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28일 민주당 당무회의에서 유용태 의원(맨 왼쪽)과 김태랑 최고위원(맨 오른쪽)이 말다툼하고 있다.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기존 정치권을 양분해온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각각 ‘탈(脫) 호남당’과 ‘탈 노인당’이라는 해묵은 과제가, 지역구도 타파를 내세워 태동한 개혁신당 그룹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들에 ‘신(新) 지역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비롯된 현상. 정도 차이는 있지만 3자 모두 ‘아킬레스 건’이라 할 수 있는 이들 사안에 대한 대응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형편이 가장 열악한 민주당 사정을 먼저 살펴보자. 대선 이후 지리하게 끌어온 신당논의가 결국 ‘분당’으로 매듭될 상황에 처한 민주당이 안고 있는 모든 갈등의 근원은 당을 정서적·세력적으로 지탱해 온 호남권과의 관계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김대중(DJ)당=호남당’이란 이미지를 어떻게 극복해 낼 것인가가 과제다. 신당 내분도 결국은 ‘전통적 지지세력’으로 표현되는 호남권 유권자들의 정서를 등에 업은 정치세력(구주류)과 노무현 대통령을 축으로 한 새로운 집단(신주류)간의 권력투쟁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 ‘탈 호남당’을 위한 9개월간의 내부 투쟁의 결과물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과는 ‘제로’에 가깝고 회복불능의 상처만 남았다는 것이 냉정한 평가다.
신주류의 정치적 미숙과 ‘당·정 분리’를 내세운 노무현 대통령의 어정쩡한 처신, 동교동계 등 구주류의 격렬한 반발이 이어지면서 나타난 결과다. 한때 대세를 이뤘던 ‘신당 대열’은 이제 소수의 신주류 강경파가 오히려 당을 버리고 뛰쳐나가야 할 형편이 됐다.
왜 이렇게 됐을까. 신주류 한 의원의 ‘실패담’이다. “신당논의가 탄력을 잃게 된 이유는 노 대통령과 신주류 지도부가 그동안 당을 유·무형적으로 지배해온 호남정서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는 점이다. 정권 출범 초부터 전국정당화의 명분과 프로그램을 차근차근, 치밀하게 진행시키며 대세를 장악했어야 하는데 대북송금 특검 문제와 일부 신주류 강경파들의 ‘인적청산론’ 제기 등 ‘반(反) 호남’으로 비칠 만한 행동이 연이어지면서 구주류들이 역공을 취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 실책이었다.”
그는 또 “1백여 명의 민주당 의원 중 전국구와 충청·강원권 의원 등 20여 명을 제외한 절대 다수는 호남권 유권자들의 향배에 신경 쓰지 않고 정치적 운신을 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라며 “전국정당화도 좋지만 내년 총선에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현역 의원들의 입장에선 신당논의가 호남권 유권자들의 이탈을 불러오는 쪽으로 정리될 경우 함께하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토로했다.
다음은 구주류측의 일종의 ‘성공의 변(辨)’이다. 동교동계 핵심인 김옥두 의원은 “신주류측이 민주당을 ‘호남당’이라 비판하지만 그 주장에는 이런 문제가 있다. 우선 민주당은 호남 비중이 높긴 하지만 영남권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당선자를 내 이미 전국정당의 틀을 갖춘 당이다.
특히 그동안 우리 당의 한계였던 ‘영남권 공백’이 노 대통령의 당선으로 메워졌는데 뭐하러 전국정당을 위해 신당을 만든다는 말이냐. 그리고 영남권 의석 확보는 집권당의 뒷받침하에 노 대통령이 국정을 잘 수행하면 해결되는 문제인데 왜 정공법이 아닌 내부 혼란만 부추기는 신당놀음에 빠졌는지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구주류의 다른 핵심 인사도 “신주류의 최대 실책은 ‘정치는 현실’이라는 점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때 신당을 위해서라면 내일 당장 탈당할 것 같았던 천정배 정동영 의원이 왜 막상 결단의 시기엔 꼬리를 내리겠나. 현실적으로 호남정서와 등을 져서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위태롭다는 점을 느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 당내 몇 안되는 386세대인 원희룡 의원이 최근 ‘60대 용퇴 론’을 내세워 한나라당의 세대간 갈등이 깊어가고 있다. 사 진은 상임위에서의 원희룡 의원. | ||
“최소한 지역구에선 60세 이상 의원은 용퇴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소장파들 주장에 노장그룹은 “나이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은 ‘키 160cm 이하는 안된다’는 것과 뭐가 다르냐”(유흥수 의원)고 맞서고 있고 일부 중진들은 스스로를 ‘고려장 후보’라 비하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탈 노인당’ 공방은 한나라당의 인적구조상 내년 총선 전에 어떤 식이든 정리되어야 할 ‘뇌관’과 같은 사안. 실제 1백49명 전체 의원 중 60세 이상이 79명(70대 8명)으로 53%를 차지할 정도로 ‘노령화’돼 있는 구조로는 총선을 제대로 치를 수 없다는 데 당내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상황.
하지만 노장그룹들이 과반을 넘는 당내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마당에 최병렬 대표 등 지도부로서는 섣불리 세대교체 문제를 언급할 수가 없다는 것이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딜레마다.
특히 소장파들이 최 대표가 소장파들이 퇴출 기준으로 삼은 ‘60세 이상과 5·6공 출신’에 해당되는 터라 다른 노장그룹들의 ‘용퇴’를 앞장서서 추진하기는 여러모로 어려운 형편이다.
소장파의 한 의원은 “현재로선 노·소장그룹 간 ‘탈 노인당’ 공방이 당장 민주당처럼 분당위기로 치달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최 대표 이하 지도부의 통제력이 어느 정도 발휘되고 있고 이른바 ‘골든 브리지’(Golden Bridge)를 표방한 중도그룹이 30~40대와 60대 간 `가교’ 역할을 표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불거진 인적청산 논란이 ‘미봉’ 상태로 총선 전까지 가리라 전망하는 이들은 드물다. 또 세대간 갈등이 정강·정책, 권력구조 문제로까지 이어질 경우 ‘파열음’이 상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혁신당 그룹을 겨냥한 ‘신 지역주의’ 논란은 앞선 사례와 달리 내부 갈등보다는 외부 비판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그러나 공격의 소재가 ‘지역구도 타파’라는 개혁신당의 존립 근거를 뒤흔들고 있다는 점에서 제대로 대응치 못할 경우 충격은 상당하리란 분석.
신당연대와 한나라당 탈당파 주축의 통합연대, 개혁국민정당이 주축인 개혁신당 그룹이 ‘신 지역주의 조장세력’이란 비판을 받게 된 데는 이들이 내세우는 ‘전국정당화’가 ‘영남 편향’으로 읽히는 것과 관련이 깊다.
특히 조성래 변호사와 정윤재, 최인호, 송인배씨 등 이 그룹의 핵심들과 부산 출마를 선언한 청와대 이해성 전 홍보수석과 박재호 전 정무2비서관,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 등 노 대통령 친위그룹들의 합류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점에서 이 같은 경향은 두드러진다.
여기에 영남권 출신 수도권 의원인 김부겸 김영춘 의원 등이 내년 총선에서 대구와 부산에서 출마할 것이란 전망과 현 내각의 영남 출신 인사들이 개혁신당에 ‘징발’될 것이란 얘기까지 겹치면서 ‘개혁신당=영남당’이란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독자적인 신당 추진을 선언한 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가 개혁신당 그룹의 지역 편향성을 언급한 데 이어 민주당 김근태 고문도 당내 신주류 강경파와 연결된 개혁신당 추진 움직임에 대해 “분열주의적이며 결과적으로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각도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한화갑 전 대표도 “부산 경남에서 ‘탈 민주당’을 해야 선거를 치를 수 있다면 서로 상처를 입히지 말고 각자 최선을 다해 각개약진하자”며 개혁신당을 사실상 ‘PK신당’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