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상의가 벗겨진 여대생 A 씨의 시신이 발견된 비진도 선착장 방파제. A 씨의 여행계획 노트. CCTV에 찍힌 선착장에서 내린 A 씨의 모습. 원 안은 아버지 B 씨가 딸의 죽음과 관련 여러 의혹들을 제기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 3월 19일 오후 1시경 경남 통영시 한산면 비진도 선착장 방파제 인근 해상에서 신원미상의 여성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은 부패가 심한 상태였고 상의는 없고 청바지만 입은 채였다. 경찰의 확인 결과 시신은 지난 3월 5일 오후 대구에서 실종신고가 접수된 20세 여대생 A 씨로 밝혀졌다. 대구에 사는 A 씨는 3월 5일 통영에서 배를 타고 오후 3시 15분경 비진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11분 후인 오후 3시 26분경 선착장에서 선유대 산으로 올라가는 A 씨의 모습이 CCTV에 찍혔다. 그러나 그가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은 CCTV에 다시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유일한 목격자가 나타났다. CCTV에 찍힌 A 씨를 찾으러 3월 10일 비진도로 간 아버지 B 씨가 민박집을 하는 주인 C 씨에게 딸의 인상착의가 담긴 전단지를 건네자 C 씨가 “A 씨가 민박집 방만 보더니 갔다”고 말한 것이다. 아버지 B 씨는 민박집 방 화장실에서 A 씨의 것으로 보이는 칫솔을 발견했다. 또한 아버지는 민박집 주인 C 씨의 배에서 찾아낸 장갑을 두고는 A 씨의 장갑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버지는 “내 딸은 산에서 내려왔으며, 자살이 아니라 C 씨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통영경찰서는 A 씨를 찾기 위해 경찰기동대 등 500여 명의 경찰 인력과 경찰헬기, 해양경찰서 소속 경비함 2척, 경찰특공대 수색견까지 동원해 비진도 전체에 대한 수색 작업을 벌였고, 결국 실종된 지 보름이 지난 3월 19일 비진도 선착장 앞에서 A 씨의 시신을 찾아냈다.
그런데 A 씨의 부검이 이뤄지고 사망원인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던 와중에 아버지 B 씨는 몇 가지 의혹을 들며 “민박집 주인 C 씨가 내 딸을 살해했는데 경찰이 딸의 죽음을 자살로 몰고 가며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사건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가 제기한 의혹은 사건의 조작 과정에서 증거물인 칫솔과 장갑을 경찰이 바꿔치기했다는 것, 부검 결과 시신의 훼손 상태가 추락에 의한 것이 아닌데 추락사로 몰고 간다는 것, 민박집에 대한 수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이 모든 은폐 과정이 민박집 주인 C 씨가 통영경찰서 고위관계자와 친인척 관계에 있어 고위 관계자의 압력으로 경찰이 C 씨의 살인 용의점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B 씨가 “딸이 죽기 전 머물렀다”고 주장한 민박집.
아버지는 자신이 민박집에서 직접 발견한 딸의 칫솔을 두고도 “경찰이 바꿔치기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색깔이나 제품은 방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데 칫솔모의 벌어진 정도가 다르다”며 “칫솔을 바꿔치기해 딸의 유전자가 발견되는 걸 은폐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아버지의 주장에 대해 민박집 주인은 “칫솔은 이전 손님이 사용하고 버리고 간 것으로 집사람이 청소할 때 쓰려고 놔둔 것이다. 민박집을 찾은 여성은 방을 둘러만 보고 갔는데 어떻게 칫솔이 남아있을 수 있느냐”며 답답해했다.
이에 대해 통영경찰서의 한 관계자도 “칫솔에서 나온 유전자는 딸의 것이 아닌 남성의 것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B 씨는 “칫솔을 바꿔치기했으니 A 씨의 유전자가 나오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아버지는 민박집 주인의 배에서 자신이 직접 발견한 장갑 역시 “딸이 사용하던 것으로, 어부들이 뱃일할 때 사용하긴 약한 장갑이다”라고 주장한 반면 민박집 주인은 “작년 가을에 통영의 한 낚시점에서 비진도 주민들과 단체로 구입한 장갑이다”라고 반박했다.
사체의 상태와 발견 당시 상의가 벗겨진 것에 대해서도 아버지는 “추락으로 나타날 수 있는 시신의 상태가 아니다”라며 “속옷과 단추가 잠겨있는 긴팔 남방셔츠, 지퍼로 잠그는 후드점퍼, 니트 등 겹겹이 입은 상의가 완전히 벗겨진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찰에서는 “사체의 양쪽 정강뼈, 종아리뼈, 발꿈치뼈 등의 분쇄골절 상황으로 보아 추락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바다 익사체의 경우 파도에 의해 상의가 완전히 벗겨지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이지 성폭행의 증거가 되기 힘들다”고 반박했다.
현재 비진도 여대생 사망 사건은 아버지가 민박집 주인은 물론, 통영경찰서 수사팀을 직무유기와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넣고 대검찰청에 고소를 하여 통영해양경찰서에서 재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통영해양경찰서 관계자는 “대검찰청의 지시를 받아 통영경찰서의 관계자들을 비롯한 사건 관련자 소환, 사체 검시부터 현장 확인까지 아버지가 제기한 의혹 부분들에 대해 다시 전면적인 재조사를 하고 있다”며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의 제2라운드 수사는 숨진 A 씨의 아버지가 한 점 의혹도 제기하지 못하도록 더욱 완벽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부담스런 상황에 놓이게 됐다.
경남 통영 =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