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C가 지분 77.13%를 보유한 자회사 SK텔레시스는 지난 5월 6일 ‘계열사 앤츠개발에 155억 원을 연 이자 8.5%에 대여한다’고 공시했다. 거래목적은 운영자금 대여. 앤츠개발은 상품 종합 도매업체로 지난해 5월 31일 기준 자본금 33억 원, 자산총액 32억 원의 비상장 법인이다. SK텔레시스가 운영자금용으로 대여해준 금액이 앤츠개발 자산총액의 다섯 배에 가까운 셈이다.
앤츠개발은 지난해 7월 1일 SKC 계열로 편입된 회사. 당시 SKC 공시 내용엔 ‘지분취득으로 인한 계열 편입’이라 나와 있다. 그런데 지분 매입주체는 SKC나 계열회사가 아닌 최신원 회장이다. 현재 앤츠개발 지분 90.91%가 최신원 회장 몫으로 돼 있으니 사실상 개인회사로 볼 수 있다.
앤츠개발 등기이사 대부분도 최신원 회장과 돈독한 관계의 인사들이다. 앤츠개발 법인등기부에 이사로 등재돼 있는 이종성 SK텔레시스 부사장은 SKC 회장실 임원(전무)을 지내며 최신원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인물. 앤츠개발 감사인 김한원 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는 고 최종건 회장의 뜻을 받들어 장학·교육사업을 펼쳐온 선경최종건재단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최신원 회장의 사재 출연으로 만들어진 이 재단은 ‘SK최종건재단’이란 이름으로 설립됐다가 지난 2004년 6월 선경최종건재단으로 변경됐다. 그룹 CI가 선경에서 SK로 변경된 것은 최종건 창업주 동생이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선친인 고 최종현 2대 회장이 있던 1997년의 일. SK 대신 창업명 ‘선경’을 붙여 선친의 유지를 기리려 했던 셈이다. 재단 이사장은 최종건 창업주 부인 노순애 씨며 최신원 회장도 이사로 등재돼 있다.
이렇게 최신원 회장 개인회사나 다름없는 앤츠개발이 자기자본의 다섯 배에 가까운 돈을 SKC 계열사로부터 끌어온 점은 향후 이 회사에 대한 SKC의 물량 지원까지 예상할 수 있게 해준다. 만약 최신원 회장이 그룹 물량 몰아주기로 자신이 보유한 비상장 법인을 알짜 회사로 키운 뒤 이를 상장시키는 재벌가 관행을 따른다면 엄청난 상장차익을 손에 쥘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도약을 위한 준비 단계인 앤츠개발을 벌써부터 사촌동생 최태원 회장의 SK C&C와 비교하는 시선도 있다. SK C&C는 최태원 회장이 지분 44.50%를 보유한 사실상 개인회사로 그룹 물량을 통해 성장해왔다. SK그룹은 지주회사 요건 충족을 위한 순환출자구조(SK C&C→SK㈜→SK텔레콤·SK네크웍스→SK C&C) 해소 방법으로 SK C&C 상장을 추진 중이다. 이 경우 최태원 회장이 누릴 상장이익에 대해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에선 “회사기회 유용을 통한 부당이익 취득”이라고 비판해 왔다.
그동안 재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최신원 회장이 돈 생기면 쓰는 데가 딱 두 군데’란 말이 회자됐다. 첫 번째로 사회 헌납을 들 수 있다. 최신원 회장은 지난해 말 대기업 회장 중 처음으로 고액기부자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가입에 이어 지난 3월 미국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로부터 ‘기부 영웅’에 선정됐을 정도로 왕성한 기부 활동을 펼쳐왔다.
최 회장이 돈 생기면 쓰는 나머지 한 군데는 바로 SKC 주식 매입이다. 최신원 회장의 친동생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은 최태원 회장의 SK그룹에서 SK케미칼을 따로 떼어낼 수 있을 정도의 지분을 확보한 상태다. 반면 SKC의 경우 최태원 회장의 SK㈜가 42.50%를 보유해 확고부동한 최대주주 지위를 점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SKC 지분 늘리기에 매진했지만 최신원 회장의 지분율은 3.17%에 불과하다.
최신원 회장은 지난해 말 SKC 계열사 SK텔레시스 지분 8만 8550주(지분율 1.10%)를 사들여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몇 달 사이 최태원 회장이 애지중지하는 SK증권 지분 18만 주(지분율 0.06%)를 확보했고 SK텔레콤 주식 500주도 사들였다. 그러나 정작 분가에 필요한 SKC 지분율은 올해 들어 0.05%포인트 늘리는 데 불과했다. SKC 주가가 SK증권의 열 배 정도 되는 만큼 돈을 더 많이 투자해도 지분율에선 크게 표시가 나지 않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들의 ‘세속적 잣대’에선 SKC 지분 사들이기에 한 푼이 아쉬울 것 같아 보이지만 최신원 회장은 돈 나올 구멍마저 스스로 틀어막고 있다.
지난 3월 9일 “회장인 나부터 회사에서 받는 혜택을 줄이겠다”며 자신의 연봉을 삭감한 데 이어 3월 17일 노조가 임금동결과 상여금 반납을 결의하자 “경제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임금 전액을 반납하겠다”고 선언했다. 수많은 기부활동과 회사를 위한 희생에 주저하지 않는 최신원 회장이 다른 재벌가에서 해온 것처럼 개인회사 밀어주기로 SKC 지분율을 높일 발판을 마련할지 궁금증 어린 시선이 늘 듯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