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다문 ‘입’ 윤창중 대변인 임명 강행과 관련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 “소통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김대변인과 함께 청와대의 ‘입’ 역할을 맡고 있지만, 이 날자 조간신문들에서 ‘불통 대변인’으로 난타당한 윤창중 대변인은 아예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궁금한 게 있어도 물어볼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던 기자들 사이에서 “새 정부 출범 첫 주에 춘추관이 이렇게 스산해도 되는 건가”라는 푸념이 오갔다.
박근혜 정부가 ‘프레스 언프렌들리(Press Unfriendly, 언론에 불친절한)’라는 것을, 그래서 박근혜 정부와 언론의 관계가 초장부터 심각하게 삐걱거리고 있음을 보여주기에는 이날 하루 춘추관 풍경만으로도 충분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단계부터 불거진 불통 논란, 각종 인사 구설수로 인해 ‘허니문 기간’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직후 언론들이 연일 비판 기사를 쏟아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더구나 그 타깃이 새 정부와 언론 간의 매개자 역할을 하는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점은 말 그대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무엇보다도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박근혜 정부에게서 소통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에 출입하게 된 한 기자는 “인수위 대변인으로 활동할 때부터 언론의 공적이 됐던 윤창중 대변인을 청와대에 앉혔다는 것만으로도 박근혜 정부가 언론을 얼마나 가벼이 여기는지 알 수 있다”며 “청와대 홍보수석과 대변인 인선을 앞두고 인수위 출입기자들은 박 대통령 주변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윤창중만 빼곤 다 괜찮다’는 말을 대놓고 했는데도 임명을 강행했다는 것은 소통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아직 세팅이 덜 된 상황이지만 이남기 홍보수석 역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다른 청와대 출입기자는 “새 정부 출범 후 며칠이 지나도록 이남기 수석의 얼굴을 보기는커녕 전화통화도 못했다”며 “기자들과 접촉하지 않는 홍보수석과 무슨 소통이 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청와대 홍보수석과 대변인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였던 5년 전 이명박 정부의 첫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이동관 전 홍보수석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면서 정부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던 것과 너무 대비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언론의 마감시간보다는 일이 먼저’라는 논리다.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출입기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대통령과 정부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을 등한시하는 논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19개 정상급 인사 및 외교 사절단을 접견한 2월 26일 가장 관심을 끌었던 일정은 톰 도닐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일행을 만난 것이었다. 도닐런 보좌관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외교안보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박 대통령이 도닐런 보좌관 일행을 만나 나눈 모두발언은 오전 곧바로 언론에 전달됐지만 비공개 대화 내용이 공개된 것은 오후 6시가 다 돼서였다. 오전 10시부터 20분 동안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이 보낸 특사를 만나 북한 핵실험 등 한반도 안보위기 대응방안을 논의했는데, 그 결과가 국민들에게 전달된 것은 저녁뉴스 또는 다음날 조간신문을 통해서였던 것이다. 기자들 사이에선 “국민이 알든 말든 대통령이 일만 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라며 “청와대가 수용자(국민)는 무시한 채 철저히 생산자 중심의 공보관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는 비판이 오갔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궁금증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확한 상황과 논리를 전달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불통 논란을 키우는 주요 원인이다. 청와대 비서관 인선 지연과 그를 둘러싼 친박계 내부 권력 암투설,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 등의 교체 여부에 대해 언론에서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대통령의 입’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들 사이에선 “엄밀하게 말하면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는 대변인(代辯人)은 없고 대독인(代讀人)만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2월 27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결과에 대한 윤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시간 10분 동안 진행된 회의 결과에 대해 그는 다섯 문장짜리 발표문만 읽었다. 그리고는 “비공개 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하신 말은 모두발언에 충분히 정리돼 소개됐기 때문에 추가 브리핑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뒤 이은 질문에 대해서도 윤 대변인은 “더 이상 말씀드릴 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다 “기자 여러분들도 점심식사를 하셔야 하니 이만 끝내자”고 해 빈축을 샀다.
초반부터 불거진 박근혜 정부와 언론의 긴장에 대해서는 새누리당 친박계 인사들도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 친박계 의원은 “언론과의 관계를 잘 풀어나가야 할 청와대 홍보라인도 중요하지만 박 대통령이 생각을 바꿔야 문제가 풀릴 것”이라며 “당 지도부가 새 정부의 안착을 위해 쓴소리를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