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김해공항에서 부산 시내로 들어가는 좌석버스에서 만난 한 50대 남성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부산시민들의 평가가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차마 듣기에도 민망한 말들을 쏟아냈다.
“아직 우리나라는 주5일제 안돼요. 현대자동차다 화물노조다 노조들이 늘상 파업한다고 저 난리들인데, 그냥 그렇게 내버려둬서 쓰겠습니꺼. 어디 이게 지금 정상적인 나라인교.”
한동안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비난을 쏟아내던 이 50대 남성은 “무엇보다 갱제인기라요.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무신 놈의 개혁이라요. 서울 가거든 다른 건 몰라도 갱제에 신경 좀 쓰라하소”라며 ‘경제문제’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6개월. 부산에서 만난 첫 민심은 ‘형편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말을 꺼내기가 민망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금정구에 산다는 택시기사 김아무개씨(53)는 “(노 대통령이) 욕 많이 묵지요. 워데서 칭찬을 듣겠십니꺼. 인자는 ‘끝까지 가겠나’하는 사람도 더러 있습디다”라고 말했다.
흉흉한 민심이 이제는 취임 6개월된 대통령의 임기까지 거론하는 지경에 이른 셈이다.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사람 아닙니까’라고 반문해보았다.
“인자는 부산사람 아니라요. 호남에서, 김대중이 (노 대통령을) 대통령 만들어줬지, 어디 부산사람들이 대통령 만들어 줬습니꺼. 그때 이회창씨가 됐어야 하는 긴데….”
▲ 부산의 명소인 자갈치 시장 초입. 이곳서 만난 상인들뿐 아니라 시내 곳곳서 마주친 적잖은 시민들은 노 대통령의 ''국정 반년''에 대해 냉정한 반응을 나타냈다. | ||
서면로터리에서 가판을 운영하는 장아무개씨(46)도 “(노무현 대통령이) 무슨 힘이 있습니꺼. 신주류다 구주류다 맨날 쌈박질만 하는 판에… 날샜다 아입니꺼”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좋지 못한 상황 때문인지 내년 총선에 대한 기대도 높지 않았다. 특히 청와대 비서관 등 측근 인사들이 대거 부산 출마를 위해 출사표를 던졌음에도, 항도의 민심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더욱이 청와대 출신 출마 예정 인사들에 대한 상당수 시민들의 턱없이 낮은 인지도는 기자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
온천장역에서 서면로터리로 향하는 길에 만난 택시기사 김아무개씨(51)는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이 대거 부산출마를 위해 내려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노 대통령이) 힘이 없으니까, 도와주려고 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도 “그래도 아직은 한나라당인데…”라며 ‘당선 가능성’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이해성 홍보수석, 최도술 총무비서관, 박재호 정무비서관’ 등 부산 출마를 위해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한 인사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뭐하던 사람들이냐”고 반문했다.
특히 ‘이해성 홍보수석’에 대해서는 “이회창씨 동생(이회성) 아니냐”고 반문,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중앙 정치권에 진입한 지 6개월 만에 총선 출마를 위해 사표를 던진 이들 청와대 출신 인사들은, 무엇보다도 ‘낮은 인지도’로 인해 적잖이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연산동에 사는 권아무개씨(31)도 “예전에야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하면 알아줬지만, 이제는 인식이 달라졌다”며 “출신이 부산인지는 몰라도, 청와대에 잠깐 있었던 사람들을 부산 사람들이 어찌 알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특히 “노 대통령이 대통령을 하고는 있지만, 부산은 아직도 한나라당이 여당이다”며 “시장, 국회의원,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할 것 없이 모두가 한나라당 일색인데, 대통령 한사람 바뀌었다고 부산 정치권에 변화가 온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 지난 8월23일 열린 부산지역 개혁신당 추진 워크샵에 참석한 지역인사들. | ||
자갈치시장으로 향하는 전철에서 만난 대학생 황아무개씨(27)도 “유명무실한 국회의원 여럿 있으면 뭐하느냐”며 “실질적으로 능력 있고 일을 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된다”고 말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북구에 산다는 정아무개씨(50)도 “문재인 수석 같은 명망가가 (총선에) 나와줘야 한다”며 “이제는 당 대 당의 대결이 아니라, 인물 대 인물로 치러야 한다”고 거들었다.
자갈치시장 초입에서 가판을 운영중인 윤아무개 아주머니(48)도 “인자는 능력 있는 사람을 뽑을 기고마. 안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 판에, 맨날 싸움질이나 하던 사람을 또 뽑아줘서 뭐하겠노”라며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그는 또 “내사 마 젊은 사람들이 나서서 더러븐 돈 받지 말고, 좀 잘해봤으면 싶다”며 ‘정치신인’에 대한 기대감을 표하기도 했다.
광안리에서 만난 진아무개씨(51)는 “자꾸만 편을 갈라 적을 만들면 안된다”며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고, 민주당 출신 지구당위원장들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난해 아시안게임과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부산에서 견고한 한나라당 지지세가 점차 허물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남북문제도 그렇고, 정치성향도 그렇고 점차 평화를 지향하고 개혁지향적인 성향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며 “내년 총선에서 바람이 어떻게 부느냐에 따라 결과는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산 출신 노무현 대통령을 바라보는 부산 민심에서는 ‘불편함’이 적잖이 느껴졌다. 완전히 껴안지도, 그렇다고 내팽개치지도 못하는 어정쩡함이 묻어났다. 이런 ‘어정쩡함’은 내년 총선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에 맥이 닿아 있었다.
김해공항으로 향하는 길에서 택시기사 김아무개씨(48)는 “안쓰럽지예. 딱하다 아입니꺼. 뭘 해볼라케도 (의원) 숫자가 적어서 제대로 되는기 없을 끼고. 어데 민주당이라고 제대로 도와줍니꺼. 갱제는 갱제대로 어렵고…. 많이 힘들낍니더. 우얍니꺼. 애당초 형편이 그런 것을. 쪼매 있으면 총선인데, 얼매나 우군이 생길란지”라며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