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실정을 고려하지 않는 CS평가 제도에 대해 지역농협의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농협중앙회. | ||
경상도의 한 지역농협 직원 A 씨는 지난해 황당한 일을 겪었다. 대기 고객이 40명이 넘는 상황에서 CS평가 직원의 전화가 걸려오자 “지금 고객이 많으니 조금만 있다 걸어주세요”라며 전화를 끊었는데 며칠 후 발표된 자신의 CS평가가 최하위였던 것. 평가항목 중 ‘전화응대’ 감점이 컸다. A 씨는 그 전까지만 해도 친절 사원으로 뽑힐 만큼 점수가 우수했다고 한다.
노조 관계자는 “CS평가가 진정 고객을 위한 것이라면 A 씨 행동은 칭찬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후 A 씨는 1개월간 의자를 치우고 선 채로 근무하는 징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지역농협 직원들에게 CS평가 직원은 저승사자나 다름없다고 한다. 잘못 보여 점수가 낮을 경우 큰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 평가자가 방문하는 날이면 그 농협은 ‘초긴장 모드’로 변한다.
아무리 고객이 많고 바쁜 상황이라도 평가자 전화는 만사 제치고 받을 정도다.서울지역의 한 조합장은 “평가 기간에 한 고객이 대출상담을 하러 왔다. 당시 대출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뿐더러 지점 상황도 좋지 않아 대출을 해줘서는 안됐지만 혹시나 감점이 될까 싶어 눈물을 머금고 해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 조합장은 “고객에게 불친절한 조합이라도 평가자가 찾아온 그 순간에만 잠깐 친절하면 우수 조합이 된다. 평소 우리를 자주 방문하는 고객들이 점수를 매기면 받아들이겠지만 10분 정도 들렀다 가는 평가자가 객관적이라고 보기는 힘든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지역 사정을 무시한 획일적인 평가도 지적받고 있다. 수년 전 상반기 CS평가에서 전국 1등을 차지했던 경기도의 한 지역농협은 같은 해 하반기 꼴찌로 추락했다.
고객들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감점 요인. 결국 그 농협 직원들은 휴일인 토요일 오전에 나와 건물 청소를 하는 징계를 받았다.실상은 이랬다. 창구직원이 자신과 평소 안면이 있던 고객에게 “형님 안녕하셨습니까”라고 인사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인사 항목 감점). 이러한 일은 특히 지역의 중·소형 농협에서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전라남도의 한 지역 농협 직원은 “순번대기표조차 없는 조그만 농협에서 고객들에게 ‘○○○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쳐다본다. 꼭 공식적인 말로 해야 친절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또한 조합원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논란도 있다. 여성의 경우 스타킹 미착용, 액세서리 착용, 노 메이크업 등이 감점 사유다.
심지어 몇몇 지역 농협에서는 자체적으로 스타킹 색상까지도 규제하고 있다. 남성은 두발상태가 불량하거나 코털 및 입 냄새를 제거하지 않으면 나쁜 점수를 받는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 한 관계자는 “입 냄새로 인해 감점 받은 사실이 공개된 한 조합원이 개인적인 모욕을 느끼고 회사를 관뒀다고 하는데 이는 개인의 인권을 무시한 것이다. 또한 지나친 외모 규제도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점수 발표 후 뒤따르는 징계 조치 역시 ‘적절치 못하다’는 게 많은 조합원들의 주장이다. 업무가 끝난 후 혹은 일찍 출근해 CS교육을 받는다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은 그나마 점잖은 편이라고. 점수가 나쁠 경우 3개월 동안 의자를 빼고 서서 근무하거나 1년간 인사 발령 유보 등의 불이익을 당한 적도 있다고 한다.
CS평가 폐지 주장을 놓고 농협중앙회와 일부 지역농협에서는 ‘개선에 초점을 맞춰 명품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는 살려야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농협중앙회 측도 “가뜩이나 농협중앙회가 원성을 듣고 있는 마당에 자칫 고객을 외면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형식적이고 획일적인 지금의 CS평가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진짜 고객을 위한다면 낙후된 환경을 정비하고 고객들의 불만사항을 각 지점별로 접수하고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