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구 현대차 회장(왼쪽)과 김승연 한화 회장이 충북 음성에 위치한 꽃동네에서 사회봉사 명령을 이행하는 모습. | ||
광복절특사를 앞두고 가장 많은 여론의 관심을 받은 인사는 단연 재계 서열 2위 현대·기아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었을 것이다. 현대차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된 정 회장의 형이 최종 확정된 것은 지난 6월 3일(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 300시간)로 불과 두 달여 만에 사면이 이뤄진 것. 사회봉사 시간도 아직 3분의 1을 남겨놓은 터라 논란이 예상됐지만 ‘경제 기여도’라는 커다란 전제 하에 특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정몽구 회장의 행동반경이 한결 자유로워짐에 따라 현대건설 인수전이 새 국면을 맞이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현재 범 현대가 내 현대건설을 둘러싼 신경전의 무게중심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까닭에서다.
현대건설 인수전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에 이은 관광 전면중단 등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상태다. 현 회장과 대립각을 세워온 현대중공업 최대주주 정몽준 의원은 얼마 전 “현대건설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혀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 또한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인수전과 관련해 침묵으로 일관해온 정몽구 회장이 사면의 탄력을 받아 선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손때가 묻은 현대건설 새 주인 선정과정에 어떻게든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룬다.
정 회장과 더불어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이내흔 전 현대건설 사장 그리고 김재수 전 부사장이 사면을 받은 점도 눈길을 끈다. 이들은 현대건설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지난 6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김윤규 전 부회장은 정몽헌 회장 사후 현대그룹에서 퇴출되는 과정에서 현정은 회장과 앙금이 남았고 대북사업을 진행하며 현 회장과 계속 부딪치고 있다. 현대건설 고위층 출신인 이들이 현 회장의 인수 전략에 복병이 될 가능성도 조심스레 거론된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 9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명령 200시간을 선고받았다.
일각에선 김 회장이 사면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배경 중 하나로 청와대의 김 회장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들기도 한다. 김 회장 선친 대부터 닦아놓은 해외 인맥이 이 대통령의 미국 방문 등에 도움을 줬다는 소문도 정치권과 관가 안팎에서 들려온다. 김 회장은 사면과 더불어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과정 관련 예금보험공사(예보)와의 국제중재에서 승소하는 겹경사를 누렸다. 최대 매물로 꼽히는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사활을 건 한화에도 호재가 아닐 수 없다.
▲ 사랑의 연탄 배달 행사에 나선 최태원 SK 회장. | ||
예보와의 국제분쟁 승리를 통해 대한생명 상장작업에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게 된 점 또한 한화에겐 반가운 일이다. 한화 입장에선 대한생명과 더불어 한화건설 상장, 그리고 자산 매각 등으로 5조~6조 원대 현금 확보가 가능해졌다는 평이다. 다만 침체를 면치 못하는 주식시장 때문에 상장 시기 잡기가 여의치 않다는 점이 흠이랄까.
증시에 대한 근심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머릿속에도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SK그룹은 7월 초 공시를 통해 SK C&C 상장작업 중단을 알렸다. 주식시장 침체로 공모희망가액(주당 11만 5000~13만 2000원)을 채우지 못할 것이란 판단에 상장을 연기한 것이다. 그나마 사면 소식에 얼굴이 밝아졌을 법하다.
지난 2003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태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온 최태원 회장은 무난하게 이번 특사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관측돼왔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던 최 회장은 지난 4월 대법원 상고를 취하해 ‘광복절특사를 의식한 것’이란 평을 듣기도 했다. 최 회장은 지난 5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원심 확정 판결을 받았다.
광복절특사로 SK 사태 5년 재판의 족쇄를 벗어던진 최 회장의 당면과제는 중단된 SK C&C 상장작업 재개일 것이다. SK그룹은 지주사 전환 계획에 따라 ‘SK C&C→SK㈜→SK텔레콤→SK C&C’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내년 6월 안에 끊어야 한다. 최태원 회장이 지분 44.50%를 보유한 SK C&C를 통해 지주사 SK㈜를 지배하는 기형적 구조 탈피도 요구된다. SK C&C를 상장하면 순환 고리를 끊는 것은 물론 최 회장은 상장이익으로 2.22%에 불과한 SK㈜ 지분율을 높일 수 있다.
SK 사태 재판이라는 제일 큰 짐을 덜어내 한결 홀가분해진 최 회장은 SK C&C 상장은 물론 대형 M&A까지 넘볼 것으로 전망된다. KT-KTF 합병작업이 급물살을 탄 가운데 SK텔레콤이 유무선 통합상품 시장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M&A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는 것이다.
SK텔레콤은 SK C&C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다. 상장이 되면 이를 모두 팔아 M&A용 실탄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이는데 SK가 원하는 주가에 상장이 이뤄질 경우 6000억 원 이상의 현금(세전 기준)이 SK텔레콤 몫이 된다.
SK텔레콤은 유가증권시장본부로부터 지난 6월 셋톱박스 1위 업체 휴맥스 인수설에 대해, 7월엔 미국 메이저 이동통신사 인수 추진설에 대한 조회공시 요구를 받았다. SK텔레콤은 즉각 ‘사실이 아님’을 밝혔지만 KT-KTF 조합에 맞설 대형 M&A 추진설은 좀처럼 끊이지 않는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