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女神)의 수난시대다. 지난해까지 프로야구팬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던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들이 최근 들어선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야구팬들과 일부 야구 관계자는 “전문성은 제자리인 채 노출과 잿밥에만 신경 쓰는 여성 아나운서 때문에 야구 관련 프로그램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며 “여성 아나운서 스스로 성의 상품화에 앞장서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XTM <베이스볼 워너비> 공서영 아나운서.
당시 정 아나운서는 작심을 한 듯 트위터를 통해 ‘레이싱의 인기를 깎아내린 것은 레이싱걸이다. 대회가 열리면 오로지 관심은 레이싱걸이었다. 결국 ‘레이싱스포츠’라는 본질은 지워지고 레이싱걸이란 부가요소만 남았다. 현재 여자 야구 아나운서들에 대한 일부 닷컴들의 비정상적인 관심을 보면 레이싱걸들이 오버랩된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여성 아나운서들의) 노출과 셀카는 이제 지겹다. 그녀들에 대한 비정상적인 관심도 문제지만, 그녀들도 ‘다른 옷 없을까요?’라고 거절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쓴소리를 토해냈다.
정 아나운서의 트위터는 삽시간에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로 퍼졌고, 공감을 나타내는 게시글이 넘쳐났다.
초교 3학년 아들을 뒀다는 한 야구팬은 “4개 케이블스포츠채널에서 하는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어디로 시선을 둬야할지 민망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나 아들이 ‘아빠, 저 누나는 왜 야구 프로그램 진행자인데 옷을 벗고 나와?’라고 물을 땐 마땅히 답할 말이 없었다”며 “정말 그렇게 벗고 싶으면 방송에 ‘19금’이라고 표시하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야구팬들도 ‘야구 프로그램들이 내용과 질로 승부해야 하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여성 아나운서들의 노출로 시청률 경쟁을 벌인다’며 ‘미국, 일본 야구 프로그램 어디에서도 한국처럼 여성 진행자가 짧은 치마와 가슴골이 드러나 보이는 웃옷을 입고 나오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정 아나운서의 트위터 글은 야구계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모 구단 관계자는 “여성 아나운서들의 과도한 노출 때문에 곤혹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오래된 일도 아니다. 한번은 스프링캠프에 지상파 야구 프로그램 관계자들이 왔다. 우리 팀을 취재하겠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했다. 헌데 함께 온 여성 진행자의 복장이 가관도 아니었다. 무슨 화장품 광고를 찍으러 왔는지 진한 화장에 술집 아가씨처럼 허벅지가 다 드러낸 숏팬츠를 입고 나타났지 뭔가. 선수들이 웅성웅성하고, 다른 취재진도 혀를 차는 통에 정중하게 ‘옷을 바꿔 입지 않으면 구장 안 출입은 어렵다’고 알렸다.”
다른 구단 관계자는 더 황당한 일을 접하기도 했다.
“한번은 어느 여성 아나운서가 경기 전 더그아웃에 왔다. 향수 냄새가 진동했다. 거기다 하이힐을 신고 와 걷는 곳마다 흙이 파이기 시작했다. 선수들에겐 야구장이 일터인데, 남의 일터에 찾아올 땐 최소한 예의라도 갖춰야 하지 않나 싶어 ‘다음부터 하이힐은 곤란합니다’라고 했더니 죽일 듯이 노려보곤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여성 아나운서의 노출보다 문제인 건 전문성 부재다. 한 유명 프로야구 선수는 시즌 초 어느 여성 아나운서로부터 황당한 질문을 받았다.
“훈련을 끝내고 들어가는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여성 아나운서가 ‘어제 홈런 친 상대 팀 투수에게 미안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몇 번이고 물어보기에 ‘프로끼리 미안한 게 어디 있냐’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인간미가 없으시네요’하더니 코웃음을 쳤다. 그 아나운서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 아나운서 대부분이 수준 낮은 질문을 하기 마련이라, 요즘엔 야구장에 여자만 보이면 모른 척하고 지나간다.”
야구팬들도 경기가 끝나고 여성 아나운서들이 주로 질문하는 ‘수훈선수 인터뷰’에 불만이 많다. 한 누리꾼은 “경기를 제대로 보기나 했는지 승부와는 상관없는 질문만 실컷하다 끝나게 마련”이라며 “더블아웃과 더블플레이, 히트 앤드 런과 런 앤드 히트도 구별 못하는 여성 아나운서가 태반”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여성 아나운서들의 입장은 어떨까. 최희 KBS N 스포츠 아나운서는 “일부 시청자가 보시기엔 일부러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다고 보실 수 있겠지만, 방송에 입고 나가는 의상 대부분은 당시 유행하는 옷”이라며 “시청률을 올리려고 무분별한 노출경쟁을 벌인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오해”라고 답했다.
노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공서영 XTM 아나운서도 “같은 그림을 바라봐도 관점에 따라 그림이 주는 메시지가 다르듯 여성 아나운서의 의상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다양할 수 있다”고 말문을 열고서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KBS N 스포츠 <아이 러브 베이스볼> 최희 아나운서(위)와 SBS ESPN <스포츠센터> 신아영 아나운서.
사실 여성 아나운서들이 가장 신경 쓰는 건 전문성이다. 그들 대부분은 “노출이 심하다는 말보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털어놓는다.
그래서일까. 전문성을 키우려고 여성 아나운서들은 자주 야구 현장에 오고, 비시즌 기간엔 야구강습회 등을 찾아다니며 야구지식을 넓히려 한다. 덕분에 일부 여성 아나운서는 선수들과 친분을 넓히며 기자 못지 않은 취재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러한 친분이 때론 독이 되기도 한다. 한 여성 아나운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헤픈 여자’란 소문의 주인공이 됐다. 스프링캠프에서 평소 친했던 선수와 술자리를 한 게 화근이었다. 당시 방송사 스태프 여러 명이 함께 자리를 해 오해를 살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를 목격한 모 야구인이 “모 선수와 모 여성 아나운서가 술자리에서 화끈한 애정행각을 벌인다”고 소문을 퍼트린 바람에 루머의 주인공이 돼버렸다.
사실 이 야구인이 목격한 것도 스태프들의 장난으로 두 사람이 러브샷을 하는 장면에 불과했다. 여성 아나운서들도 이를 아는지 “원체 눈들이 많아 선수와 가벼운 농담을 나눠도 오해를 사기에 공개된 자리에선 절대 선수들과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며 “야구를 배우고 싶을 땐 방송을 함께하는 해설위원님들께 자주 물어보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밝혔다.
반대로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모 구단의 유명 투수 B는 여성 아나운서 두 명과 더블데이트를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 가운데 한 아나운서와는 취재 중 만나 사랑을 꽃피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B의 더블데이트가 탄로나며 두 아나운서 모두 눈물을 흘리며 B를 떠났다는 후문이다.
모 선수는 “여성 아나운서들이 방송에서 ‘선수들로부터 대시를 받았다’는 고백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선수들을 마치 자기들보다 몇 수 아래인 사람처럼 낮춰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선수들 사이엔 ‘어느 아나운서가 누구에게 추파를 던졌다’, ‘어느 여성 아나운서는 10분이면 넘어 온다’는 식의 소문이 파다한 게 사실”이라며 “여성 아나운서 스스로 자존감과 프라이드를 높였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일침을 놨다.
노출 논란의 책임은 사실 방송사에 있다. 한 케이블스포츠채널 PD도 이를 인정했다. 그는 “뉴스 아나운서들이 노출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유독 케이블채널 야구 프로그램에서 논란이 되는 건 ‘야구 프로그램은 노출을 해야 시청률이 오른다’는 방송사 윗분들의 그릇된 인식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따지고 보면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노출 시비는 지상파도 예외가 아니다. 모 지상파 스포츠국 국장은 과거 “벗어야 시청률이 오른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가 국장으로 재직하던 무렵 이 지상파의 스포츠 프로그램 아나운서들은 하나같이 과도한 노출 의상을 입고 출연했다.
재미난 건 ‘벗어야 시청률이 오른다’는 주장은 전혀 검증된 바가 없다는 것이다. 케이블스포츠채널간 시청률 전쟁을 벌이는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역시 노출은 시청률과 별 연관이 없다. 그보단 어느 방송사가 먼저 프로그램을 방영하느냐, 해설가가 누구냐에 따라 시청률의 등락이 결정된다.
여성 아나운서의 노출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방송사는 뒷짐을 지고 있다. 의식있는 방송 관계자들은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여신’이 아니라 여신을 ‘타락천사’로 만드는 방송사”라며 “방송사의 의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노출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강민 스포츠라이터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 수입은? 스케줄에 비하면 ‘애걔걔’ KBS N 윤태진 아나운서가 KIA 타이거즈 선동렬 감독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모 케이블스포츠채널 PD는 “현실을 알면 그런 소릴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PD에 따르면 신입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가 정규직이 되려면 2년 동안 계약직으로 뛰어야 한다. 정규직이 돼도 급여는 방송사 다른 아나운서들과 별 차이가 없다. 여성 아나운서들이 광고에 출연해도 회사가 출연료의 절반을 가져가기에 목돈을 손에 쥐기도 어렵다고 한다. 특히나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은 월요일을 빼고 6일을 방송하기에 메인급 여성 아나운서는 살인적인 스케줄에 시달려야 한단다. 최희 KBS N 아나운서는 “아이러브베이스볼을 준비하기 위해 오후 2시에 출근해 방송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면 새벽 1시가 넘어가기 일쑤”라며 “시즌 중엔 친구를 만나기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단, 프리랜서 아나운서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방송사로부터 받는 급여가 정규직 아나운서보다 높고, 광고 출연 시 방송사에 따라 돈을 떼 줄 필요도 없다. 모 여성 아나운서는 “월 1000만 원 이상을 벌 때도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프리랜서의 한계도 명확하다. 해당 프로그램 PD가 바뀌거나 개편이 되면 자리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강민 스포츠라이터 |
신입 아나운서 채용 살펴보니 경쟁률 1000 대 1 4월 하순. MBC 스포츠플러스 관계자는 사옥 로비를 가득 메운 인파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열흘 전 이 방송사는 신입 아나운서 모집 공고를 낸 바 있다. 이날은 서류전형을 거친 지원자들이 1차 카메라 테스트를 받는 날. 방송사 관계자는 “서류전형 시 1000명이 넘는 이력서가 쇄도해 그 가운데 600명을 추려내 1차 테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며 “예년과 비교하면 지원자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카메라 테스트를 받으러 온 김 아무개 씨는 미국 유학파 출신의 재원이었다. 유학 시절 미인대회 수상경력이 있는 김 씨는 “원래 지상파 뉴스 아나운서가 목표였지만, 스포츠 아나운서 선배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며 “뉴스 아나운서가 단순히 사실 전달자인데 반해 스포츠 아나운서는 현장을 누비며 취재까지 할 수 있는 리포터 성격이 강해 내 성격과 잘 맞는다고 생각해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의 아나운서 학원 동기인 이 아무개 씨는 “저도 여신이 되고 싶어서 왔습니다”라는 당돌한 답변으로 지원동기를 밝혔다. 이 씨는 “요즘 아나운서를 꿈꾸는 예비 여성 아나운서 사이에선 김민아, 최희, 배지현 등 여자 야구 아나운서들이 롤모델”이라며 “단순히 스포츠를 넘어 연예, 교양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는 등 활동영역이 넓어 다들 ‘제2의 김민아’를 꿈꾸고 있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이들의 꿈이 모두 이뤄질 수 없다는 데 있다. MBC 스포츠플러스는 “신입 여성 아나운서 1명을 뽑는 게 기본적인 목표”라며 “유능한 남성 아나운서가 있으면 1명 더 선발할 수 있다”는 말로 많아야 2명 남짓의 신입 아나운서를 뽑을 계획임을 밝혔다. 만약 1명만 뽑는다면 경쟁률이 무려 1000대 1이 되는 셈이었다. 최강민 스포츠라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