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한창 진행중인 여권 신당에 관해 “얼굴 없는 사람들이 움직인다”며 배후 의혹을 제기해 정치권에 파장이 일고 있다. | ||
그동안 신당문제와 관련해 이른바 ‘노심’(盧心)과 ‘그랜드 디자인’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야당 대표가 ‘배후’를 거론한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는 정치권의 분석이다. 특히 최 대표와 핵심 측근들이 구체적인 정황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어 향후 여야간에 ‘신당 배후’를 둘러싼 논쟁이 내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핫 이슈’로 떠오를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최 대표는 지난 2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경기지역 의원·지구당위원장 워크숍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의 신당 개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최 대표는 “지금 노 대통령은 민주당이 (신당 문제로) 싸우는 것과는 별개로, 공직자와 교수·변호사 등 후보로 나올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은 지구당에 배치하고 있고, (우리는) 그 명단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신당 징발설’이 나돌고 있는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예로 들며 “김 부총리에게 ‘수원에서 총선에 나가라’는 압력이 가해지면서 ‘못 나간다’ ‘안 나간다’는 논란이 벌어졌고, 결국 최근에는 나가는 쪽으로 정리가 된 것으로 안다. 이런 류의 압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민주당 신주류가 아니라 ‘얼굴 없는 사람들’로 민주당과 다른 조직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5일 이른바 ‘노무현 신당’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얼굴 없는 사람들’에 대한 공세의 강도를 높였다. 그는 현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 부총리의 사례를 다시 거론하며 “여러분들 중에 김 부총리와 가까운 사람 있으면 물어보라. 왜 수원에 출마하는가. 누가 권유했는지. 민주당에 내가 물어봤는데 아무도 교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권유한 사람이) 누구인가. 노 대통령에게 어제(4일) 김 부총리 출마를 물어보니까 직접 대답을 하지 않더라”라며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했다.
최 대표는 또 “만약 ‘얼굴 없는 사람들’의 신당이 앞으로 ‘노무현 신당’으로 드러나면, 노 대통령은 그동안 ‘신당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한 자신의 발언이 조직적·구조적인 거짓말임이 밝혀지게 되는 만큼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 최 대표 주변에서 신당과 관련한 ‘비공개 라인’ 의혹을 제기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최 대표측은 무엇보다 신당 추진과정에 청와대 386 참모 등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꼽고 있다.
한 핵심 측근은 “‘노무현 신당’은 이제까지의 정당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노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노사모’식의 열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당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민주당 내 신주류 중에는 이처럼 새로운 방식의 창당 모델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자연 신당의 뼈대는 386 참모그룹들과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 내정자 등 핵심측근들이 주도해서 만들 수밖에 없고 구체적인 출마자 발굴도 이들이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 신당 배후설’에 대해 노 대통령 측근들은 “터무 니없다”고 맞받았다. 사진은 방송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최 대표측은 또 최근 영남권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여권 신당으로 출마 내락을 받았다’며 선거에 뛰어들려는 인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보고가 계속 올라와 중앙당 차원에서 사실 관계를 확인중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하순 단행된 청와대 정무수석실 개편 내용도 최 대표측에서 ‘신당 배후’와 관련해 의혹을 제기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 내에서 인터넷을 통한 우호적 여론 조성에 핵심역할을 했던 천호선씨가 국민참여수석실 참여기획비서관에서 정무기획비서관으로 옮긴 것에 대해서는 “온라인을 통해 ‘제2의 노사모 돌풍’으로 신당을 띄우고 네티즌을 앞세워 야당 후보들에 대한 흠집내기를 강화하려는 것”이라는 것이 최 대표 주변의 시각.
또 정무1, 정무2 비서관에 386세대로 역시 노 대통령의 측근인 서갑원·김현미씨를 배치한 것도 이들을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등 핵심 386 실세들과 네트워크화해 신당작업을 주도해 나가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최 대표의 또 다른 측근은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이 정국 관련 여론조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하면서 지역별로 경쟁력 있는 총선 후보들을 발굴하는 작업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노무현 마니아’ 조직들과 청와대 386 참모들이 계속 밀접한 연계를 맺고 있으며 이들을 앞세워 내년 총선에서 지난 16대 총선 때 낙천·낙선 운동과 비슷한 유형의 캠페인도 기획중인 것으로 전해듣고 있다.
최 대표가 말한 ‘얼굴 없는 사람들’이란 인물 발굴과 총선전략 수립을 주도하고 있는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그룹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 대표측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목된 당사자들은 “3류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얘기”라며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 이강철 정무특보 내정자는 “명색이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라는 내가 민주당 신당 창당주비위에 참여하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손’이 어디 있다는 얘기냐. 만약 내가 ‘보이지 않는 손’에 해당된다면 내가 무슨 ‘유령 인간’이라도 된다는 말이냐”고 발끈했다.
이 내정자는 또 “신당과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곤란하게 되는 사람이 (신당 창당에) 개입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일고의 가치도 없는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정무수석실의 한 비서관도 “‘얼굴 없는 사람들’과 ‘보이지 않는 손’이 누구인지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으니 최 대표에게 한번 물어보라”며 “정무수석실 개편은 청와대와 국회, 여야 관계를 시대변화에 맞게 새롭게 만들어가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에 따른 것이지 어떤 ‘음모론’에 기반해 이뤄진 것이 전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 신주류 핵심인사들도 신당 주도세력을 둘러싼 최 대표의 주장에 “구시대 정치의 전형”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신당파의 ‘기획실장’격인 이해찬 의원은 “보이지 않는 배후가 있다고 보는 (최 대표의) 시각 자체가 구시대 정치의 표상이다. 나를 비롯한 신당주비위 참여 의원들 전원은 옛날과 달리 자신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신당추진에 참여하고 있다. (최 대표 발언처럼) 그렇게 음해하고 모함하는 것이 바로 구시대 정치가 얼마나 한나라당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새로운 정치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신주류 강경파 핵심 의원도 신당 창당방식을 “위에서 비밀리에 조직책을 선정해 내려보내는 5공식 신당 창당 수법과 똑같다”고 한 최 대표의 발언에 대해 “5공 출신인 최 대표 입장에서 모든 것이 5공식으로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니냐. 그러나 지역주의 타파와 정치개혁을 위해 만들려는 신당에 ‘5공식 수법’ 운운하는 것은, 한마디로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라고 비아냥댔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