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19번째 앨범 <헬로>로 컴백한 조용필의 쇼케이스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조용필이 23일 새 음반 <헬로>를 내놓았다. 이날 아침, 서울 종로구의 한 대형서점 앞에는 200여 미터에 이르는 긴 줄이 생겼다. 이 서점에서 한정판으로 판매한 조용필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CD를 먼저 구입하기 위해 새벽부터 팬들이 서점 앞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이날 판매하기로 한 사인 CD는 500장이었다. 경쟁은 상상 이상 치열했다. 일련번호까진 매겨진 500장의 CD 중 ‘1번’을 구입한 팬은 이날 새벽 2시에 서점 앞에 찾아와 가장 먼저 줄을 선 팬이었다. 남성 팬들도 상당히 많았다. 전날 밤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온 중년 팬들도 여럿이었다.
가요계에서는 이를 ‘신드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열기는 곧 ‘기록’으로 증명되고 있다. 조용필의 타이틀곡 ‘헬로’는 발표하고 불과 한 시간 만에 국내 모든 온라인 음원차트 1위를 싹쓸이했다. ‘헬로’보다 앞서 16일에 출시된 또 다른 노래 ‘바운스’ 역시 9개 음원차트 1위를 휩쓴 뒤였다. 심지어 한 음원차트에서는 조용필 19집에 수록된 9곡이 1위부터 9위를 모두 차지하기도 했다.
열기 속에 1차 판매용으로 제작한 2만 장의 CD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조용필 측은 곧바로 추가 물량 제작에 돌입했다. 발매 당일 음반 판매 사이트 1위, 라디오 방송횟수 1위, 이동통신 벨소리 차트 1위도 동시에 휩쓸었다.
조용필 신드롬은 아이돌 그룹이 장악한 국내 음악계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가수 싸이나 밴드 버스커버스커 등 개성 강한 일부 가수들을 제외하고 아이돌 중심의 음악으로 음원 차트가 채워진 시장에서 60대 중반의 가수가 내놓은 신곡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 건 처음이다. 가요 관계자들은 “좋은 음악이 결국 여러 세대와 소통한다는 진리가 확인됐다”고 입을 모은다. 조용필이 완벽하게 짜놓은 음악적 완성도를 성공의 열쇠로 보고 있다.
조용필의 쇼케이스 모습 팬들이 열렬히 환호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그는 음반 발표 당일 연 기자회견에서 “몇 년간 곡도 많이 쓰고 연구도 했는데 양에 차지 않았다.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이번 음반은 새로운 나를 찾는 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음악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로 조용필은 “꾸준한 연습”을 꼽았다. ‘가왕’으로 불리는 가수이지만 연습은 그 실력의 원동력이다. “음반 녹음이 끝나고도 두 달 동안 하루 서너 시간씩 노래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조용필은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전국투어의 첫 번째 공연을 연다. 음반 발표 이후 TV 출연 요청이 쇄도하지만 이를 모두 거절하며 오직 공연 연습에만 매달리고 있다.
조용필 신드롬은 그동안 대중음악의 주요 소비층에서 비켜있던 중·장년들의 집결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40~50대는 조용필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던 1980년대 초·중반에 스타를 향한 팬덤을 처음 만든 ‘원조 오빠부대’로 평가받는다.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조용필은 당시 ‘고추잠자리’, ‘단발머리’, ‘비련’ 등 발표하는 노래 대부분을 히트시켰다. 이에 힘입어 일본에 진출한 ‘원조 한류가수’이기도 하다. 1986년 일본에 처음 진출한 그는 ‘추억의 미아’라는 음반을 발표하고 당시 100만 장의 판매를 일궈내 일본 내 톱스타로 떠올랐다. 요즘도 일본에서 활동하는 아이돌 스타들에게 ‘최고의 영광’으로 통하는 NHK 연말 프로그램 ‘홍백가합전’에 그 당시에 출연하며 일찌감치 영광을 누렸다.
이제 막 새 음반이 나왔는데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다음 음반에 대한 구상이 벌써 시작됐다. 기자회견에서 조용필은 “서울 공연이 시작되면 바로 20집 음반을 준비하자고 스태프들과 얘기했다”며 “‘내가 들어 좋으면 좋고, 당신이 들어서 좋으면 그게 좋은 거다. 좋은 음악은 계속 만들고 찾아 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가왕’의 질주는 끝이 없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
가왕의 결혼생활 아내 잃은 슬픔 노래로 승화 가요계에서 승승장구한 것과는 달리 조용필의 개인사는 평온하지 않았다. 그는 1980년대 초 박 아무개 씨와 결혼했지만 행복한 일상을 보내지 못하고 1988년에 이혼했다. 이후 독신 생활을 해오다가 1994년 재미 사업가인 안진현 씨와 재혼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와 함께 둘의 러브스토리도 화제를 모았다. 조용필은 당시 한 인터뷰에서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을 오가면서 아내(안진현) 얼굴이 떠올라 사랑의 감정을 깨달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 결혼생활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2003년 안 씨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후 조용필은 독신으로 생활하고 있다. 먼저 떠난 아내를 잊지 못해 깊은 사랑의 마음을 담은 ‘진’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추모하기도 했다. 감정의 밑바닥까지 가는 슬픔마저도 음악으로 승화해낸 셈이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