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화합을 목표로 계획된 대선평가보고서는 되레 전당대회를 앞두고 점차 격화되고 있는 당내 계파 갈등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사실 누구나 예견했던 일이었다. 민주통합당 대선평가위원회(평가위)가 지난 9일, 대선평가 보고서 최종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인 10일 홍영표, 노영민, 이목희 의원 등 주류 인사들의 보고서 반박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각각 지난 대선 당시 캠프 내에서 상황실장, 비서실장, 전략기획실장으로 핵심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빠르고 격렬한 반응이었다.
회견을 주도한 홍영표 의원은 이번 보고서를 두고 “사실을 왜곡하거나 거짓으로 만들어진 한상진 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의 주장이며 분열적이고 자기비하적”이라고 평가절하하며 “이런 보고서가 기정사실화되는 것이 걱정된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 21일, 깃발을 내건 민주통합당의 대선평가위원회. 애초 위원장으로 선임된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안철수 캠프의 인사였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있던 친노 진영에서는 이를 두고 불만의 목소리를 터트렸다. 그만큼 현재 일고 있는 보고서 후폭풍은 태생부터가 논란이었던 셈이다.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홍종학 의원은 아예 ‘소수 의견서’라는 별도의 보고서를 집필해 공개하기도 했다. 평가위 집필책임자가 받아들이지 않은 평가위 내 소수 의견을 별도의 보고서로 작성한 것. 홍 의원은 의견서를 통해 ‘보고서의 성격, 초안 공유 방식, 합의 방식, 현상 인식’ 등에 내부 이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합의 방식에 대해 “책임집필자의 의견과 다른 의견이 제시됐을 때 다른 위원들이 내는 조정안을 통해 의견을 통일하자는 대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의견서를 통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지난 대선을 “절반의 목표를 달성하고 진 선거”라며 비교적 후한 평가를 내렸다. 위원회 내 이견을 담은 별도의 보고서가 작성됐다는 점 자체가 보고서 작성 과정 중 치열한 의견 대립이 있었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주류 진영에서 이번 보고서를 두고 반발하는 이유는 ‘친노 진영’의 책임론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전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문재인 진영 협상부의 ‘커뮤니케이션 난제와 협상 능력 부족’을 꼬집었다.
또한 보고서 내에는 ‘계파’라는 단어가 모두 258번 등장하며 ‘친노’라는 단어도 22번 등장한다. 심지어 평가위는 실명을 들어가며 대선 패배의 책임자에 대한 순위를 매기기까지 했다. 평가위는 지난 총선부터 18대 대선까지 민주당을 이끈 지도자들에 대해 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보는 당내 설문조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보고서에 담았다.
대선 책임론을 두고 본인의 실명이 언급된 문성근 전 대표대행은 트위터를 통해 “선거 패배 책임 5위에 저 문성근을 올리는데 큰 공을 세우신 한상진 위원장과 김종엽 한신대 교수께 감사드린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번 평가보고서 최종 결과가 민주당의 명운이 갈릴 5·4 전당대회을 불과 한 달 앞두고 발표됐다는 점에서 당 내 각 진영에서는 이에 대한 후폭풍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전당대회의 성패를 가를 ‘메가톤급 태풍’으로 격상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평가위 참여 인사는 “사실 이번 보고서 결과를 두고 말이 많지만, 실질적으로는 원안보다 상당히 순화되고 정제된 내용으로 나온 것”이라며 “어차피 주류 진영에서는 어떤 결과 보고서든 간에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었다. 무엇보다 당장 전당대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반발 의견을 피력할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단순한 계파 싸움을 넘어 지난 대선 패배의 책임론과 심판론이 급부상한다면, 그들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주류 진영에서는 이번 보고서를 기점으로 전당대회 승리를 굳히겠다는 심산이다. 벌써부터 비주류 진영 내에서는 이번 보고서에 언급된 친노 진영의 책임론을 토대로 한동안 잠잠했던 문재인 의원의 사퇴를 직접 요구하고 있다. 비주류 진영의 문병호 의원은 보고서 발표 직후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비주류 진영 내 유력 당 대표 후보인 김한길 의원은 “평가위 발표를 수용해서 국민 앞에 성찰해야 한다”며 평가위 보고서 결과를 옹호했다.
‘패배에 대한 진중한 성찰과 이를 통한 당의 화합’을 목표로 계획된 평가위의 보고서는 되레 전당대회를 앞두고 점차 격화되고 있는 당내 계파 갈등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다.
오랜 기간 당에 몸담고 있는 중립 진영의 한 당직자는 “당장 전당대회를 앞두고 현실적인 진영 논리를 생각한다면 이번 보고서에 대한 주류 진영의 반응이 일면 이해는 된다”면서도 “하지만 당 전체로 보면 이번 보고서 사태로 인한 계파 갈등 격화는 치명타에 가깝다. 벌써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 차라리 이런 보고서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