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월 30일 열린 유진그룹의 하이마트 인수종결식. | ||
유진그룹은 기업인수·합병(M&A)을 통해 사세를 확장해온 대표적인 기업군 중 하나다. 지난 1969년 군납 건빵회사로 시작, 유진기업(천안레미콘 고려시멘트) 유진투자증권(구 서울증권) 로젠택배 하이마트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계열사 42개를 거느린 재계서열 42위(공기업 및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의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지난 2007년 12월 하이마트 인수는 단연 화제를 모았다. 경쟁 상대가 재계서열 6위인 GS그룹이었기 때문. 당시 유진은 GS보다 500억 원 적은 돈을 입찰 금액(1조 9500억 원)으로 써내고도 하이마트를 거머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다윗이 골리앗을 눌렀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M&A를 진두지휘했던 것으로 알려진 유경선 회장에게는 ‘허를 찌르는 M&A 전략만큼은 재계 최고’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M&A의 귀재’도 지난해 재계에 휘몰아쳤던 ‘승자의 저주’를 피해갈 순 없었다. M&A를 통한 무리한 몸집 불리기가 유진그룹의 발목을 잡은 것. 결국 유진은 자금 확보를 위해 1800억 원을 들여 인수한 유진투자증권을 시장에 내놨다.
또한 유진기업 고려시멘트 기초소재 등을 유진기업으로 통합하고 보유 중인 부동산의 대부분을 매각했다.이러한 자구책으로 자금 경색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기는 했지만 2000억 원가량에 팔릴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유진투자증권 매각이 지난 1월 협상 막판에 실패로 돌아가 유동성 위기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였다.
증권가에 하이마트 지분 매각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한국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농협중앙회가 하이마트 지분 매각과 관련된 논의를 진행 중이라는 소문이 들려 확인에 나섰지만 구체적인 답변을 들을 순 없었다. 유진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자 여러 대안 중 하나로 고려했던 수준인데 좀 부풀려져서 증권가에 돌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하이마트 지분 매각설은 최근 <이데일리>의 보도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유진의 주채권은행인 농협중앙회가 그룹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유진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68.85% 중 일부 매각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진에서는 “농협중앙회로부터 계열사 지분 매각에 대해 어떠한 사항도 요청받은 적 없다”고 일축하면서 “하이마트는 영업이 호조를 보이고 있고 2011년 상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농협중앙회 역시 “유진은 독자적으로 생존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분 매각 요청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양측의 부인으로 하이마트 지분 매각설은 일단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농협중앙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유진의 자금 확보 방안의 일환으로 하이마트 지분 매각 가능성에 대해 검토를 해왔던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많은 대책 중 하나로 얘기가 오고갔던 것은 맞지만 공식적으로 언급된 적은 없다. 최근 실무진이 유진의 자구 방안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가와 함께 지분 매각 필요성과 관련한 보고를 한 적도 있어 100%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하이마트와 함께 유진투자증권 재매각설도 불거졌다. 지난 4월 초 나효승 유진투자증권 사장은 “앞으로 M&A는 진행되지 않을 것”이며 매각을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회의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6개월이 넘는 매각 추진 과정에서 직원들이 상당수 빠져나갔을 뿐 아니라 흑자를 유지해오던 실적 역시 지난해 적자로 돌아선 상황에서 유진이 계속 안고가기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더군다나 최근 증시가 다시 상승세를 보이는 점도 유진이 매각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유진 내부에서조차 매각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미 한 차례의 M&A 추진으로 그룹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손상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유경선 회장은 지난 2006년 서울증권을 인수할 당시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힌 지 1년 10개월 만에 매물로 내놨다.
이 때문에 매각 취소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진 측은 “올해 상반기 다른 방법으로 충분한 자금을 확보할 예정이다. 당초 밝힌 대로 증권사 매각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