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부터 박연차 회장에게 유력인사들을 소개 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천신일 회장. | ||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을 주시하고 있다.”
지난 2월 중순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가 내뱉은 말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천 회장이 올 초부터 몇몇 구설에 오르내렸고 ‘박연차 리스트’에도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일자 청와대에서 자체적으로 꾸준히 확인 작업을 해왔
다고 한다. 또한 천 회장에게 ‘말조심’을 당부했다고도 한다.
그러던 중 일부 언론과 야당 등에서 천 회장에 대한 구체적인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지난해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이 세무조사를 받게 되자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과 대책회의를 한 사실이 알려졌다. 또한 박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조사받은 박진 의원도 “지난해 3월 천 회장 소개로 박 회장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이에 대해 박 회장과 박 의원의 대질심문을 통해 확인한 결과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는 전언이다. 박 회장 입만 바라보며 전전긍긍하던 민주당이 ‘한번 붙어보자’며 강경모드로 돌아선 것도 천 회장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란 관측도 나온다.
사실 정치권과 재계에서 박 회장과 천 회장은 오래전부터 친분을 쌓아온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천 회장은 동향 후배인 박 회장에게 사업적인 조언을 해주며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박 회장은 천 회장이 회장직을 맡고 있는 레슬링협회 부회장이고 천 회장은 박 회장이 인수한 휴켐스의 사외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지난 2006년에는 박 회장 소유의 정산개발이 세중나모 계열사인 세중게임박스(현 세중아이앤씨) 지분 2.09%를 사들이기도 했다(<일요신문> 880호 보도).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회장은 정권 출범 직후부터 천 회장을 통해 여권 및 청와대 인사들과 여러 차례 만나 친분을 다져왔다고 한다. 특히 박 회장은 지난해 태광실업이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고 자신도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여당 실세로 통하는 한 의원을 천 회장으로부터 소개받고 ‘조사 무마’를 청탁했다고 한다. 검찰은 세무조사가 예정대로 진행돼 이 로비는 실패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혹시 수상한 돈거래가 있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검찰은 지난 연말 박 회장과 여권 핵심인사가 한 차례 만난 것을 확인하고 둘의 관계에 대해 박 회장을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는 별도로 검찰은 그동안 천 회장을 향해 제기됐던 여러 의혹들에 대해서도 확인 중이라고 한다. 여기엔 ‘지난 2007년 대선 직전 천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빌려준 특별당비 30억 원 중 일부가 박 회장 돈’이라는 의혹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은 국세청으로부터 박 회장 계좌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전달받아 이러한 것들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요신문>은 이런 의혹들에 대해 천 회장의 설명을 듣고자 여러 차례 회사 측에 문의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 천 회장은 그동안 언론 등을 통해 의혹을 부인해왔다.
사실 검찰에서도 천 회장에 대한 수사 확대를 놓고 깊은 고민을 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대통령의 친구이자 대선승리의 공신인 천 회장에 대한 수사가 자칫 현 정권에 부담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 측에서 ‘지금 (수사)하지 않으면 나중에 박 회장처럼 더 크게 당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검찰에 전달한 이후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고 한다. 검찰과 정치권 일각에서 이번 수사를 두고 ‘현 정권이 천 회장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