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 대표는 경선 기간 내내 ‘당내 개혁’을 부르짖어 왔다. 정치권에서 말하는 ‘개혁’은 인적청산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보수 중진 인사들의 도움으로 대표직에 오른 최 대표로선 당 개혁작업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이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최 대표는 보란 듯 대대적인 개혁에 대한 ‘예고편’을 내보내고 있다. 우선 벌이고 있는 것은 사전 정지작업. 측근 인사들의 전진 배치, 반 최틀러(최 대표 별명) 성향을 지닌 인사들의 좌천 등을 통해 당을 장악함은 물론, 체질 개선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왼쪽)가 윤여준 의원을 여의도연구소장으로 내정했다. 당 일각에선 곧 ‘피바람’이 불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종현 기자 | ||
정가에선 최 대표가 당을 거머쥐는 과정에서 내세운 ‘최강의 카드’로 주저 없이 윤여준 의원을 꼽는다. 윤 의원은 최근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직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표측은 “윤 의원의 발탁은 최 대표가 여의도연구소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 여의도연구소는 그동안 선거와 관련된 여론조사와 선거전략 수립을 주로 담당해왔다. 그러나 이젠 외부 전문가집단 영입을 통한 정책 연구기능까지 더해 이른바 ‘한국형 해리티지재단’을 꾀한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경선 기간 동안 그 필요성을 역설했던 바 있다.
그러나 당 일각에선 정치권 최고의 책사로 통하는 윤 의원의 기용을 통해 최 대표가 여의도연구소를 당 개혁작업의 모체로 삼으려 한다는 평이 나온다. 심지어 “최 대표가 윤 의원을 통해 사실상 ‘숙청작업’을 하려는 것”이라고 말하는 당내 인사들까지 있다.
이 같은 정서는 특히 ‘반 최틀러’전선에 있는 인사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윤 의원은 지난 2000년 총선 당시 ‘공천 파동’의 주역”이라며 “아마도 최 대표에 반대 성향을 보이는 인사들에 대한 압박이 거세질 것”이라 전망했다.
윤 의원은 지난 2000년 2월, 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피의 금요일’로 일컬어지는 공천 발표를 통해 대대적인 당내 물갈이를 단행한 바 있다. 이는 당시 총선에 정치적 명운을 걸고 있던 이회창 총재 중심으로 당을 재편하는 작업이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최 대표는 물론이고 윤 의원 역시 최근 60대 이상 인사들에 대한 ‘물갈이’를 자주 언급했다더라”며 “최 대표의 최대 숙적으로 떠오르는 서청원 전 대표측 인사들은 물론 ‘친 이회창’계 인사들, 그리고 최 대표에 협력해온 일부 중진들에게도 칼날이 향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윤 의원의 여의도연구소장직 내정에 관한 당내의 엇갈린 의견과 관련, 최 대표측 관계자는 “윤 의원이 평소 인기에 부합하는 정치 행보를 펼친 게 아니라 온갖 궂은 일만 맡아왔기 때문에 당내에서 개인적으로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여의도연구소 정책기능 강화를 위해서는 당내에 윤 의원만한 인사가 없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윤 의원의 연구소장직 내정을 비롯한 ‘여의도연구소 키우기’에 향후 이회창 전 총재의 활동에 대한 견제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최 대표가 윤 의원을 통해 여의도연구소를 해리티지재단 같은 정책연구기관으로 만들려 한다더라”며 “이 전 총재가 귀국해서 연구소를 만들어 사회활동을 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 대표가 미리 선수를 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최 대표측은 이런 시각에 대해 “이 전 총재의 활동이야 당 밖에서 이뤄질 것일 텐데 당내 연구소 활동과 연결 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반박했다.
얼마 전 윤 의원은 지난 총선과 관련한 ‘공천 헌금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지난 2000년 총선 당시 전국구 공천을 대가로 돈을 주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 어느 사업가의 ‘사기죄 고소’ 탓에 검찰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대표 경선에서 최 대표의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한 윤 의원에 대한 최 대표의 신임은 ‘변함 없을 것’이라는 평이다. 윤 의원과 가까운 한 인사는 “민주당 설훈 의원의 폭로 사례에서도 봤듯이 윤 의원은 이번 파동에서도 별 문제 없이 지나갈 것”이라 전망했다. 최 대표측 인사도 “자질에 대한 논쟁이라면 모를까 윤 의원이 전혀 상관도 없어 보이는 ‘공천 뒷거래’ 의혹 때문에 최 대표의 신임이 흔들릴 일은 없다”고 못 박았다.
윤 의원의 입지가 두터워질수록 부담을 느끼는 쪽은 반 최틀러 성향의 인사들. 이들은 인위적인 인적 청산이 시도될 경우 함께 결단을 내릴 것이라며 벌써부터 경계의 목소리를 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