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정체된 가운데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같은 진영에 매서운 칼날을 들이대는 일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지난 2월 27일 윤성규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4대강이 시각적으로 호소(늪이나 호수)화돼 있다”고 말했다. 여권 진영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소신 발언’이었다. 윤 장관 내정자는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법질서·사회안전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만큼 그의 발언을 박근혜 대통령과 떼어 놓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로 활동했던 이현재 의원 역시 4대강과 관련해 “올 6월에 찬성·반대파가 같이 가서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 2월 1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4대강 총인처리시설 입찰 관련 감사요구안’을 조용히 의결했다. 총인처리시설이란 녹조 현상의 원인이 되는 인(P)을 제거하는 시설을 말한다. 환경부는 4대강 구역 녹조 현상이 심해짐에 따라 지난 2010년부터 총인처리시설 설치 사업을 추진했는데 대부분 턴키입찰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36개 총인처리시설 사업의 평균 낙찰률이 97.5%로, 비현실적으로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담합 의혹을 받고 있는 30여 업체 중에는 코오롱워터앤에너지(98.9%), 효성에바라엔지니어링(99.7%), 태영건설(99.9%)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코오롱그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과 관련된 기업이고 효성그룹은 이 전 대통령과 사돈 관계로 맺어져 있다. 태영그룹은 대표적인 4대강 테마주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의원실 관계자는 “4대강 총인처리시설은 매년 2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야 한다. 4대강 전체 예산(22조 원)과 비교하면 미미한 액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상당히 큰 규모”라며 “현재 감사원에서 4대강 현장에 직접 인력을 투입해 감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 과정에서 환경부도 적극 협조하는 등 예전과 다른 분위기”라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이번 감사가 “사실상 MB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정치권 의심을 부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민주당 4대강조사특위에서 활동한 한 의원은 “이번에 환경노동위원회가 낸 감사안은 기존 4대강특위 활동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며 “여야가 합의해 처리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지 않느냐. 이로 인해 민주당에서도 4대강특위 활동이 새롭게 재정비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노위 소속 의원실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감사안은 처음부터 4대강이 연관됐다는 사실을 부각하지 않고 환경 문제와 턴키입찰 방식에 초점을 맞췄다. 국토해양부와 청와대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라며 “지난 정권에서 여당은 4대강과 관련한 의혹에 있어서만큼 꿈쩍도 하지 않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감사원 감사를 통해 4대강 공사 부실이 지적되고 이번에 정권이 바뀌면서 ‘브레이크’가 풀린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1년 10월 22일 여주군에서 열린 4대강 새물결맞이 기념행사에 참가, 공사관계자들과 이포보 공도교를 걷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이 같은 상황은 10년 전 ‘대북송금특검’을 연상시킨다.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직을 넘겨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첫 해인 2003년, “국민의 정부 시절 6·15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로 북한에 수천억 원을 건넸다”며 당시 한나라당이 발의한 ‘대북불법송금 특검법’을 전격 수용하고 검찰에 소신 수사를 당부했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과 진보단체는 일제히 대북송금특검을 반대했고 그 중심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있었다. 대북송금특검을 계기로 민주당 내부는 극심한 내홍을 겪으며 두 대통령 사이가 벌어졌지만 노 전 대통령 지지율은 ‘반짝’ 회복했다.
당시 한국갤럽 자료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첫 해 60%를 기록했던 지지율이 4분기 22%까지 급감했지만 이듬해부터 오르기 시작해 2004년 2분기에는 34%까지 회복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 있어 대북송금특검은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이어지면서 자신의 세력을 공고하게 다지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취임식 직전인 지난 2월 셋째 주 한국갤럽이 발표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44% 수준으로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은 지지율에서 출발한 상황이다. 한국갤럽 장덕현 부장은 “해당 여론조사는 취임 이전에 이뤄진 것이기에 역대 대통령들과 단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 사회조사분석사는 “대통령 취임식 행사가 일종의 ‘컨벤션 효과’를 일으켜 지지율이 반등하기도 하는데 아직까지 그 효과가 미미한 것 같다”며 “정치적인 효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체된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같은 진영에 매서운 칼날을 들이대는 일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그간 4대강 사업에 관해 별다른 견해를 밝히지 않은 채 거리를 유지해 왔던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4대강은 내년 장마가 지나고 국민 여론을 살핀 후 판단할 문제”라며 한층 유연한 입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임기 초반부터 전임 대통령의 핵심 사업을 잘못 건드릴 경우 당 내 분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우려도 존재한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4대강으로 인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그 측근들의 사법처리까지 간다면 법치를 강조하는 박 대통령의 이미지가 살아나고 국정 운영에 대한 원동력을 회복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흐지부지된다면 본인의 지지기반인 당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실기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