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그룹의 지주사는 GS홀딩스다. 허창수 회장이 1대주주인 GS홀딩스는 계열사들의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GS의 지배구조를 허창수 회장이 그룹 전체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통솔하는 ‘1인 오너체제’로 보기는 어렵다. 많은 재계 관계자들은 유력 계열사들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꿰차고 있는 GS 허씨 일가들이 저마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지도체제’로 보고 있다.
최근 GS가(家)에서 두드러지게 영향력이 확대된 세력으로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 일가를 들 수 있다. 허완구 회장은 LG그룹 창업 당시 자본투자를 했던 고 허만정 씨의 5남으로 허창수 회장의 숙부다. 승산가 최고 어른은 허완구 회장이지만 GS그룹 경영일선에선 허용수 GS홀딩스 상무가 승산가를 대변하고 있다. 허완구 회장의 장남으로 허창수 회장의 사촌동생인 허용수 상무는 2007년 승산에서 GS홀딩스 사업지원담당 상무로 옮겨왔다. 허 상무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인수팀의 주축 역할을 맡아 활동영역이 커지면서 그룹 경영의 큰 축으로 성장했다.
GS그룹 출범 직후인 2005년 말 당시 허용수 상무의 GS홀딩스 지분율은 2.81%(보통주 기준)였다. 그러나 2008년 12월 현재 허 상무의 지분율은 4.10%로 허창수 회장(4.86%)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지주사 2대 주주가 된 허 상무의 보유 지분과 부친 허완구 회장의 2.48%를 합하면 6.58%. 이는 허창수 회장과 허 회장 장녀 허윤영 씨(0.31%), 장남 허윤홍 GS건설 과장(0.51%) 지분율을 다 합한 것보다 앞선다.
재계 관계자들은 “지난해 GS가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성공했더라면 GS 내 승산가의 위세가 더 커졌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허용수 상무가 GS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선봉에 서면서 재계에선 GS 총수일가 역할분담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내다봤다. 허 회장의 동생들이 각 계열사 경영을 주관하고 있는 것처럼 대우조선해양 사정에 밝은 허용수 상무가 인수 후 경영을 책임질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허창수 회장은 인천정유 하이마트 대한통운 등 대형매물 인수전에 연이어 발을 들여놓고도 경쟁자들이 실탄을 쏘아댈 때 소극적으로 대처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을 앞두고는 인수가격 견해 차이로 포스코와의 연합이 결렬됐다. GS가 포스코에 비해 1조 원 이상 모자란 인수금액을 제시한 것이 컨소시엄 결렬 배경으로 알려져 ‘허 회장의 통 큰 결정이 아쉽다’는 뒷말을 낳기도 했다. 허창수 회장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한 미온적 태도가 허완구 회장을 언짢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전화위복이 됐다는 건 그 뒤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일어난 승산가의 GS홀딩스 지분 변동을 눈여겨볼 만하다. 그룹 출범 당시만 해도 4%를 넘어가던 허완구 회장의 GS홀딩스 지분율은 현재 2%대로 떨어진 반면 장남 허용수 상무와 장녀 허인영 씨(1.42%), 허 상무 부인 정혜신 씨(0.06%), 그리고 아들 허석홍 군(0.82%) 등의 지분이 늘어났다. 특히 지난해 허완구 회장 지분 감소량과 자녀들의 지분 증가량이 일치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 허승조 부회장, 허동수 회장 | ||
승산가의 GS홀딩스 지분 변동이 활발해진 것은 지난해 7월 이후부터다. 그런데 동일한 시점에 고 허만정 씨의 8남이자 역시 허창수 회장의 숙부가 되는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 일가의 지분변동 내역이 승산가와 같은 패턴을 보여 관심을 끈다. 지난해 하반기 동안 허승조 부회장의 GS홀딩스 지분율이 2.64%에서 2.26%로 0.38%포인트(35만 4520주) 줄어든 반면 허승조 부회장 딸인 허지안 씨와 허민경 씨의 보유주식이 각각 18만 2840주, 17만 1680주 씩 늘어났다. 허승조 부회장의 지분 감소량과 두 딸의 지분 증가량이 일치한다.
허승조 부회장 딸들의 지분율은 각각 0.24%, 0.22%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지분율을 늘려줌으로써 허창수 회장 자녀들과 지주사 지분구조에서 엇비슷한 위치에 올려놓으려는 의도로 풀이되기도 한다. 허창수 회장 자녀들이 2005년 중순 이후로 GS홀딩스 주식을 단 1주도 추가매입하지 못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일각에선 GS그룹 내에서 일정 지분을 확보해놓은 허창수 회장의 ‘삼촌들’이 조만간 독자세력화를 위한 시동을 거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대형 매물 인수전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신 뒤 그룹의 신 성장동력으로 기대를 모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마저 무산되면서 허창수 회장의 리더십에 균열이 생겼다는 지적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허 회장 삼촌들 사이에 분가에 대한 장기적 검토가 이뤄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계열분리설과 관련해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아온 인사는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다. 고 허만정 씨 장남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회장의 차남인 허동수 회장의 그룹 내 영향력은 허창수 회장에 필적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GS칼텍스는 GS그룹 자산의 절반이 훨씬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핵심 계열사다. 재계에선 GS그룹을 ‘허창수-허동수 쌍두마차 체제’로 곧잘 묘사해왔다.
지난 2006년 12월 허동수 회장 장남 허세홍 씨가 GS칼텍스 상무로 영입되면서 GS칼텍스 차기 경영권이 허세홍 상무에게 돌아갈 가능성도 거론됐다. 2005년 말 당시 0.83%였던 허세홍 상무의 GS홀딩스 지분율은 현재 1.32%에 이르러 허창수 회장 자녀들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허창수 회장이라는 그룹 총수가 있는 상태에서 허동수-허세홍 부자에 대한 경영권 승계 전망은 분가를 염두에 둔 관측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그룹 내 여러 파벌의 독자세력화나 계열분리 가능성에 대해 GS 측은 ‘근거 없다’고 일축해왔다. 그러나 GS가 LG로부터의 분가를 통해 탄생한 데다 허창수 회장 오너십의 한계가 지적받다보니 이 같은 관측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2005년 그룹 창립 당시 ‘공격적 투자로 재계 5위권 진입’을 선언했던 허창수 회장의 우선적 과제는 5대 재벌 진입에 앞서 ‘집안 다독거리기’일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