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과 여권에 대한 전주의 평가는 한마디로 “징글징글허구만”이었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 사진은 전주시내 객사길. | ||
전북 전주 초입에 위치한 호남제일문을 통과한 뒤 처음 접한 노무현 대통령과 현 여권에 대한 외마디 평가다. “지들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는데, 이 지랄들이여. 10년도 넘게 근근히 계속해 온 ‘새만금’을 이제와서 하네 마네 하더니만, 인자는 무신 방사선인가 방사능인가 ‘쓰레기’가 또 무신 말이여.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먹을 것은 못 줄망정 쓰레기가 뭐여, 쓰레기가.”
전주시내로 진입하는 택시 안에서 만난 50대 택시기사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역 여론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쓴소리를 연신 쏟아냈다. “김종규가 맞을 짓을 했지. 나라도 거기 있었으면 한 대 후려패줬을 거구만. 뭐, 부안을 사랑한다는 인간이 방사능 쓰레기 더미를 유치해. 그 자슥 제 정신이 아녀. 군수 출신 김두관이 장관 되니까 저도 어떻게 장관 한번 해볼라고 저 지랄을 하는 거랑께.”
김종규 부안군수가 전북 부안 위도에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유치를 선언한 뒤 연일 몸살을 앓고 있는 전라북도에서는 ‘방폐장’ 문제가 뜨거운 화두였다. 전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정아무개 교사(34)도 “왜 하필 청정지역에 방폐장이냐”며 “산업기반시설도 미미한 전라북도에 이 정부가 안길 선물이 쓰레기더미밖에 없는 것이냐”며 분개했다.
부안 인근 군산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대학생 김아무개씨(25)는 “그나마 부안에서는 변산해수욕장이나 격포 같은 관광지에서 여름철 한철 장사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핵폐기장이 들어오면 장사가 되겠느냐”며 “청정지역 오염도 문제지만, 먹고사는 생존권 문제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방폐장’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과 현 여권에 대한 배신감으로 이어졌다. 또 다른 대학생 김아무개씨는 “지난 대선 때 이 지역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지지를 표한 결과가 이것밖에 안되느냐”면서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공무원 이아무개씨(38)도 “대선 때에도 유세하러 한 번도 안 오더니, 대통령 된 뒤에도 아예 올 생각을 안한다”며 “인수위 시절엔가 억지로 억지로 전북대에 한 번 온 것이 전부였다”며 노 대통령의 전북지역 ‘홀대’를 꼬집었다.
▲ 노무현 대통령 탄생의 첫 시발점이 되었던 광주의 민심도 전주와 마찬가지로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그로 인한 허탈’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진은 광주 고속버스터미널. | ||
그는 민주당 신주류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개혁신당’에 대해서는 “무엇을 위한 신당인지 잘 모르겠다”며 “이제는 당보다 어떤 인물이냐가 선택의 기준”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전북지역 출신 현역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측면도 강했다. 삼천동에 거주하는 주부 소아무개씨(55)는 “김원기 의원이나 정동영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 만드는 데 역할도 많이 하고 해서 실세라고 하던데, 왜 자꾸 전라북도에 안 좋은 일만 생기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노 대통령과 여권에 대한 ‘배신감’과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지역민들의 실망감이 더해지는 것과 비례해서 전북지역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치신인들이 내년 총선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개혁신당에 몸을 실으려 하고 있고, 김현종 전 청와대 행정관 같은 이들은 역으로 ‘민주당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수호하겠다’며 민주당에 복당하기도 했다. 이밖에 이도 저도 아닌 무소속 출마를 통해 인물 본위로 총선에 도전하겠다는 인사도 적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7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새만금과 부안 위도 방폐장 문제 등으로 깊은 배신감에 휩싸인 전북지역 유권자들이 내년 총선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사다. 다만 현 상태로는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내년 총선에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 탄생의 첫 시발점이 되었던 ‘광주’ 민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주에서 광주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만난 60대 아주머니는 ‘노무현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아 글씨, 그 양반(노무현 대통령)이 워찌서 그런당가요?”라며 오히려 기자에게 반문했다. 이 아주머니는 “우짜튼지 정치를 잘 혀서 먹고살기 편안허게 해줘야 헐튼디…”라며 혀를 찼다. 광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회사원 장아무개씨(28)는 “대통령이 누가 되든 결국 똑같은 것 같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되면 좀 나아지려나 싶었는데 결국 요모양 요꼴”이라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 한때 광주상권의 중심지였던 양동시장이 대형 마트의 입점과 불경기로 인해 썰렁해졌다. | ||
그러나 젊은층에서 ‘정치 불신’ 현상이 강해 민주당이나 신당 모두 관심 밖에 있다면, 장년층과 노년층에서는 기존 민주당에 대한 향수와 지지가 여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광주 제1의 재래시장인 양동시장에서 만난 한 60대 할머니는 “그래도 민주당을 찍어야지”라며 “잘했건 못했건 꾸준해야지, 쪼깨 잘못됐다고 집안을 두 쪼각 내서야 쓰나”라고 말했다. 장을 보러 나왔다는 광주 서구에 거주한다는 한 아주머니도 “이랬다 저랬다 해싸면 못써. 사람이 좀 진득한 맛이 있어야지”라며 “민주당에서 대통령 나왔는디, 민주당 냅두고 신당 한다고 하면 이상허지. 안그런가?”라고 거들었다.
건어물점을 운영하는 장아무개씨(60)도 “밉든 곱든 민주당이 있어야지”라며 민주당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한때 광주 상권의 중심지로까지 일컬어졌던 양동시장은 대형 마트들이 광주에 속속 입점하면서 점점 그 세가 위축되고 있다고 한다. 양동시장에서 십수년째 짐을 날라왔다는 박아무개씨는 “나가 요새처럼 불경기는 처음 본당게요. 가게 문 닫고 나가는 사람도 점점 불어나고, 이러다가 오래 못가지 싶네요”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가 도대체 뭐요. 백성들 맘 편히 잘 먹고 잘살게 하는 게 정치 아니요. 참말로 답답혀요”라며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빨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