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인 소싸움 경기장에도 음성적으로 사설도박판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소싸움의 한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내일은 거기에서 하자.”
꾼들의 신호가 오갔다. ‘투견을 하자’는 그들만의 사인이다. 투견도박은 엄연히 불법이라 장소와 시간을 선정하는 일부터 은밀하게 이뤄진다. 투견도박을 정기적으로 하는 멤버가 아니고서는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때문에 투견도박장에 나타나는 새로운 인물들은 경계의 대상이 되며 기존 멤버와 동행하는 경우가 아니면 참여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렇게 연락이 돌고난 다음날이면 멤버들은 귀신같이 약속장소를 찾아 모여든다. 보통 투견은 늦은 저녁이 돼서야 열리며 장소도 외부로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는 산속 깊은 곳에서 이뤄진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한 번 투견도박장이 열린 곳은 일정 기간 동안 다시 찾지 않는 치밀함도 잊지 않는다.
기자는 지난 3월 말 경남의 한 야산에서 열리는 비밀 투견도박장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하지만 ‘외지인’임이 들통 나 투견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며칠 뒤 투견도박장을 다시 찾았다. 보통 투견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 열린다. 고요했던 산속이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개들의 울부짖음으로 시끌벅적해진다고 한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오로지 도박을 위해 찾는 사람들과 견주까지 최소 50명 이상이 모인다고 한다. 기자가 찾았을 때 동그란 철장형태 경기장을 볼 수 있었다. 아마 핏불테리어의 경기가 열렸거나 예정돼 있는 듯했다. 핏불테리어는 주로 돌면서 싸우기 때문에 경기장도 원형이라고 한다. 하지만 도사견들은 바로 맞붙기 때문에 사각 링에서 경기를 한다.
투견도 복싱경기처럼 심판도 있고, 청코너와 홍코너에 각각 주인과 함께 개들이 입장해 경기를 펼친다. 경기 전 도박꾼들은 어느 쪽이 이길지 돈을 걸고 응원을 시작한다. 판돈은 만 원에서부터 자유롭게 걸 수 있는데 하룻밤 사이 수백만 원은 기본으로 오간다고.
비교적 규모가 큰 투견도박장에는 자금을 대는 불법대부업자도 상주한다. 돈을 모두 잃은 이들은 급하게 대부업자들을 찾아 고리로 돈을 빌리는 데 하루 10% 이자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이들은 이자를 생각하지 않고 돈을 빌렸다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 신세가 되기도 한다. 투견도박장을 종종 찾는다는 이 아무개 씨는 “100명 이상 모이는 경기에는 대출업자들이 꼭 있다. 돈을 걸었던 개가 이기면 2배를 받고 지면 그대로 날린다. 보통 하루에 10경기쯤 열리니 10만 원씩만 건다고 해도 한 사람당 100만 원은 쓰는 꼴인데 개중에는 수백만 원을 한 자리에서 날리고 대출업자까지 찾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청도 소싸움경기장에서 발권하는 우권들. 오른쪽은 투견장 모습.
투계도박도 투견과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앞서의 이 씨는 “투견도박이 열리는 날 닭도 가져와 함께 경기를 하거나 단독으로 하기도 한다. 태국에서처럼 닭의 발에 칼을 매달지는 않지만 발톱을 날카롭게 다듬어 공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판돈을 거는 형식과 금액도 투견과 비슷하다고 한다.
오로지 도박만을 위해 존재하는 투계나 투견 경기는 동물보호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다. 반면에 소싸움은 관광진흥차원에서 이뤄지는 합법적인 경기다. 그러나 소싸움 경기장에서도 도박이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현재 소싸움은 전통문화의 하나로 전국 10곳에서 합법적으로 경기가 열리고 있는데 이곳에서 음성적으로 사설도박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청도 소싸움 경기장은 매주 주말이면 관광객과 도박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지난 2월 16일 재개장 한 달 만에 하루 최고 매출 2억 1200만 원을 기록했으며 벌써 15만 명이 이곳을 찾았을 정도다. 경기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각 10차례 경기가 열린다. 합법적으로는 1인당 10만 원씩 돈을 걸 수 있는데 이것만 하는 사람들은 없다. 무한대로 돈을 걸 수 있는 ‘터줏대감’이라는 몰이꾼들에게 돈을 거는 것이다. 청코너 승이냐 홍코너 승이냐 또는 무승부냐 세 가지 경우의 수만 있어 단순하고, 이기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3~4배의 돈을 받아갈 수 있으니 너도나도 베팅을 한다”고 말했다.
매주 토요일 15경기가 열리는 진주 소싸움 현장도 다를 바가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60대 남성은 자신을 소싸움 중독증 환자라고 밝히면서 “전국 소싸움 경기장엔 항상 도박꾼들이 있다. 경기장 뒤편에 우르르 몰려 돈을 주고받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도박꾼들이다. 사설도박을 주도하는 몰이꾼들은 단속을 피해 전국을 돌아다니는데 이들을 따라다니는 도박중독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또한 소싸움 경기장에는 한 가지 특징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바로 인근에 사는 농부나 노동자들이 많이 찾는다는 점이다. 앞서의 남성은 “소싸움 경기장은 대부분 농가 근처에 있어 도박에 빠진 농부들도 많다. 농한기 때 재미삼아 들렀다가 도박에 빠지는 것이다. 대부분 피땀 흘려 번 돈을 도박으로 순식간에 날리는 데 논밭을 팔아넘긴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민속소싸움협회 측은“단속요원 배치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도박근절에 나서고 있다”고 해명했으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매주 소싸움 경기장에는 도박꾼들이 득실대고 있었다.
청도 진주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도박판에 염소도 등장 투견·투계장의 ‘번외게임’ 투견장에서는 눈 뜨고 못 볼 잔인한 장면들이 속출한다. 목덜미를 물려 그 자리에서 죽는 개도 더러 있다. 기자는 투견, 투계 취재를 하다가 ‘희한한’ 동물싸움도 들을 수 있었다. 수도권에서 염소를 사육하는 전 아무개 씨는 염소싸움 도박도 존재한다며 비교적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닭이나 개에 비해 보편화된 동물이 아니라 쉽게 찾아볼 순 없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염소싸움도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전 씨의 말에 따르면 도박장에 참가하는 염소들은 모두 수컷으로 뿔이 강인한 것들만 선발해 경기를 펼친다. 공격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염소 주인들은 톱으로 뿔을 가다듬어 날카롭게 만들기도 한단다. 이렇게 경기용으로 길러진 염소들은 일대일로 싸움을 붙여 승부를 가린다. 전 씨는 “발정기의 수컷 염소들은 공격성이 강하다. 각 염소의 주인들이 목줄을 풀어주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뛰어들어 싸움을 한다. 염소들은 주로 뿔을 이용해 싸우는데 서로 한껏 몸을 들어 올렸다 내려오는 순간에 뿔을 맞닥뜨려 힘을 겨룬다. 박치기를 하는 그 순간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바로 그 짜릿함이 매력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염소싸움은 오랜 시간을 끌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한다. 전 씨는 “박치기를 한 뒤 서로 밀리지 않기 위해 머리를 밀며 힘을 준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한쪽이 상대보다 힘이 달린다 싶으면 포기를 하고 뒤로 물러선다. 그 순간부터는 더 이상 싸움을 할 수가 없는데 보통 그렇게 되기까지 5분도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염소만을 이용해 제대로 된 도박판을 열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염소 열 마리를 데려와도 1시간 이내에 싸움이 끝나 큰돈을 걸고 하는 도박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때문에 염소싸움은 투견이나 투계 경기장에서 이벤트 형식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앞서의 전 씨는 “염소를 대량으로 키우는 곳에서는 염소싸움만으로도 도박판을 열 수 있다. 그러나 염소의 숫자가 적을 경우에는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투계나 투견 경기 사이에 염소싸움을 벌인다. 그럴 땐 그냥 보고 즐겨도 되고 돈을 걸어도 된다”고 덧붙였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
해외의 이색 도박판 귀뚜라미·물고기·비둘기… 중국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귀뚜라미 싸움’ 도박판. 우선 좋은 품종의 귀뚜라미를 얻기 위해 번식장을 따로 갖춘다. 이곳에서 수천마리를 키우는데 힘이 좋은 수컷 귀뚜라미들만 도박꾼들의 선택을 받아 싸움터에 출전한다고. 이들을 위한 운동도 따로 있다. 근력을 키우기 위해 뒷다리에 실을 묶어두고 제자리 뛰기를 시키거나 먹이로 유인해 마라톤을 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길러진 귀뚜라미들은 손바닥보다 약간 큰 경기장에 들어가 싸움을 벌인다. 먼저 칸막이를 두고 두 마리의 귀뚜라미를 넣은 뒤 약을 올리는 것부터 시작된다. 귀뚜라미들이 한껏 흥분하면 칸막이를 치우는데 서로 엉겨 붙어 싸우다 어느 한 쪽이 꽁무니를 빼면 승패가 결정 난다. 승부 결과에 따라 패배자는 기름 솥으로 들어가 튀김이 된다. 태국에서는 귀뚜라미 대신 물고기가 도박의 수단이 된다. 공격성향이 강한 물고기를 한 수조에 넣어 싸움을 붙인 뒤 승부를 맞히는 방식으로 도박이 이뤄진다. 도박에 사용되는 물고기들도 귀뚜라미처럼 어릴 적부터 싸움용으로 길러지는 경우가 많으며 귀한 가문의 물고기들은 한 마리에 수십만 원씩에 거래되기도 한다. 하지만 워낙 성격이 난폭해 값비싼 물고기라도 겨우 한 경기를 마치고 폐사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대만에서는 비둘기 경주로 억대의 도박판이 벌어진다. 자신이 기르는 비둘기를 데려와 경주에 참가시키는데 무려 1700㎞에 이르는 거리를 누가 빨리 완주하느냐를 겨룬다. 이 경기에는 평균 3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데 상금이 수십억 원에 이를 만큼 인기가 좋다고 한다. 하지만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혈통의 비둘기들이 필요한데 이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매년 수억 원의 돈을 투자해야 해 자칫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고 한다. 캄보디아 바탐방주에는 유독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이 많다. 구름의 움직임을 보며 비가 내릴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함인데 이 또한 도박의 한 종류라고 한다. ‘비 도박’은 특정 날짜에 비가 올 것인지와 강우량을 예측해 내기를 하는 등 여러 가지의 방법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특정 건물(높은 빌딩)에 설치한 종이가 젖느냐 마느냐를 맞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판돈은 그리 크지 않다. 1인당 한화로 3000원 가량을 거는 수준인데 문제는 참여율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주민들의 80% 이상이 비 도박에 참여하고 전체 판돈이 무려 억 단위에 이른다. 또한 중독성이 강한 편이라 판돈을 마련하기 위해 좀도둑이 기승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해져 경찰들은 비 도박을 금지했으나 단속의 효과는 미미하다고 한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