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상득 의원 | ||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이 지난 1월 15일 결산이사회에서 사임 의사를 표명하기 전부터 정·재계에선 ‘노무현 정권 때 회장직에 오른 인물’인 이구택 전 회장의 거취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임기를 1년여 남겨놓고 있던 이 전 회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할 것이란 내용이 골자였다.이는 이 전 회장 사임 의사 표명 이후 ‘낙하산’ 관측으로 이어지기까지 했지만 결국 정준양 현 포스코 회장(당시 포스코건설 사장)과 윤석만 포스코건설 회장(당시 포스코 사장)의 내부승진 경쟁으로 압축되고 정 회장이 승리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우제창 민주당 의원이 국회 예결위에서 “박영준 총리실 차장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포스코 회장 인사에 개입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포스코 외압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우 의원 주장에 따르면 박영준 차장과 천신일 회장이 지난 연말과 올 초 사이 윤석만 당시 포스코 사장, 박태준 명예회장, 이구택 당시 회장 등을 만나 차기 포스코 회장 관련 언급을 했다고 한다.이구택 전 회장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이 전 회장 퇴임을 종용하는 동시에 정준양 당시 포스코건설 사장을 차기 회장으로 밀어준 격이니 우 의원 말대로라면 그동안 나돌던 외압설이 대부분 사실이었던 셈이 된다.
이후 ‘윤석만 후보가 현 정부 실세들로부터 압력을 받은 사실을 CEO후보추천위원회 면접과정에서 털어놓았다’는 내용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알려졌다. 정준양 회장이 외압을 동원했다기보다는 윤석만 회장이 차기 포스코 회장직에 오르지 못하게끔 외압을 받았다는 것이 주된 내용인 셈.이 같은 인사 개입설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정황상 회장직 향배를 결정할 정도의 외압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CEO후보추천위원회 면접에 참석한 윤석만 회장이‘정부 인사를 만나 외압을 받았다’는 진술까지 할 수 있을 정도였다면 역설적으로 최고 권력에서 나온 외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논리다.
이 관계자는 “정말 압력이 거셌다면 특정 후보가 중도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 덧붙였다.천신일 회장이 윤석만 회장 등을 만났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포스코 측은 “천 회장은 예전에 포스코 협력업체 일에도 관여했고 세중나모는 전자여권 보급 이전까지 포스코 직원들의 여권발급 대행업무를 하기도 했다”며 “천 회장 입장에선 포스코가 큰 거래처인데 어떻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
| ▲ 박태준 명예회장 | ||
그러나 정준양-윤석만 두 후보가 차기 회장직 경쟁을 벌일 당시 이 전 회장은 정준양 회장을 후계자로 사실상 지목했다. 새 회장 선임 과정에서 정준양 후보가 힘을 받을 수 있었던 요인은 ‘김만제 전 회장을 제외한 역대 회장들이 모두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논리였다. 이구택 전 회장도 ‘엔지니어 대세론’에 힘을 보탰던 셈. 그러나 일각에선 “초대 회장이자 포스코의 신화적 존재인 박태준 명예회장도 엔지니어였느냐”라는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포스트 이구택’ 영순위였던 자신의 최측근 윤석만 후보 대신 정준양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구택 전 회장의 결단에 다른 배경은 없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 것이다.재계에선 정치권에서 잉태된 ‘포스코 인사 외압설’의 핵심을 정준양-윤석만 두 라이벌 간의 회장직 경쟁을 넘어 더 큰 배후세력 간의 신경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논란의 핵심인 박영준 차장은 현 정부 실세이기에 앞서 이 대통령 친형 이상득 의원의 오랜 측근 인사다.
박 차장은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시절인 지난 2005년 서울시 정무보좌역으로 옮기기 전까지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생활을 11년간 했다. ‘형님’ 이상득 의원은 포스코 본거지인 포항 남·울릉에서만 6선을 했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박영준 차장의 인사 개입설의 배후가 이상득 의원일 가능성에도 시선이 쏠리는 중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정치권력의 압력을 받은 인물로 지목된 윤석만 회장의 뒷배로 박태준 명예회장을 꼽는다.
지난 1월 포스코 전직 임원 등으로 구성된 중우회는 포스코 회장 선임에 앞서 ‘도덕적 결함이 있는 후보가 포스코 회장을 맡아선 안 된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당시는 정준양 후보 관련 비리 의혹이 나돌던 때다. 이후 CEO후보추천위원회는 정 회장 관련 의혹에 대해 ‘문제될 사안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박 명예회장을 위시한 포스코 원로들이 정준양 회장을 좋지 않게 평가했다는 시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포스코의 홍보·마케팅 등 대외업무를 총괄해온 윤 회장은 박 명예회장에 대한 예우·관리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그렇다면 이번 인사 개입 논란을 ‘박영준-윤석만 구도’에서 더 나아가 ‘이상득-박태준 세력 간 신경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일각에서는 ‘박태준 명예회장의 포스코에 대한 영향력’을 그 근거로 삼기도 한다.
즉 ‘윤석만 회장이 포스코 수장직을 꿰찰 경우 박 명예회장의 입김이 확대될 것으로 본 정치세력이 윤 회장 주저앉히기에 나섰다’는 해석인 셈이다. 정준양 회장 선임 이후 구성된 신임 사외이사진에 이 대통령 대선캠프나 자문단에서 일했던 인사들이 포함된 점도 논란이 된 바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