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충우돌’ 내조기를 보여주는 드라마 <내조의 여왕>의 한 장면. | ||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내조가 집중 조명 받고 있지만 이전에도 많은 아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남편을 위해 내조를 해왔다. 오히려 단순히 ‘남자를 돕는다’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 최신 트렌드다.
전업주부인 O 씨는 남편의 고속 승진에 한몫을 했다. 그의 남편은 올해 초 입사 동기 중 가장 빠른 승진을 이뤄냈다. 비법은 영업 분야에서 실적 챙기기에 정신이 없는 남편 대신 부하직원을 잘 챙긴 데 있었다. O 씨는 남편의 아랫사람들에게 시시때때로 선물은 물론 가족처럼 자주 불러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남편의 회사는 상사에게 선물 같은 것을 하면 눈총을 받아요. 밑에 직원이 잘해야 실적도 올라가는 분야다 보니 오히려 아랫사람에게 잘하라고 하지요. 그래서 직원들이 이사할 때는 비싼 건 아니지만 실속 있는 그릇세트를 선물했고, 세 달에 한 번 정도는 집에서 식사도 대접했어요. 매년 송년파티도 준비했고요.”
O 씨가 그렇다고 상사들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상사 가족들과 함께하는 회식자리에서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상사의 연령대에 맞는 노래를 선정, 완벽하게 외워가는 등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였다. 남편이 지사에서 본사로 들어갔을 때도 O 씨의 내조는 빛을 발했다.
“성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 5시면 깨웠죠. 캐주얼을 입어도 되는 곳이었지만 일부러 늘 하얀 와이셔츠에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해 보이는 디자인의 넥타이까지 꼭 챙겼어요. 항상 깔끔한 겉모습이 그 사람을 나타낸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보사회에 걸맞게 바쁜 배우자 대신 인맥관리에 집중하는 내조 방식도 돋보인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과 사회생활 전반은 학연과 혈연, 지연으로 촘촘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H 씨의 꼼꼼한 인맥관리는 남편에게 큰 도움이 된다. 그녀는 친구나 이웃들에게 방법을 알려줄 정도로 주변에선 ‘내조의 여왕’으로 통한다. 그녀는 일단 남편이나 자신 주위의 지인들 명단을 작성했다. 명단을 완성한 후 생일 별명 연락처 특징에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시기 등을 체크해 기록했다. 관심사나 좋아하는 음식, 강아지 이름 등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적어놓았단다.
“명단을 작성해서 한 달 단위로 생일이나 기념일, 행사를 치르는 사람들을 미리 체크했어요. 특히 중요한 건 지인들의 자녀들도 챙기는 거예요. 예쁜 카드를 준비해 놓고 잊지 말고 보내면 큰돈 드는 것도,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죠.”
이렇게 남편 주변사람들을 챙긴 H 씨는 신문이나 잡지 등도 꾸준히 챙겨봤다. 또 다른 의미의 ‘정보화’를 위해서다. 남편의 업무나 인맥관리상 필요한 부분도 미리 스크랩해 두면 좋단다. 본인의 공부를 위해서나 남편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시 주도권을 갖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제 자신이나 혹은 남편에게 누군가 무엇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바로바로 답해줄 수 있게 하는 거죠. 평소에 스크랩도 많이 하고 특히 맛집 같은 경우 미리 알아두면 큰 도움이 되죠. 그럼 친절하고 발이 넓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기거든요.”
자신의 발전과 내조를 동시에 하는 방법도 ‘신내조’ 방식이다. 최근 인터넷 포털 야후코리아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남자들이 바라는 최고의 내조’에 전체 2103명의 응답자 가운데 28%(587명)가 ‘맞벌이로 가계 경제 부담을 나누는 것’이라고 답했다. 경제 불황으로 인해 남편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부동산 컨설팅사에서 일하는 Y 씨. 그는 결혼 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후 현재의 직장에 근무하고 있다. 결혼 전에는 외국계 항공사에서 근무했지만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둔 터였다.
“결혼 후 얼마간은 다시 일할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일을 하다 그만두니 답답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건축설계를 하는 남편 때문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에 관심을 갖게 됐죠. 처음에는 중년을 훌쩍 넘기신 분들이 학원에 많아 함께 다니기가 쑥스럽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가계에 보탬도 되고 중개사라는 직업에 자부심도 생겼어요.”
Y 씨는 요란스럽게 내조를 하는 것보다는 자신도 발전하고 남편의 경제적인 부담도 덜어주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에서 ‘맞벌이’ 다음으로 남편들이 바라는 최고의 내조로는 ‘나만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꼽혔다. 드라마상 천지애처럼 회사까지 무서운 치맛바람을 휘두르는 것은 오히려 가장 부담스러운 내조로 여겨졌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것이 제일 필요하다고 답한 것이다.
결혼 10년차인 J 씨는 남들처럼 눈에 띄는 내조는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남편에게 고마운 아내라는 소리를 자주 듣고 있다.
“비서처럼 남편을 돕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잔소리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꺼내서 시끄럽게 만들지 않고 좋아하는 취미생활이나 쉬는 날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J 씨의 남편은 음악동호회에 나가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는 동호회 멤버들과 모임을 갖는데 끝나고 나면 술자리로 이어지게 마련. 늦게 귀가해도 J 씨는 남편을 타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건전한 취미생활이라고 여긴다. 업무로 받는 스트레스 외에는 신경 쓸 일이 없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내조라는 것이 J 씨의 생각이다.
“더 큰 돈 드는 술집에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에 비하면 굉장히 바람직하죠. 동호회 활동을 하고나면 피곤해서 그렇게 많이 마시지도 않는 데다 그 정도는 누구나 하는 것 아닌가요? 좋아하는 것을 못하게 하면 그만 한 스트레스가 또 어디 있겠어요.”
최근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기혼남녀 직장인 5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상대 배우자의 내·외조가 직장생활에 미치는 영향으로 51.1%가 ‘업무능력 향상’이라고 답했고, 그 다음으로 ‘직원들과의 관계형성’이 44.6%로 조사됐다. 경기침체로 불안한 직장인들에게 ‘내조의 여왕’ 혹은 ‘외조의 황제’가 필요한 시대인 듯하다.
이다영 프리랜서dyle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