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57년 부처님 오신 날(5월 17일)을 맞아 삼광사 대웅보전 앞에서 열린 ‘다문화・다종교 평화와 행복’ 기원 봉축대법요식에서 무원 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17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미국 CNN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곳 50선'에 선정된 부산 삼광사(대한불교 천태종)에는 4만여 개의 연등이 내걸렸다. 연등축제를 맞아 삼광사를 찾은 신도들은 합장하며 가족의 평안과 나라의 안녕을 빌었다.
주지 무원 스님은 일찍부터 종교가 갈등이 아니라 화합을 이끌어야 한다며 다문화 가정을 돕는 일에 앞장서 왔다. 변화의 바람은 불교 도시, 부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주지 스님은 다문화 활동가
다문화 가정 지원과 남북 교류사업을 벌여 온 무원(務元) 스님이 천태종의 대표 사찰 중 하나인 삼광사의 11대 주지로 올해 초 취임했다. 삼광사의 신도는 36만여 명에 달해 단일 사찰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무원 스님은 총무원 사회부장, 총무부장, 총무원장 직무대행을 지냈고 생명나눔실천본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한국다문화센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불교의 사회복지와 대중문화 운동에 앞장서 온 '남다른 스님'으로 유명하다.
“종교인으로서 시민의 마음과 육체의 아픔을 어떻게 치유할지 고민입니다. 다문화 가정과 부산시민이 세계인으로 거듭나고 편견을 없애는 활동을 계속할 것입니다. 개방적인 도시인 부산이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는 포용적이지 못한 것 같아요. 앞으로 여러 종교인과 힘을 합쳐 불교 도시 부산에서 문화 간, 종교 간 화합을 이끌어 내겠습니다.”
봉축대법요식 행사 장면.
무원 스님의 다문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인천 황룡사 주지스님이던 2001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절이 공단 안에 있어 방글라데시 여성들이 소문을 듣고 부처님께 참배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참배와 공양 방법은 비슷한데 제례의식이 달랐다. 그들의 방식대로 맞춰주면서 다문화여성의 어려움을 알게 되고 그들의 입장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수 있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은 이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2009년에는 서울 명락사를 이름도 낯선 '다문화 사찰'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낯선 땅에서 결혼생활의 파경을 맞은 이주 여성들을 위해 절 인근의 고시촌 건물을 매입, 이주여성을 위한 쉼터 '다문화 빌리지'를 운영했다. 항상 따뜻한 밥과 반찬을 준비해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챙기고 아기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정을 보고 만등불사로 기금을 모아 병원비로 쥐어줬다.
덕분에 '다문화 활동가'란 영광스런 별칭도 얻었지만 혼자서 동분서주하기엔 국민들의 인식이나 국가의 지원이 매우 열악했다. 무원 스님이 다문화와 관련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결혼한 10쌍 중 1쌍은 다문화가정이고 그들도 국민입니다. 이방인 취급을 하거나 다문화 여성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선거나 생색을 위한 이벤트는 지양해야지요. 산속에서의 수행도 중요하지만 소외된 이들과의 나눔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불공(佛供)이 아닐까 합니다. 글로벌 시대이니 아마 부처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을까요. 다문화 음식 축제를 연 것도, 문화와 종교를 떠나 시민 누구나 어우러지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음식만큼 쉽게 나눌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하는 데 좋은 게 또 있겠어요?”
무원 스님이 다문화 가정에 힐링쌀 전달식을 하고 있다.
단순히 의식주만 해결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만나고 교류하는 기회를 최대한 만들어야 한다. 삼광사로 부임할 땐 다문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서울의 다문화 가족들이 한국 전통 민화를 배워 직접 그린 민화로 '전통의 세계화… 민화의 재발견'이라는 전시를 경내에서 열기도 했다. 전시 기간에는 한복입기와 차례상 차리기 등 결혼 이민자들이 한국 예절과 전통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이주여성들이 자국 음식을 널리 알리는 것을 돕는 세계음식축제도 마련했다. 또한 다문화 가정 어린이로 구성된 합창단을 만들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긍심을 갖도록 했다.
문화를 넘어 종교 간 화합 꿈꿔
갈등을 넘어 화합으로 가기 위해 다문화 가정도 세계인으로 품고, 그보다 먼저 모든 종교인이 화합해야 한다는 것이 무원 스님의 화두다. 삼광사는 불기 2557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은 5월 17일, 대웅보전 앞에서 “다문화・다종교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는 봉축대법요식을 열었다.
법요식에는 이웃종교 성직자들은 물론, 부산광역시 김종해 행정부시장, 김석조 시의장, 나성린 국회의원 등 수많은 불자들이 관불을 함께 하며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했다. “부처님 오신 날, 무명의 중생들이 불성을 드러내어 각자 자신의 마음 생일날이 되도록 정진합시다. 마음에는 부처와 중생, 모두가 차별이 없다는 부처님 말씀처럼 남녀노소, 인종, 종교, 문화의 편견, 갈등에서 벗어나 다름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분별을 없애고, 다문화 다인종 다종교인들이 각자의 방편으로 열반을 증득하여 '사사무애법계'의 세상을 깨달아 가야 합니다.”
무원 스님의 봉축에 이어 원불교 정숙현 부산울산교구장과 천도교 박차귀 선도사가 다종교 평화메시지를 전했다. “삼광사에 수놓은 아름다운 연등이 나 자신을 밝히는 자성의 등불이 되고, 가정과 사회를 밝히는 도덕의 등불이 되며, 온 세상을 따뜻하게 비추는 온기의 등불이 되어, 세상에는 희망과 평화를 안겨주고 마음에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낙원세계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정숙현 부산울산교구장)
다문화 다종교 평화 행복 기원 행사에 참여한 종교 인사와 다문화 가족.
이날 다문화 어린이로 구성된 ‘레인보우’ 합창단의 특별 축가 공연과 다문화 다종교 평화 행복 기원 풍선 날리기도 펼쳐져 그 의미가 더해졌다. 부처님 오신 날 경내에서는 아트풍선, 연꽃 만들기, 염주꿰기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함께 경내로 들어오는 길은 차 없는 거리로 탈바꿈해 시골장터가 생겨나는 등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16일과 17일 양 일간 50여만 명의 참배객이 삼광사를 다녀갔다고 한다.
무원 스님이 꿈꾸는 힐링 도량은 삼광사에서도 지속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무원 스님은 더불어 함께 하는 세상, 종교가 분쟁이나 갈등의 씨앗이 되지 않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한 집안에서도 종교가 다른 가족 구성원이 있듯이 이제 서로 종교를 인정하고 종교 때문에 다투는 일이 없어져야 합니다. 다종교인들이 함께 해야 할 일이 많지만 특히 다문화 가정을 세계인으로 품는 일부터 추진해야지요.”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