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에 대한 최태원 회장의 극진한 예우엔 경영 외적인 사정이 깔려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돌고 있다. | ||
SK 측은 이번 손 명예회장 추대 배경이 “원로에 대한 예우 차원”이라는 입장이며 손 명예회장 역시 경영에 관여할 뜻이 없다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그의 상징성을 볼 때 ‘진짜 임무’는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지난 1965년 SK 전신인 선경그룹에 입사, 최태원 회장 선친인 최종현 회장의 핵심측근으로 SK 성장의 주역이었다. 1998년 최종현 회장 타계 직후 손 명예회장은 최태원 회장과 함께 그룹 회장에 올라 공동경영체제를 구축했다. 고 최종현 회장이 최태원 회장에게 경영과 관련해 손 명예회장과 상의하라는 유지를 남겼고 당시 그룹 내 손 명예회장의 영향력이 컸던 탓에 손 명예회장에게 경영의 무게가 실린다는 평을 낳기도 했다.
손 명예회장은 2003년 2월 최태원 회장이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건으로 구속수감돼 그해 9월 보석으로 풀려나기까지 경영공백을 메웠다. 이듬해인 2004년 1월 손 명예회장은 회사자금 유용 등의 혐의로 구속수감되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8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그해 9월 보석으로 석방된 직후 최태원 회장과 회동한 일이 알려지면서 경영 복귀설이 흘러나오기도 했지만 최근 명예회장 추대 이전까지 공식 경영행보를 보인 적은 없다.
최 회장의 경영공백 당시 손 명예회장 주변 인사들이 SK 경영의 주류를 이뤘지만 최근 들어 손 명예회장 세대가 물러나면서 최 회장 주변은 유학파 출신 인사들이 채워 왔다. 그러나 여전히 그룹 내부엔 손 명예회장 계보로 분류됐던 인사들 수가 제법 된다고 한다.
▲ 최태원 회장(왼쪽), 최신원 회장. | ||
게다가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지난 8일 ‘회사자금을 유용했던 손 전 회장에 대해 SK텔레콤은 명예회장 추대가 아니라 손실보전을 청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논평을 내는 등 손 명예회장 컴백에 대한 부정적 정서도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런 까닭에 손 명예회장에 대한 최 회장의 극진한 예우엔 경영 외적인 사정이 깔려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돈다. 정가에선 손 명예회장과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이 서울대 상대 선후배로 인연을 맺고 있는 점을 눈여겨 보기도 한다.
재계에선 계열분리 문제에 미칠 영향을 더 주목하고 있는 분위기다. 최태원 회장 선친 최종현 회장의 형이자 SK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아들들인 최신원 SKC 회장과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의 분가설은 재계의 오랜 관심사 중 하나다. 최창원 부회장은 이미 SK그룹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지분상 여건을 갖춘 반면 최신원 회장의 처지는 그렇지 못하다. 최태원 회장의 SK㈜가 SKC 지분 42.50%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반면 최신원 회장의 SKC 지분율은 3.11%에 불과해 최태원 회장의 지배력을 벗어나기가 당장은 어려워 보인다.
고 최종현 회장 대부터 최태원 회장으로의 승계과정 등 SK 총수일가의 내밀한 사안에 깊이 관여해온 손 명예회장은 최태원-최신원 사촌형제 간의 분가 실타래를 풀어줄 적임자로 거론돼왔다. 최신원 회장이 SKC 대신 선친 최종건 회장의 애착이 남달랐던 워커힐을 원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 바 있지만 계열분리 관련 묘수를 얼른 뽑아들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손 명예회장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최신원 회장은 월간 <신동아>(12월호)와의 인터뷰에서 “형제들 간 각자의 영역 분배와 관련해 조만간 합의가 끝날 것이며 SKC 지분율을 15%까지는 늘려갈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SK나 SKC 측 모두 분가 가능성을 일축하고는 있지만 재계에선 이들의 계열분리를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아울러 ‘올드 보이’ 손길승 명예회장의 귀환이 최태원-최신원 형제간 지분 분배에 과연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