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김조광수 감독이 19세 연하의 김승환 씨와의 동성 결혼 발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방송인 홍석천과 영화 <후회하지 않아> 등을 만든 이송희일 감독이 커밍아웃을 통해 성소수자란 사실을 알린 적은 있지만 유명인이 동성결혼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건 김조광수 감독이 처음이다. 성소수자의 결혼을 바라보는 세상의 ‘꼬인’ 시선에 일침을 가한 그는 “동성결혼 합법화 운동을 벌이겠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할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김조광수 감독은 충무로에서 실력 있는 영화 기획, 제작자로 꼽힌다. 영화사 ‘청년필름’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2001년 영화 <와니와 준하>를 시작으로 <올드미스 다이어리> <의뢰인>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등 흥행 영화를 잇달아 내놓은 중견 제작자이다. 그 역시 <친구사이?>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등의 퀴어영화(동성애를 그린 작품)를 만든 감각 있는 연출자이기도 하다.
영화를 통해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해온 만큼 그는 자신의 결혼을 단순한 예식이 아닌 하나의 축제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결혼식을 출발로 성소수자를 위한 문화운동을 벌일 뜻도 밝혔다. 여전히 견고하게 쌓인 편견을 정면으로 바라보겠다는 게 그의 생각. 동성결혼을 불법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도 바꾸고 싶다고 했다.
김조광수 감독은 자신이 택한 동성결혼을 알리기 위해 15일 서울 사당동 예술극장인 아트나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그와 결혼하는 김승환 씨도 참석했다. 두 사람은 앞으로 자신들 앞에 펼쳐질 예상할 수 없는 일들에 맞서겠다는 강한 뜻과 함께 비슷한 입장의 성소수자들의 권익을 위한 사회 운동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취재 열기는 뜨거웠고, 둘의 의지는 더 뜨거워 보였다.
기자회견에서 김조광수 감독은 “남들처럼 당연히 혼인신고를 할 생각이지만 만약 반려된다면 그걸 근거로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또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싸움도 벌이겠다.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입법화하는 과정을 거칠 생각이고, 국민에게 의견을 묻는 과정도 갖겠다”고도 했다.
김조광수 감독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발견한 때는 중학생인 15세 때다. 혼란스러웠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고 그는 돌이켰다. “열다섯 살에 게이라는 걸 깨달았고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15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고 했다. “서른 살이 되어서야 게이란 사실에 행복한 마음을 느꼈다”고도 했다.
“왜 그토록 오래 그 사실을 긍정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게이란 사실을 알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 역시 괴로운 사춘기를 보냈다. 하지만 다음 세대의 성소수자들은 단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자신을 부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그들을 힘든 상황으로 내모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싶다. 이런 결심을 하고 꼭 19년 만에 사람들 앞에 나서서 행복하게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 기쁘다.”
김조광수 감독은 몇 년 전 아버지를 여의었다. 병상에서 오래 투병한 그의 부친은 아들의 상황을 알았고, 적극적이지 않지만 지지를 했다. 임종 전에는 아들의 결혼에 대해서도 승낙의 뜻을 밝혔다고 한다. 이런 과정 속에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씨는 지난해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 개봉한 직후 양가 부모의 허락과 동의를 구해 마침내 결혼에 이르게 됐다.
동성결혼을 선언한 두 사람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겠다”고 기쁨을 만끽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여러 편견을 헤쳐나가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물론 피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앞장서서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권익이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은 게 둘의 마음이다.
김승환 씨는 “한 개인이 나이와 성별 또는 국적을 떠나 어떤 성적지향성을 갖고 성인이 돼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하는 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이런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공개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결혼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내건 플래카드에는 ‘다양한 결혼식, 당연한 결혼식’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김조광수 감독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를 존중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들은 세상의 편견에 맞서, 어렵지만 의미 있는 첫 걸음을 뗐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
축의금 모아 LGBT센터 세울 것
9월 7일 열리는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씨의 결혼식은 공연과 전시 등이 한데 어우러진 축제 형식으로 치러진다. 이를 위해 “아주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넓은 장소”를 찾고 있다. 하객 10만 명이 목표치다. 축의금도 적극적으로 걷을 생각이다. 이유가 있다. 축의금을 모아 성소수자를 위한 무지개(LGBT)를 짓는 게 이들의 목표다. LGBT센터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단어의 앞 글자를 딴 이름이다. 미국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에는 모두 LGBT센터가 있다. 다양하게 소통하고 편견에 맞서기 위한 활동을 주도하는 공동체인 셈이다.
김조광수 감독은 “우리는 뉴욕 LGBT센터를 모델로 삼고 있다”며 “그곳은 시의원을 배출하면서 뉴욕 정치를 변화시키는 움직임이 시작된 곳이다”고 했다. 한국사회 인권운동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센터가 되기를 이들은 바라고 있다.
물론 동성결혼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일부 기독교계에서는 김조광수 감독의 결혼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성경의 해석 차이에서 나타나는 오해라는 입장.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마치 성경에서 동성애를 금하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다르게 해석하는 견해가 있고 또한 몇몇 종파에서는 동성애자 주교와 신부도 있다. 바로잡고 싶다”고 밝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