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원태 상무는 왕성한 경영활동에도 불구 주요 계열사 지분 확보가 미미한 상태다. | ||
조원태 상무는 올 초 ㈜한진 등기이사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자신이 인수를 주도한 택배업체 한덱스(옛 신세계드림익스프레스)의 등기이사 명부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에 앞선 지난 8월엔 대한항공 내 핵심보직으로 꼽히는 여객영업본부 부본부장 자리를 맡는 등 그룹 전반을 아우르는 경영수업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IT업체 유니컨버스 등기이사에 오른 이후부터 본격화한 조 상무 경영활동 폭 확대를 놓고 재계에서는 자연스레 후계구도와 연관 짓는 분위기다.
그룹 경영에서 조 상무 몫이 많아진 만큼 부담도 따를 전망이다. 예컨대 최근 인수한 한덱스의 경우 조 상무를 비롯해 석태수 한진 대표이사 등이 경영진을 꾸리면서 윗선 정리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지만 택배영업의 근간인 일선 영업소들의 반발이 있다고 전해진다. 인수 과정에서 영업소 조직과의 교감이 없었던 데다 사업주체가 신세계에서 한진으로 바뀌면서 행여 있을지 모를 물량 감소 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영자로서 인정을 받는 것 외에도 중요한 것이 바로 승계에 필요한 핵심 계열사 지분 확보다. 조 상무는 최근 약세장 속에 대한항공 지분 0.06%를 확보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한진그룹의 지배구조는 ‘정석기업→㈜한진→대한항공→정석기업’의 형태로 이뤄져 있다. 정석기업은 ㈜한진 지분 17.98%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진은 대한항공 지분 9.90%를 지닌 최대주주다. 그룹 내 여러 계열사 지분을 골고루 보유하고 있는 대한항공은 정석기업 지분 24.41%를 갖고 있다.
조양호 회장은 정석기업 지분 25%를 보유한 최대주주며 그밖에 대한항공 9.63%, ㈜한진 6.87% 등을 보유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반면 한진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축을 이루는 정석기업 ㈜한진 대한항공 중 조원태 상무가 대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린 회사는 대한항공뿐이다. 그나마도 0.06%에 불과한 대한항공 지분율을 조 상무가 얼마나 높일지 관심이 쏠린다. 현재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 상태라지만 지분율 1%를 끌어올리는 데 260억 원이 드는 점은 부담이다.
▲ 한진빌딩. | ||
상장사인 대한항공이나 ㈜한진 지분 취득엔 거액이 들고 조 회장 지분을 증여하는 데도 만만치 않은 세금이 부과됨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비상장사인 정석기업에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조원태 상무는 정석기업 지분이 현재 하나도 없지만 상장사인 ㈜한진 대한항공에 비해 조양호 회장 지분을 증여하는 데 가격 면에서 훨씬 용이하다.
최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조세포탈 부분만 유죄판결을 받고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배정은 모두 무죄판결을 받은 점 또한 눈길을 끈다. 전환사채나 신주를 헐값에 발행해 이를 조 상무가 인수할 가능성도 재계인사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중이다.
지난 2003년 그룹 계열 분리 전까지 지주사 역할을 했던 정석기업에 대한 중요성은 이미 한진가 형제간 다툼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2005년 12월 2남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4남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은 ‘창업주 고 조중훈 회장이 작고한 후 유산분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맏형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정석기업 주식에 대한 명의개서절차 이행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006년 10월 법원의 조정 결정에 따라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과 김성배 고문이 갖고 있던 주식 6만 9000주(지분율 3.45%)를 조남호-정호 형제에게 증여하는 것으로 정석기업 관련 법정공방은 마무리됐다.
정석기업은 형제간 지분분쟁이 일단락되고 나서 지난 2년간 꾸준히 ㈜한진 지분을 사들여 종전의 지분율 15.48%에서 2.50%포인트 늘어난 17.98%로 만들었다. 총 30여만 주 늘리는 데 들어간 금액은 150억 원가량. 정석기업은 서울 중구 남대문로 소재 한진빌딩을 소유해 대한항공 등 계열사들과 타 기업 입주자들에 대한 임대 수입, 그리고 ㈜한진 지분 보유에 따른 배당액을 주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
공시된 재무제표에 따르면 정석기업은 지난해 총 305억 원의 영업수익을 올렸다. 그런데 같은 해 ㈜한진 지분 사들이는 데 쏟은 금액만 86억 원에 이른다. 한 해 수입의 30%가량을 ㈜한진 지배력 강화에 투입한 셈이다. 재계 인사들은 정석기업의 계열사 지배력을 높이는 데 한창인 조 회장의 다음 행보가 조 상무의 정석기업 지분율 확대에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같은 관측의 배경은 정석기업을 둘러싼 한진가 형제들 소송이 마무리되고 나서 정석기업 지배구조에 일어난 변화에서 기인한다. 정석기업은 지난 10월 22일 공시를 통해 조중건 전 부회장과 김성배 고문의 정석기업 보유 지분 전체를 조양호 회장 등에게 모두 넘겼다고 알렸다. 이는 조남호-정호 형제가 차명주식 논란으로 공격했던 대상인 두 사람을 지배구조에서 제외함으로써 정석기업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조중건 김성배 두 사람이 갖고 있던 정석기업 지분 7.76%는 조양호 회장과 조 회장 모친 김정일 씨, 그리고 조 회장 누나 조현숙 씨와 고 조수호 회장 미망인인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가족에게 분배됐다. 한진가 2남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은 형제간 법정공방 당시 조양호 회장 편에 섰다. 게다가 최은영 회장 측에 주어진 지분은 1.72%에 불과해 조양호 회장은 사실상 정석기업 전체를 자신의 영향력하에 두게 된 셈이다. 과연 조 회장이 향후 어떤 형태의 지배구조 변화를 통해 조원태 상무의 입지를 넓혀줄지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