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전 부총리.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대통령보다 우선인 커뮤니티 정서
군도 나름대로 커뮤니티가 있다. 그 커뮤니티의 정서가 때로는 대통령이나 집권세력의 철학과 정책보다 우선한다. 대통령은 길어야 5년이지만 커뮤니티의 생명은 그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길기 때문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던 2006년 말, 당시 군 커뮤니티의 분위기와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군 출신 인사들의 태도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대통령은 하자고 하고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를 비롯한 군 커뮤니티는 반대를 했다. 논쟁이 치열해지자 대통령이 군 출신 인사들을 비난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군 출신 인사들도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군과 군 출신 인사들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성명을 발표하는 자리에 참여정부에서 합참의장을 비롯해 군의 최고위직을 맡았던 각 군 참모총장 출신들이 다수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청와대 국방보좌관 출신으로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군 출신 인사까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 사업 나눠 먹어도 적게 받은 쪽 장관은 사표
참여정부 초기에 신성장동력 사업이 있었다. 홈오토메이션, 텔레마틱스, 차세대 전지 등 10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육성하는 사업이었다. 미래에 우리를 먹여 살릴 사업으로, 대규모 재정투자가 따르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사업들의 관할부처를 정해야 하는데,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 그리고 과학기술부가 모두 자신들이 맡아야 한다는 거였다. 사업 하나하나마다 관할 문제에 시비가 걸렸다. 그러다 보니 사업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표류했다. 한 달 두 달 밀리더니 나중에는 한 해를 훌쩍 넘기게 됐다.
우선 장관들조차 합의를 보고 싶어도 쉽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자기 부처의 공무원들이 다 쳐다보고 있고, 그 뒤에는 앞서 말한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있다. 양보를 하는 순간, 공무원이나 커뮤니티로부터 ‘○○부를 죽인 무능한 사람’이나 ‘○○부를 팔아먹은 배신자’란 비난을 듣게 된다.
결국 이리저리 연구하고 궁리를 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10개의 사업 가운데 산자부가 다섯 개, 정통부가 네 개, 그리고 과기부가 한 개를 하기로 했다. 그러자 결국 예견된 사태가 일어났다. 과기부 장관이 사표를 내겠다는 거였다. 이대로는 부처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거였다. 결국 사의를 표명했고, 얼마 후 대통령은 이를 접수했다.
# “국록 받는 게 부끄럽지 않느냐”
한번은 어느 부처의 차관보가 찾아왔다.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분으로, 소속 부처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기 위해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부처 간 갈등에 대한 고민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이 분 말씀이, 공무원으로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자격지심에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는 거였다. 지난 6개월 동안 다른 부처의 활동을 모니터하고 그에 대비한 ‘작전’을 짜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는 거다.
‘저쪽 부처의 오늘 동향이 어떠냐?’, ‘협회를 만들었어? 그러면 우리도 빨리 사람 모아 협회 만들어’, ‘○○부의 누가 청와대 누구한테 전화했다는데, 그러면 우리도 누구를 찾아가야지’…. 매일 이런 종류의 일을 했다는 거다. 집에 가서까지 그런 전화를 주고받고 하니까 부인이 그러더란다. “당신들 국록을 받고 사는 게 부끄럽지 않느냐”고.
# 관료의 대표자가 돼 돌아오는 장관
조세를 누가 어떻게 부담하고 있는지, 세목과 세율을 바꾸게 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자료들은 밖으로 잘 나오지를 않는다. 이런 자료를 누가 가지고 있나. 당연히 기획재정부 세제실이나 국세청이 쥐고 있다. 청와대도 때로는 이런 정보를 다 받을 수가 없다.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개인정보 유출 등 가져오면 말썽이 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못 내놓는 거다. 그런 정보를 전부 이 관료집단이 독점하고 있다. 통제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물론 대통령을 대신해서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나 차관들이 이들 관료집단을 통제해주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장관은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부처에 파견이 된 사람인데, 조금 지나면 그 장관이 ‘부처의 대표’가 되어 대통령 앞에 나타난다. 주로 정치적인 활동을 하느라 밖으로 나돌면서 내부 일을 차관을 비롯한 간부들에게 맡겨놓는 경우가 많은데, 얼마 가지 않아 관료집단의 유능함(?)과 외부 고객집단의 영향력(?)에 포획되는 거다.
# 청와대 입만 ‘멀뚱멀뚱’
실제로 누가 봐도 해야 할 일을,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을 정부부처나 기관이 하지 않고 있는 경우들이 있다. 그 이유를 알아보면 결국은 책임 문제다. 전화를 하든 아니면 문서를 보내든, 청와대에서 뭔가 확실한 지시를 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온다. 결국 그렇게 하게 된다.
부동산정책 다룰 때의 기억은 평생 잊히지 않을 거다. 종합부동산세를 만들 때 곳곳에서 반대가 심했다.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심지어 여당도 반대했다. 당에서까지 반대하니 정부부처는 더욱 불안해졌다. 특히 과세대상을 9억 원에서 6억 원으로 낮출 때는 더했다. 그래서 결국은 청와대에서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심지어 15분이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처리가 안 되던 일도 있었다. 이해관계도 다 드러나 있고 각 부처의 입장도 제대로 다 정리되어 있는 사안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그 건이 1~2년 동안 꼼짝을 않고 있는 거다. 결국 청와대에서 관계 부처 장·차관들을 모아 회의를 열어야 했고, “자, 이렇게 갑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결론 내리는 데 15분 이상 걸리지 않았다. 그게 모두 ‘책임의 문제’ 때문이었다.
정리=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