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16세의 자진 퇴임 배경에 대해 각종 소문이 이어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415년 교황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6세기 만에 처음으로 사임하는 교황이 된 베네딕토 16세의 퇴위에 대해 교황청 일부 최측근들과 가족들은 “이미 예견했던 일”이라며 덤덤해 했다. 고령으로 인해 기력이 쇠했기 때문에 이미 오래 전부터 조심스럽게 사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교황의 건강 문제는 사실 이미 즉위 때부터 불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제265대 교황으로 선출됐을 당시 그의 나이는 이미 78세였으며, 뇌졸중 병력까지 갖고 있었다. 1991년 뇌졸중을 일으켰던 그는 당시 일시적으로 시력 장애를 겪었으며, 완전히 회복되긴 했지만 그 후에도 현기증, 수면 장애, 기억력 감퇴 등의 후유증을 겪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교황은 고령의 남성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전립선 질환을 앓고 있으며, 글을 읽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로 시력이 급격히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에는 알프스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넘어져서 손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었다.
또한 점차 심해지는 퇴행성관절염은 교황 업무는 물론이요, 일상생활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날이 갈수록 짧은 거리도 걷기 힘들어했으며,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거나 다시 일어설 때에도 고통스러워했다고 바티칸 관계자들은 전했다. 따라서 2011년 10월 처음으로 공개석상에서 이동식 연단을 사용한 것이나 지난해부터 지팡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 역시 모두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가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사임 발표로 인해 교황이 심장박동기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세상에 처음 알려졌으며, 이 사실을 처음 보도한 이탈리아 일간지 <솔 24오레>는 “교황이 3개월 전 로마에서 심장박동기 배터리 교체 수술을 받았다. 이 수술은 극비리에 진행됐다”고 전했다. 이에 롬바르디 바티칸 대변인은 “사실이다. 교황은 즉위 이전부터 10년 동안 심장박동기를 착용해왔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수술은 정기적인 배터리 교체 수술이었을 뿐, 이번 퇴위와는 무관하다”면서 “교황의 상태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로이터/뉴시스
80년대 그가 뮌헨 대주교로 재임하던 시절 발생했던 이 스캔들은 2010년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으며, 당시 교황은 11세 소년을 성추행한 신부를 ‘너그럽게’ 용서해줬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이로 인해 바티칸 일부에서는 그가 아동 성추행 문제를 적절하게 다루는 데 실패했고, 이로 인해 교회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며 자진 퇴위를 촉구했었다. 하지만 당시 교황은 “나는 위기에서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면서 사임 의사가 없음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런 교황의 태도에 대해 가톨릭교회의 성추문에 대한 다큐영화를 제작했던 알렉스 기브니는 “당시 교황이 보여준 태도는 마치 범죄 공모자처럼 느껴진다. 교황은 궁극적으로는 교회의 명성에 더 신경을 썼다. 마치 범인을 희생자에게서 보호하는 것처럼 비쳤다”고 비난했다.
이밖에 교황이 바티칸 은행의 부패와 추기경들 간의 권력 투쟁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뜻에서 자진 사임했다는 추측도 있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어쩌면 모든 것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교황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자신의 사임을 통해 가톨릭교회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교황청의 추악한 이면은 지난해 교황의 최측근 집사가 비밀리에 빼돌린 교황청의 내부 문서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문서에는 교황청의 부패와 암투를 보여주는 내용들, 가령 바티칸이 예산을 실제 집행액보다 부풀려서 책정한 후 수백만 유로를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돈세탁까지 일삼고 있다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교황은 재임 시절 바티칸 은행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자체 금융감독기구를 설립하거나 돈세탁 금지령을 내리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지난 7년여 동안 가톨릭교회의 위신은 점차 좁아지기만 했으며 전 세계에서 신도들 수는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서 2010년 <내셔널 가톨릭 레지던스>는 “교회 역사상 최대의 위기일 수도 있다”며 경고하기도 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한 지붕 두 교황 가능할까 전임 교황 칭호ㆍ예우 고심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향후 거취는 과연 어떻게 될까. 벌써부터 퇴임 교황의 역할론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바티칸은 자칫 ‘두 명의 교황’을 함께 모시는 유례없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며 잔뜩 긴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베네딕토 16세가 퇴임 후에도 바티칸 내 수도원에서 머물 뜻을 밝히자 물리적인 거리로 보나 상징적인 의미로 보나 ‘한 지붕 두 교황’을 모셔야 하는 경우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티칸 다이어리>의 저자인 존 태비스는 “전직 교황의 역할은 무엇일까? 남은 일생 동안 입을 다물고 조용히 지내는 것일까? 만일 그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거나 후임 교황의 의견에 반대할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바로 이럴 경우 ‘두 명의 교황’이 존재하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고 꼬집었다. 이를테면 개방적 성향의 후임 교황이 에이즈 예방을 위해 콘돔 사용을 권장할 경우 강경 보수파인 베네딕토 16세가 과연 입을 다물고 있을지, 혹은 동성애나 낙태 문제에 대해 새 교황이 온건한 자세를 취할 경우 평소 이에 대해 적극 반대했던 그가 가만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럴 경우 가톨릭 관계자들이 가장 염려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분열과 갈등이다. 바티칸 내부 인사들과 전 세계 가톨릭 신도들이 전임 교황과 후임 교황 편으로 나뉘어 충돌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롬바르디 바티칸 대변인은 “교황은 새 교황의 임명이나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하면서 “그는 마치 선종으로 퇴임하는 것과 같이 모든 권한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족들 역시 “만일 교회가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경우에는 돕겠지만, 후임 교황의 업무에는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생존하는 전임 교황이 존재한다는 이례적인 상황에 교황청은 앞으로 그에 대한 예우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에 대한 바티칸 내부 규정이 전무하기 때문에 경호원을 제공해야 하는지, 칭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두고 혼란이 일고 있는 것. 이에 롬바르디 바티칸 대변인은 “교황은 죽을 때까지 베네딕토 16세라는 이름을 유지할 수 있다. 선출 당시 직접 고른 이름으로, 교황의 권한이다. 하지만 그를 어떻게 부를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칭호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교황’ 대신 ‘로마 명예 주교’라는 직함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다른 말로 ‘두 번째 교황’이라는 의미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