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와 SK는 5월 6일 전격 ‘2대 2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양팀은 보도자료를 통해 ‘KIA 타자 김상현과 좌완 불펜요원 진해수가 SK로 가고, SK 우완 투수 송은범과 사이드암 신승현이 KIA로 간다’고 발표했다. 야구전문가들은 “양팀의 취약점을 보강하는 ‘윈-윈(Win-Win) 트레이드’가 될 것 같다”고 호의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송은범, 김상현 두 스타 선수가 트레이드 대상자가 된 것을 두고 무척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KIA와 SK의 트레이드가 발표됐을 때 야구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두 팀이 트레이드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는 예상했으나, 카드가 김상현과 송은범일진 몰랐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김상현은 KIA의 주포, 송은범은 SK 마운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KIA 선동열 감독과 SK 이만수 감독은 두 선수를 희생하지 않으면 팀의 단점을 보강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결국 두 선수를 트레이드하기로 결정했다.
과연 두 선수는 자신들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했을까. ‘전혀 아니었다’가 정답이다. 먼저 김상현이다. 기자는 트레이드가 이뤄지기 사흘 전 잠실구장에서 두산전을 준비 중이던 김상현을 만났다.
당시 김상현은 전날 2안타를 치며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김상현은 “최근 아팠던 무릎상태가 호전됐다”며 “전체적인 컨디션도 좋아 2009년까진 아니어도 몇 년 사이 가장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놀라운 변화였다. 지난해까지 김상현은 은퇴를 생각할 만큼 몸이 좋지 않았다. 고질적인 무릎부상이 발목을 잡았고, 손바닥 골절까지 당했다. 특히나 잦은 부상으로 러닝을 비롯한 하체 훈련을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해 특유의 파워스윙을 선보이지 못했다. 당연한 이유로 지난해 그의 타구 비거리는 눈에 띄게 줄었다.
그즈음 김상현은 기자를 볼 때마다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딱 한 번만이라도 임팩트 있는 시즌을 보냈으면 좋겠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 ‘제2의 김봉연’이 기대됐던 김상현
SK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김상현. 사진제공=SK 와이번스
2002년 그는 프로 데뷔 1년 후 LG로 이적했다. ‘발전 가능성은 풍부하지만, 성공 가능성이 작다’는 게 해태가 김상현을 LG로 보낸 이유였다.
김상현은 트레이드 당시를 떠올리며 “해태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을 받았다”며 “그 충격에서 헤어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털어놨다. 시간이 흐르고, 충격에서 벗어난 김상현은 가능성을 꽃피우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LG에서도 김상현의 파워에 주목하며 조만간 대형 내야수로 성장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의 성적은 2008년까지 통산 398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4푼5리, 33홈런, 132타점에 그쳤다.
김상현은 2009년 4월 중순 친정팀 KIA로 다시 트레이드됐다. 하지만, 첫 번째 트레이드가 ‘버림’이었다면 두 번째 트레이드는 ‘구원’이었다. 김상현은 그 해 드라마 같은 반전의 주인공이 됐다. 시쳇말로 ‘쳤다 하면 홈런’이었고, ‘주자만 있다 하면 타점’이었다.
결국 김상현은 타율 3할1푼5리, 36홈런, 127타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내며 정규 시즌 MVP에 올랐다.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끈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김상현은 이 해 성공의 비결을 ‘절박함’으로 표현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김상현은 KIA에서도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야구계를 떠나 당구장을 운영할 참이었다. 갑상선암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밥벌이를 해야 했다.
# ‘미래 SK 에이스’ 기대가 실망으로…
KIA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송은범.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당시 SK도 “최고구속 146㎞의 속구와 슬라이더, 슬러브를 주무기로 삼는 우완 정통파 투수”라고 송은범을 소개하고서 “미래 SK 마운드의 에이스가 될 선수”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송은범은 데뷔 첫 시즌에 평균자책 6점대를 기록하더니 2008년까지 통산 27승을 거두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나마 2008년 반짝 활약하긴 했지만, 8승 6패 평균자책 3.77로 SK 에이스로 성장했다고 보기엔 다소 부족한 성적이었다.
그런 그에게 “야구인생을 이런 식으로 살다간 크게 후회할 것”이라며 분발을 촉구했던 이가 바로 김성근 전 SK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타고난 능력은 뛰어나나 노력과 열정은 떨어지는 송은범에게 왜 야구를 해야 하고, 왜 잘해야 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주입했다. 기술적으로도 투구의 완급조절과 커브를 가르치며 한 단계 더 나은 투수가 되도록 독려했다. 덕분에 송은범은 2009년 12승 3패 평균자책 3.13를 기록하며 데뷔 이래 처음으로 10승 투수 반열에 올랐다.
당시 송은범은 “투구는 무엇을 던지느냐는 것보단 왜 던져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며 “과거엔 ‘풍류 은범’ 소릴 들었지만, 이젠 ‘에이스 은범’이란 찬사를 듣고 싶다”고 환하게 웃었다.
잘나가던 김상현과 송은범은 그러나 2009년을 기점으로 다시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둘의 발목을 잡은 건 부상이었다. 김상현은 무릎, 송은범은 팔꿈치가 아파 지난 3년간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최근 들어선 두 선수 모두 코칭스태프와의 불화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야구계는 이번 트레이드가 두 선수의 분발을 유도하는 자극제가 되길 바라는 눈치다. 과연 어느 선수가 다시 성공의 기회를 잡을지 야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넌 이제 우리팀” 사전통보 화근
SK 트레이드 파트너는 KIA가 아니라 원래 한화였다. 따지고 보면 두 팀은 시즌 전부터 트레이드 논의를 펼쳤다.
양팀의 사정을 잘 아는 모 야구인은 “시즌 전 김응룡 감독이 ‘포수진 수혈이 시급하다’는 뜻을 밝히자 한화 코칭스태프가 SK 쪽에 박경완 트레이드를 타진한 적이 있다”며 “그러나 SK 쪽에서 ‘박경완은 어렵다’는 답변을 내놓아 트레이드가 무산된 바 있다”고 밝혔다.
복수의 소식통에 의하면 양팀은 4월 말에도 만나 트레이드 논의를 펼쳤다. 이때는 SK쪽에서도 적극적이었다. 첫 번째 만남에서 한화는 ‘포수, 외야수가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SK는 ‘우타 거포를 원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양팀의 실무 관계자는 여러 카드를 맞추며 의견을 조정했다. 시간이 흘러 서로의 카드가 맞춰졌고, 두 팀은 트레이드 발표를 눈앞에 두게 됐다.
이때 갑자기 변수가 발생했다. 발표 전, 이미 트레이드 소식이 야구계에 퍼져버린 것이었다. 알고 보니 두 구단 가운데 한 구단 관계자가 트레이드 대상 선수에게 전화해 “너는 이제부터 우리 팀 선수다”라고 통보한 게 화근이었다.
이 선수는 자신의 트레이드가 사실인지를 소속구단 관계자에게 물었고, 이 과정에서 트레이드 진행 사실이 외부에 알려졌다는 후문이다.
양팀은 결국 파문을 수습하는 차원에서 “없던 일로 하자”며 트레이드 논의를 덮어버렸다. 모 구단 운영팀장은 “만약 갑작스런 변수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송은범은 지금쯤 한화 유니폼을 입었을지도 모른다”며 “그랬다면 한화는 그토록 바라던 수준급 선발요원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SUN “김 줄게, 송 달라”
# 누가 먼저 트레이드를 요구했나
SK 민경삼 단장은 트레이드 발표 직후 “우연한 기회에 트레이드 논의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구단 실무자들 사이에서 처음 이야기가 나왔다. 양팀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이냐는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 (트레이드) 카드를 맞춰본 것 같다. 그러다 저쪽(KIA)에서 먼저 ‘송은범을 달라’고 했고, 우리쪽(SK)에선 ‘김상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선 진해수와 신승현 카드가 자연스럽게 맞춰졌다. 양팀이 고심 끝에 카드를 맞춘 이후, 이야기가 급진전되면서 5일 저녁 최종 합의했고, 6일 발표에 이르렀다.”
KIA 김조호 단장도 “SK와 트레이드 이야기를 나눈 건 며칠 되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양팀 관계자가 만나 트레이드 필요성을 이야기하다가 ‘우리끼리 한 번 해보자’하는 식으로 급진전됐고, 결국 발표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취재 결과 민 단장의 표현처럼 ‘어느 팀이랄 것도 없이’ 양팀 프런트는 일찌감치 트레이드를 구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트레이드 파트너가 어쩌다보니 KIA, SK가 된 것뿐이지 어느 팀의 요구에 어느 팀이 따랐다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 KIA는 왜 송은범을 선택했나
이번 트레이드의 진행은 양팀 프런트가 담당했지만, 요청은 양팀 감독들로부터 나왔다. 먼저 KIA 선동열 감독이다. 선 감독은 팀이 상위권을 달리지만, 불펜 불안을 해소하지 않으면 선두권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여러 루트를 통해 다른 팀 불펜요원들을 살펴봤고, 그 가운데 송은범을 탐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KIA 모 코치는 “송은범은 선발, 중간, 마무리까지 맡을 수 있는 전천후 투수”라며 “감독님께선 만약 우리 팀 불펜진에 송은범이 합류하면 경기 후반 2이닝까지 책임질 수 있는 특급 셋업맨, 선발투수 가운데 결원이 생겼을 땐 선발로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선 감독은 SK 이만수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송은범을 줄 수 있겠느냐”는 의사를 몇 번이고 타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처음에 이 감독은 정중히 거절했지만 김상현 카드가 나오면서 트레이드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 SK는 왜 김상현을 선택했나
이만수 감독과 김상현. 사진제공=SK 와이번스
특히나 ‘우타 거포’ 수혈이 절실했다. 그도 그럴 게 올 시즌 SK엔 믿을만한 우타자가 최정밖에 없었다. 트레이드 전까지 최정을 제외하면 타율 2할6푼을 넘거나 홈런 3개 이상을 기록한 우타자도 없었다. 한동민, 이명기 등 젊고 유망한 타자들이 기존 주전들의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이들은 죄다 좌타자들.
SK 민경삼 단장은 “큰 기대를 걸었던 ‘좌투수 킬러’ 이재원의 복귀가 늦어지고, 기존 타자들의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팀 타선 약화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진단을 내렸다”며 “현장과 상의 끝에 우타 장타자 확보를 위해 트레이드에 나서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선 감독이 송은범을 점찍어둔 것처럼, 이 감독도 김상현을 눈여겨봤다. 결국 SK 프런트로부터 “KIA와의 트레이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자 이 감독은 “김상현이면 좋을 것 같다”는 뜻을 밝혔다.
# 진해수, 신승현 카드는 어떻게 나왔나
SK 사이드암 신승현이 KIA 유니폼을 입은 건 장기적인 포석이었다. KIA 측은 “우리 팀 사이드암 유동훈이 잘 던지고 있지만, 그의 노후화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또 다른 사이드암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그 카드가 신승현이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올 시즌 KIA 불펜진에서 유일한 좌완 구원투수로 뛰었던 진해수가 KIA로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SK 관계자는 “KIA가 처음엔 진해수 카드에 난색을 표했지만 우리 쪽에서 ‘진해수 카드가 성립하지 않으면 송은범도 내줄 수 없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자 KIA 측이 고심 끝에 양보를 해줬다”고 귀띔했다.
좌완 마무리 정우람의 입대로 SK 불펜진에 좌완 구원투수가 태부족한 상황이다. 가뜩이나 좌완 특급셋업맨 박희수마저 시즌 초 부상에 시달리며 좌완 부족은 더 심해졌다. SK는 진해수 획득으로 좌완 불펜진이 확실하게 보강되길 바라는 눈치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