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30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지하벙커에 설치된 국가위기상황센터와 비상경제상황실을 찾았다. 이 대통령 뒤에 앉아 있는 윤진식 경제수석의 모습이 긴장된 표정의 다른 인사들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1·19 인사에서 ‘나 홀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감사원으로부터 우리금융지주 회장 재직시 컨설팅 용역업체 부당 선정 의혹을 지적받은 박병원 전 수석의 뒤를 이은 것. 그는 오자마자 박 전 수석 대신 ‘3월 위기설’과 맞서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당일부터 경제금융대책회의에 참석해야 할 정도였다.
윤 수석이 청와대 입성을 권유 받은 것은 지난해 말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수석에 대한 감사원 내사가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이 지난 1월 중순인 것을 감안하면 윤 수석이 박 전 수석의 낙마로 인한 대타로 청와대에 입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윤 수석의 청와대 입성은 깜짝 발표였을 뿐이지 물밑에선 이미 윤 수석의 청와대 입성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얘기다.당초 윤 수석은 청와대 입성을 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수석은 이미 장관까지 역임해 차관급인 수석 자리에 욕심이 날 이유가 없었다는 것. 게다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청와대에서 조세금융비서관으로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청와대 경제수석 자리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으로 나름대로 만족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어 굳이 청와대 입성을 달가워할 이유도 없었다.이명박 대통령이 ‘삼고초려’로 모셔왔기 때문일까. 윤 수석의 행보에는 강한 자신감이 묻어난다. 윤 수석의 숨겨진 자신감이 표출된 것은 이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였다.이 대통령은 올 들어 해외에 세 번이나 나갔다.
지난 3월 2일부터 8일까지 6박 7일 동안 뉴질랜드와 호주, 인도네시아를 다녀왔으며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4일까지 3박 5일간 영국 런던을, 지난 10일과 11일 양일간 태국을 각각 방문했었다. 이때 윤 수석은 한 번도 대통령을 수행하지 않았다. 이례적인 일이다. 그 표면적인 이유는 각각 다르다. 우선 올 들어 첫 해외 나들이인 뉴질랜드 등지 순방은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윤 수석이 동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막판 윤 수석이 국내에 남기로 했으며 임종룡 경제비서관이 대신 동행하게 된다.
당시 ‘3월 위기설’이 팽배해 있어 윤 수석이 국내에 남아 경제 상황을 챙기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 임 비서관을 대신 보냈다는 얘기가 나왔다.영국 런던 방문은 G20 금융정상회의가 대통령과 기획재정부 장관이 중심이 된 회의인 데다 사공일 G20 기획조정위원장이 주도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윤 수석이 굳이 갈 필요가 없었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설명이다.
태국도 다자 회의인 ‘제12차 아세안(ASEAN, 동남아국가연합)+3 정상회의’와 ‘제4차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윤 수석의 역할이 없었다는 것.이처럼 각기 다른 이유로 윤 수석은 한 번도 이 대통령과 함께 특별기를 타지 않았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태국 방문 때, 그것도 단 한 번 동행하지 않은 것을 놓고 온갖 억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대변인과 수석의 차이를 감안한다 해도 윤 수석의 ‘대통령과 따로 노는 행보’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이 대통령의 해외 순방 동안 윤 수석의 잇단 국내 잔류에 경제수석실 직원들이 오히려 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경제수석이 이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지 않은 사례가 있었는지 찾아보기까지 했단다.
그 결과 경제수석이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지 않은 사례가 극히 드물었다는 것. 그것도 3회 연속 동행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전임자인 박병원 전 수석의 경우 지난해 11월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 때 이 대통령을 수행했고 브라질과 페루도 함께 방문했다. 박 전 수석은 또 같은 해 12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도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었음에도 동행했다.
때문에 윤 수석이 이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세 번이나 수행하지 않은 데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윤 수석이 비행기를 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웬만해선 해외에 나가기를 꺼린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공직자가, 그것도 청와대 핵심 참모가 개인적으로 싫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을 안 한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에 청와대 안팎에선 윤 수석이 이 대통령에게‘Yes or No’(예, 아니오)를 분명히 말할 만큼 이 대통령과의 신뢰관계가 두텁기 때문에 경제수석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해외 순방에선 ‘열외’를 보장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에 남아 현안을 챙기는 것이 더 낫다면 애써 특별기를 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 수석의 이 같은 자신감과 파워는 그의 과거 행적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윤 수석은 충북 충주 출신으로 청주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이 대통령과 과 선후배 사이가 된다. 두 사람은 이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으로 일할 때부터 알고 지내 온 사이로 친분의 역사 또한 깊다.
또 윤 수석은 노무현 정부 초대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임명됐지만 제18대 대선에선 이 대통령의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과 한나라당 선대위 경제살리기특위 부위원장을 역임한 것은 물론 충북지역 인사 700여 명과 함께 ‘속리산경제포럼’을 창립, 이 대통령을 도왔다. 대선 이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고, 지난해 총선에선 한나라당의 권유로 충북 충주에 나가 낙선하기도 했다.
윤 수석 입장에선 이 대통령과의 인연을 떠나서 이명박 정부를 위해 할 만큼 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고액 연봉을 받는 대기업 회장직을 내던지고 전직 장관이 차관급으로 직급도 낮춰가며 청와대에 입성, ‘봉사’하고 있으니 굳이 이 대통령에게 ‘눈도장’을 찍을 일은 없는 셈이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