 수를 예측할 수 없는 야생에서 원하는 장면을 얻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오지에 다녀온 <정글의 법칙> 제작진이 억울해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분명 고생 끝에 얻은 장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욕심을 조금만 덜어내고 조금 더 솔직하게 접근했더라면 지금처럼 사면초가 놓이진 않았을 것이다”고 안타까워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