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ever give up!’은 SK 와이번스 이만수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문구다. 그런데 이 문구가 제대로 빛을 발한 경기가 8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벌어졌다. 두산 베어스와의 2차전에서 1-11로 패색이 짙던 경기를 13-12로 대역전승을 거둔 것. 이 감독이 경기 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Never ever give up!’을 외친 건 당연지사였다.
요즘 SK는 연일 프로야구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송은범, 신승현을 내주고 데려온 김상현, 진해수의 대형 트레이드에 이어 김상현이 SK유니폼을 입은 첫 날, 4번타자로 나가 투런포를 터트리며 ‘감동의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게다가 8일 두산전에서 보여준 SK의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 점수 차 역전승은 단순히 SK팬들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모든 팬들을 엄청난 충격 속으로 빠트렸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난 4월 팀 성적이 하위권을 맴돌 때만 해도 프로야구 전문가들은 올시즌 SK의 성적에 대해 비관적인 시선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SK가 5월에 보여주고 있는 대반격은 그 안의 스토리만큼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두산과의 2차전이 열린 8일 경기 전, 인천문학구장 감독실에서 만난 이만수 감독은 여느 때보다 편안한 표정이었다. 송은범, 신승현을 KIA에 내주면서 일부 팬들과 여론의 비난을 올곧이 감내했던 그는 ‘감독이란 원래 욕 먹는 자리’라면서 현실을 여유있게 받아들였다.
-어제 경기(5월 7일)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트레이드 된 김상현 선수가 첫 날부터 그렇게 불방망이로 인사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상현이 덕분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사를 많이 받았다. 이번 트레이드가 워낙 빅딜이다 보니 사실이 알려진 후에 진짜 말들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상현이가 흔들림 없이 제 몫을 해주니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상현이 덕분에 KIA에서 SK로 오는 팬들도 생겼다고 들었다. 이런 게 트레이드를 통한 시너지 효과가 아니겠나.”
-김상현 선수를 트레이드돼 오자마자 우익수 겸 4번 타자로 선발 출장 시켰다. 김상현 선수가 4번을 치니까 든든해 보이긴 하더라.
“그걸 느끼고 싶었다. 워낙 무게감이 있는 선수라 최정 뒤에 상현이가 있으면 정이도 훨씬 부담이 덜할 것 같았다. 더욱이 상대팀 투수도 최정-김상현 타순을 어려워했다. 그동안 한동민이가 잘해줬지만 신인 선수이다 보니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상현이가 왔으니까 부담을 훌훌 털고 즐겁게 야구를 했으면 한다.”
-김상현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워낙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던 선수라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여느 선수보다 더 진지하고 열정적인 것 같다. 트레이드 돼 오자마자 특타 훈련을 한 선수는 상현이가 처음이었다. 최경환 코치가 KIA 시절 상현이와 인연이 있는 터라 최 코치에게 상현이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었다. 최 코치도 상현이처럼 성실한 선수는 본 적이 없다고 얘기하더라. 상현이 또한 방망이가 잘 안 맞을 때는 될 때까지 연습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해줘서 내심 흐뭇했다.”
-김상현 선수는 LG 시절부터 눈여겨봤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진해수 선수도 이전부터 눈여겨본 선수였나.
“해수는 그가 경찰청 시절, 그리고 난 2군 감독이었을 때 경기 중에 처음 봤다. 공을 잘 던지더라. 그래서 코치한테 어디 출신이냐고 물었더니 KIA 선수라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다. 당시 해수가 공을 잘 던졌던 건 성적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봤다. 프로는 성적에 대한 압박이 크고, 팬들의 반응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수 별명이 ‘핵폭탄’ ‘수소폭탄’이 된 듯하다. 내가 해수를 불러놓고 이렇게 얘기했다. ‘네 별명대로 마운드에서 핵폭탄급 피칭을 선보이면 된다. 경기 결과는 내가 책임질 테니, 마운드를 편하고 즐거운 곳으로 받아들여라’하고 조언했다. 해수 아버지가 올 3월에 돌아가신 줄 몰랐다. 나도 기사보고 알았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 그 아픔을 마운드에서 보여주면 된다. 상현이도 상현이지만, 해수가 SK에서 성공해야 더 아름다운 드라마가 완성되는 것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트레이드 요청은 선동열 감독이 먼저 했다. 선 감독이 고맙게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그 속사정을 밝혀주셔서 내가 욕을 덜 먹게 됐다. 선 감독이 은범이를 찍어서 트레이드를 제안하기에 난 절대 안 된다고 강하게 말씀드렸다. 그런데 두 구단들은 계속해서 트레이드 카드를 절충했고, 그때 나온 선수가 김상현이었다. 그래서 김상현이면 고려해보겠다고 말했고, 코치들과 상의 끝에 KIA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오고 가는 4명의 선수들이 하루 이틀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심정이 오죽했겠나. 그러나 이 또한 기회이고 비즈니스일 뿐이다. 트레이드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일단 시작했으면 빨리 새로운 팀에 적응해야 하고, 주어진 자리를 뺏겨선 안 된다. 다행이 상현이, 해수 모두 우리 팀에 잘 적응하고 있다. KIA로 간 은범이 승현이도 잘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특히 은범이는 워낙 친근감 있는 스타일이라 적응하는 면에선 걱정하지 않는다.”
-이번 트레이드를 전임 감독인 김성근 감독의 색깔 지우기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말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어쩌면 팬들은 기사와 소문만 갖고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선동열 감독이 스스로 밝히셨듯이 이번 트레이드는 KIA에서 먼저 제안해온 카드였다. SK 팬들이라면 우리가 안고 있었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잘 아실 것이다. 나라고 은범이와 승현이를 보내고 싶었겠나. 또 KIA에선 상현이 해수를 내보내고 싶었겠나. 이곳은 프로의 세계이고, 각자의 팀에서 필요한 부분을 주고받으며 수혈한 셈이다. 선수를 미워해서 보낸 것도 아니고, 김성근 감독님의 색깔을 지우겠다는 생각 또한 해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FA가 돼 타 팀 유니폼을 입은 이호준 정대현 이승호 선수에 대한 SK팬들의 그리움이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로 인해 김성근 감독의 색깔 지우기로 확대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그런 말들은 말 만들기 좋아하는 언론이나 일부 팬들의 생각일 뿐이다. 호준이 대현, 승호는 모두 FA 자격을 십분 이용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팀으로 이적한 것이다. 물론 나도, 팀도 그 선수들을 잡고 싶었지만 결국엔 선수가 팀을 선택했다. 그들을 내가 내보낸 게 아니지 않나. 감독은 성적을 내려면 좋은 선수들을 많이 데리고 있고 싶어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꾸 그런 기사들이 나오면 다른 선수들한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날 오해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감독이란 자리는 별의 별 말을 다 들어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하는 터라 내가 안고 갈 수밖에 없겠지만, 가끔씩 이런 얘기들이 나돌 때는 많이 속상하다. 진실이 왜곡되는 것 같아서.”
-SK의 4월 성적이 2007년 이후로 가장 안 좋았다. 7위까지 내려갔다가 5월 들어 반등세를 보이고 있는데, 4월까지만 해도 걱정과 우려의 시선이 많았던 걸 알고 있었나.
“사실 기대했던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내려가면서 팀이 많이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꼴찌만 안 한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SK는 2011년에도 안 좋았고, 지난해에도 타격은 전 부문에서 꼴찌였지만 정규리그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작용한다. 그 요소들을 나도 선수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부상만 존재하지 않는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어제 한 경기 이겼더니 바로 5위로 올라섰다. 1위 팀과 5,6게임 차이라 충분히 해볼 만한 상황이다. 지금 웃는 게 중요하진 않지 않나. 마지막에 웃어야 진정한 승자이다.”
-SK의 선발진에 대해 감독 자신은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궁금하다.
“다른 팀에 비해 선발진이 안정된 편이다. 조조, 크리스, 윤희상, 김광현, 그리고 여건욱, 문승원, 백인식 중 한 선수가 5선발로 뛸 것이다. 선발진이 안정감 있어야 타선이 흔들리지 않는다. 선발이 흔들리면 타선도 꼬이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팀의 선발진은 여느 해보다 잘 짜였다고 본다. 조조는 메이저리그 경험이 많은 선수답게 컨트롤이 좋은 구질을 가졌다. 무엇보다 위기에 몰렸을 때 흔들리지 않고 더 강한 공을 던질 수 있는 선수이다. 그러나 지난 한화전에서 볼넷 7개를 내줄 정도의 편차가 있는 선수이다. 반면에 크리스는 굴곡이 심하지 않고 평균치의 성적을 계속 유지하는 장점을 보여준다.”
-4월까지만 해도 SK 타격이 슬럼프에 빠진 게 아니냐 하는 시각도 있었다.
“최 정이 대표팀에서 눈 부상을 당하면서 그 후유증이 오래 갔었다. 기대했던 박정권도 자꾸 부진한 모습을 보여 엔트리에서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다. 주전 선수들이 이런저런 부상으로 빠지면서 타격이 침체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 또한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선수들을 믿고 기다리다보면 그들 또한 나한테 좋은 소식을 알려주는 듯하다. 이제 겨우 개막하고 한 달 지났다. 앞으로 갈 길이 멀고, 그 과정에서 SK다운 모습을 보여주도록 노력하겠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 질문은 꼭 하고 싶었다. 바로 박경완 선수에 대한 내용이다. 박경완 선수를 올시즌 1군에서 볼 수 있는 건가.
“경완이에 대해선 기자들이 더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난 경완이를 안 쓰려고 고집 피우는 감독이 아니다. 그 선수를 쓰려고 해도 부상 때문에 쓸 수 없었다. 올시즌 앞두고 경완이를 시범경기에 내보내면서 기량을 점검하고 있었고, 1군 엔트리에 집어 넣으려 했었다. 그런데 시범경기 막판에 허벅지 근육에 부상을 당해 어쩔 수 없이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3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고, 2군 경기에 출전하다가 1군에 올리려 했더니 이번엔 등에 담이 와 뛸 수 없었다. 지금 경완이는 퓨처스리그에서 활약 중이다. 상태를 점검하고 있고, 좋은 소식이 들리면 올라오게 할 수도 있다. 박경완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 부상 소식은 거의 없고, 이만수가 왜 박경완을 1군에 안올리는지에 대한 기사들이 많더라. 경완이를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좋은 기량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즌 전 박경완 선수는 트레이드를 염두에 두면서 면담 요청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궁금하다.
“난 박경완 조인성 정상호 이재원, 이 4명의 포수들과 경쟁을 펼쳐서 2명을 1군에 올리겠다고 말했다. 경완이도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고, 열심히 노력했던 걸로 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트레이드는 구단에서도 절대 불가 방침이었다. 하지만 경완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나도 선수 시절 말년에 시합 못 뛰고 매일 덕아웃에서 벤치만 달구고 있을 때 트레이드 욕심이 생겼다. 이렇게 앉혀 둘 거라면 다른 팀으로 보내달라는 얘기도 했었다. 그러나 트레이드는 선수가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그 팀에서 뛰지 못한다고 다른 팀으로 가겠다고 하고, 그게 가능해진다면 이 야구판이 얼마나 혼란스러워지겠나. 트레이드는 경완이 뿐만 아니라 2군에 있는 모든 선수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일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현실에서 도망가려는 것보다는 그 현실을 극복해서 이겨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SK의 5월 스케줄을 보니까 엄청나다. 지금 이 상승세를 계속 유지하는 게 관건일 것 같은데 말이다.
“이번 주말 넥센전부터 KIA 롯데 NC LG 삼성전이 기다리고 있다. 보니까 다 센 팀들이네. 넥센과 KIA는 1,2위팀이니까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고, 롯데는 두 게임 다 졌었다. NC도 1승2패했고, LG한테도 2패를 당했다. 쉬어갈 만한 팀이 단 한 팀도 없다. 5월 성적이 굉장히 중요하다. 선수들과 함께 마지막에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열심히 달려보겠다.”
이만수 감독은 감독이란 자리를 기다림과 인내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부상 당한 선수를 기다리고, 팬들의 비난을 참아내고, 여론의 공격에도 버틸 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1년 감독대행으로 시작한 이만수 감독의 지도자 인생은 여느 감독보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2012년 정식 감독이 되고 2년차에 접어든 올시즌이 돼서야 덕아웃에서 보는 야구 자체가 인생과 닮았다고 깨달은 그이다. 마지막에 가장 크게 웃고 싶어 하는 이 감독의 소원이 현실로 이뤄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