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자신과 맞는 작품을 만나야지 연기를 꽃 피울 수 있다. 어쩌면 ‘운’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작품 복을 만나 제2의 인생을 맞은 배우들이 있다. 방송가에서 꿈의 시청률로 통하는 40%를 이루고 3일 막을 내린 KBS 2TV 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의 주인공들도 그런 경우다. <내 딸 서영이>는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딸, 그런 딸을 향한 부성애를 숨기고 살아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며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냈다. 그동안 막장의 소재로 통했던 출생의 비밀마저도 개연성 있게 그려 넣으며 시청률 40%를 가뿐히 넘었다. 자연히 출연 배우들을 향한 관심도 커졌다. 드라마 인기 덕분에 주인공 서영 역할의 이보영은 30대 중반의 여배우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고, 박해진은 ‘구사일생’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군 비리 의혹을 털어내고 재기에 성공했다. 중견 배우 천호진은 데뷔 30년 만에 전문적인 매니지먼트 관리를 받게 됐다. ‘서영이가 살린 사람들’을 소개한다.
국민 드라마 <내 딸 서영이> 출연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이보영.
흔히 이름이 알려진 스타들은 다른 배우가 거절한 역할을 맡기를 꺼린다. 특히 <내 딸 서영이>처럼 여주인공을 처음 맡기로 했던 연기자가 최정원이란 사실이 널리 알려졌을 때는 더하다. 하지만 이보영은 달랐다. “좋은 작품이라 참여하고 싶다”던 이보영의 결심은 그에게 결국 제2의 전성기를 맞게 해줬다.
이보영은 30대 중반의 비슷한 경력의 여배우들과 비교해서도 적극적으로 연기 활동을 벌여왔다. 지난해 엄태웅과 출연한 <적도의 남자>에서는 가혹한 운명에 처한 여주인공을 안정된 연기력으로 소화했고 공백 없이 택한 <내 딸 서영이>에서도 절제된 연기로 이야기에 힘을 보탰다. 존재감을 알리고 시청률까지 올린 이보영이 맞은 전성기 인기는 광고에서 드러난다. 좀처럼 맡기 어려운 커피 CF 주인공으로 발탁돼 은은한 매력을 광고로 잇고 있다.
<내 딸 서영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기약 없는 연기 공백을 보내야 했던 연기자도 있다. 군 면제 논란에 휘말렸던 박해진이다. 2010년 정신질환 치료 등을 이유로 군 면제를 받은 사실이 알려진 후 박해진은 여러 의혹에 휘말려 활동을 중단했다. 의혹은 논란을 일으켰고 얘기 중이던 드라마의 캐스팅 무산으로 이어졌다. 박해진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돌아선 팬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박해진은 3년의 국내 활동 공백을 보냈다.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박해진.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들 남매의 ‘문제적 아버지’ 역을 맡아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 천호진이 맞은 변화도 상당하다. 1983년 MBC 공채 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하고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소속사’가 생겼다.
천호진 영입에 성공한 매니지먼트사는 제이와이드컴퍼니. <내 딸 서영이>에서 천호진이 목숨을 걸고 생명을 구한 사위 이상윤의 소속사다. 제이와이드컴퍼니는 천호진의 영입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처음에는 매니지먼트 소속으로 활동하는 데 거부감을 갖고 있던 천호진은 <내 딸 서영이>를 찍으며 촬영장에서 몇 개월 동안 봐온 이상윤 소속사 사람들에 대한 신뢰와 꾸준한 설득으로 결국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천호진은 <내 딸 서영이> 종영 이후 소속사의 지원 속에 더욱 활발한 연기에 나설 계획이다.
오랫동안 ‘스타’를 배출하지 못했던 공채 탤런트 중에서도 <내 딸 서영이>는 보석을 찾아냈다. 며느리 호정 역의 최윤영은 얼굴도 이름도 낯선 신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인기 드라마는 그를 향한 대중의 시선을 바꿔 놓았다. 박해진의 철부지 아내이자 천호진의 귀여운 며느리로 출연한 최윤영은 단숨에 중·장년 시청자를 사로잡으며 ‘국민 며느리’로 떠올랐다. 어리지만 속이 깊은 역할이 만들어낸 인기다.
최윤영은 2008년 KBS 21기 공채 탤런트 출신이다. 방송사 소속 연기자가 그렇듯 최윤영 역시 데뷔 후 2년 동안은 KBS가 방송하는 크고 작은 드라마의 단역으로 참여했다. 자연히 대중의 눈에 띄기 쉽지 못했다. 이름이 있는 배역을 맡기 시작한 건 2010년 방송했던 <제빵왕 김탁구>부터였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지난해 남·북 탁구 단일팀 실화를 그린 영화 <코리아>로 비중을 높였지만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실패했다.
<내 딸 서영이>를 만나서부터는 상황 역전. 데뷔 후 4년 동안 해온 꾸준한 활동은 시청률 40%짜리 드라마 한편의 위력을 따라가진 못했다. 최윤영은 <내 딸 서영이>의 폭발적인 인기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드라마는 물론 광고계에서도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