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카메라를 통해 답안지를 유출하는 장면(왼쪽)과 초소형 고막이어폰. 사진제공=MBC, 뉴스와이
지난 2012년 10월, 토익시험을 보러온 영어강사 A 씨의 소매에는 자그마한 단추 카메라가 달려있었다. A 씨는 문제를 풀며 단추 카메라를 통해 답안지를 부지런히 비췄다. 카메라를 통해 전송된 영상은 시험장 주변에서 승합차에 타고 있던 ‘시험성적조작단’ 총책 박 아무개 씨(29) 눈앞에 생중계됐다. 박 씨는 노트북에 나타난 영상을 보고 다른 시험장에서 시험을 보고 있는 의뢰인 B 씨에게 정답을 불러주기 시작했다.
B 씨는 박 씨의 음성을 ‘초소형 고막이어폰’을 통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초소형 고막이어폰은 마치 쌀알 같이 작은 크기로 고막 안에 부착하는 방식이라 눈에 띌 염려가 없었다. B 씨는 초소형 고막이어폰을 작동시키기 위해 수신용 안테나가 달려 있는 지갑까지 소지하고 있었다.
시험성적조작단이 사용한 방법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선수’라고 불리는 영어강사 A 씨의 신발에 진동버튼을 장착해 엄지발가락으로 정답을 보내는 ‘모스 부호’ 방식부터, 과감하게 직접 1대 1 대리시험을 치는 방식 등 대담한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시험성적조작단에 부정시험을 의뢰한 이들은 총 15명. 문의를 한 이들만 해도 320여 명에 달했다. 이들 중에는 명문대학에 진학하거나 대기업에 입사한 이들도 있다고 전해진다.
대리시험 전문사이트에 올라온 가격과 절차 게시글.
한 업자에게 메일을 보내 “대리시험을 원한다”며 직접 의뢰를 해봤다. 메일을 보낸 지 10분 만에 답장이 날라 왔다. 업자는 “최신장비를 이용하여 의뢰인 본인이 직접 시험을 치른다”며 “시험 전날 미팅을 하고 장비를 건넬 때 50만 원, 시험이 끝나고 오후 3시경부터 나머지 350만 원을 수금한다”라고 전했다. 오후 3시경부터 토익 관련 사이트에 가답안이 올라오기 때문에 점수를 확인하고 성공을 했다 싶으면 돈을 입금하라는 것. 업자는 “우리는 믿을 수 있는 후불업체”라며 “만점까지는 아니더라도 950~960점대를 유지하는 실력 있는 선수들이 있으니 점수 걱정은 안 해도 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또 다른 대리시험 업자는 아예 전문 사이트까지 운영하며 대리시험을 홍보하고 있었다. 메일을 통해 연결된 사이트로 접속하니 대리시험 가격 및 절차와 의뢰 방법, 그밖에 신분증 위조, 성적표 위조 등이 자세하게 안내되어 있었다.
이 업자는 “예전에는 성적표를 위조하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 신정아 사건 등 학력위조 문제가 하도 불거지는 바람에 기업에서 꼼꼼히 검사해서 위조는 들킬 위험이 있다”며 “차라리 대리시험이 낫다. 신분증과 사진을 보내주고 시험일시와 장소를 알려주면 실력 있고 얼굴 비슷한 사람으로 맞춰준다”라고 전했다. 8년 동안 대리시험 영업을 했다는 그는 “한 달에 20~30명은 꾸준히 의뢰한다”며 “연초부터 5월까지는 취업 시즌으로 특히 의뢰자가 몰린다”라고 덧붙였다.
커닝에 자주 이용되는 스마트 시계와 토익 대리시험 홍보글.
특히 시험성적조작단의 일당 중 한 명이 실제로 2013년도 수능 응시 원서를 접수한 사실이 밝혀져 수능 대리시험에 성공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경찰 관계자는 “수능 응시 원서를 접수한 자는 30대로 수능을 볼만한 나이가 아니었다. 이에 수능 대리시험 여부를 캐물었지만 ‘실력을 검증하고 싶어서’라고 진술하며 발뺌했다”며 “아직까지는 증거가 부족해 수사를 확대하지는 못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대리부정시험이 토익과 같은 어학시험에서부터 점차 그 영역을 확장, 최근 들어서는 각종 국가시험에까지 대범하게 범죄를 시도하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단속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중국으로 서버를 돌려 사이트를 운영하거나 메일을 통해서 암암리에 접근하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만은 않은 상황”이라며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을 뿐 대리부정시험은 널리 퍼져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토익위원회 관계자는 “부정행위자를 적발하기 위해 사이버신고센터를 운영해서 제보자를 포상하고 있다”며 “부정행위를 모의하는 카페나 사이트가 발견되면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해서 폐쇄 및 삭제 조치를 취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수능 부정행위 사례 광주서 159명 짜고 치러 철통같은 경비를 자랑하는 수능도 대대적인 부정행위가 적발된 바 있다. 역대 최고의 수능 부정행위로는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대표적이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무려 363명의 수험생이 부정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부정행위가 가장 크게 발생했던 지역은 광주광역시였다. 무려 159명의 수험생이 부정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들은 실력에 따라 ‘선수그룹’, ‘일반그룹’, ‘도우미그룹’ 등으로 역할을 나누고 일부는 시험 하루 전날 고시원에서 합숙하며 커닝 예행연습을 하기도 했다. 부정행위는 치밀하게 이뤄졌다. 시험 당일, 공부를 잘하는 집단인 선수그룹은 휴대폰 2개를 어깨와 허벅지에 부착하고 고사장에 들어갔다. 선수들은 정답 번호 숫자만큼 휴대폰을 두드려 신호음을 고시원에서 대기하고 있던 도우미그룹에게 전달했다. 도우미그룹은 선수들에게 받은 답안 중 다수의 답안을 정답으로 간주해 선수그룹과 일반그룹에게 문자메시지로 재전송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광주광역시 사건의 실체가 밝혀진 후 경찰은 수사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당시 부정행위를 저지른 학생 중에는 거액의 돈을 받고 응시원서의 사진을 바꿔 대리시험을 친 경우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고사장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하는 등 ‘수능 부정행위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수능 부정행위는 매년 꾸준히 적발되고 있다. 지난 2012년에는 117건의 수능 부정행위가 이뤄진 바가 있다. 부정행위 적발 사례에 따르면 휴대폰 반입이 금지된 최근에는 최신 도청기기를 이용한 부정행위 시도도 은밀히 이뤄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
SAT 부정행위 사례 900여 명 성적 취소 사태 설로만 돌았던 SAT 문제 유출이 대대적으로 문제가 된 시점은 지난 2010년 ‘제프리 손’ 사건이 터지고 나서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강남 SAT계의 스타강사인 제프리 손 씨(42)는 2007년 동료 강사 김 아무개 씨에게 태국에서 SAT 시험을 보도록 했다. 김 씨가 태국에서 문제를 유출하면 미국에서 SAT 시험을 보는 학생들에게 알려줄 계획이었던 것. 태국과 미국의 시험 시차가 12시간이 나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당시 손 씨는 SAT 문제를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게시했고, 이를 본 학생들이 시험을 본 것으로 드러나 국내 응시생 900여 명의 성적이 한꺼번에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손 씨는 지난 3월 29일 무죄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손 씨에게 답안을 알려줬다는 사람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제3자가 피고인의 인터넷 카페 아이디를 도용해 글을 올렸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손 씨가 답안을 게시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손 씨가 이용했다고 의혹을 받았던 ‘시차 방식’ 외에도 SAT 시험과 관련해 갖가지 부정 방식은 암암리에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문제를 외워오라고 시키는 것. 실제로 지난 2월 강남 어학원의 한 SAT 강사가 아르바이트생에게 “전부 85문제이니 총 50문제는 외워 주시기 바랍니다. 내일 시험 끝나고 학원에 오시면 바로 현금으로 지급하겠습니다”라고 이메일을 보낸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밖에 SAT 시험에 계산기를 사용할 수 있는 점을 악용해 답을 계산기에 입력해서 나오거나 유학생을 직접 섭외해 대리시험을 보는 방식도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강남 소재 한 어학원 관계자는 “시험문제를 유출하는 강사도 문제지만 이를 요구하는 학부모도 문제다. 태국에서 SAT 문제를 유출한 한 강사가 학부모 설명회에서 ‘방금 따끈따끈한 문제를 들고 왔습니다’라고 발표하자 학부모들이 앞 다퉈 박수를 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문제를 잘 유출하는 강사를 스타강사로 떠받드는 학부모들 때문에 일종의 ‘강사 리스트’도 돌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빈번한 문제 유출 의혹으로 SAT 주관사 ETS 측은 2010년 이후 한국을 경계대상국으로 지정해 특별 감시를 하고 있는 중이다. 또 다른 어학원 관계자는 “일부 몰지각한 강사와 학부모들로 인해 열심히 공부하는 국내 학생들까지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