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유승민·정두언·이재오 의원. 이들을 지켜본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선 그렇게 튈 필요가 없다는 의식이 팽배해져 있다. 이종현 기자
“더없이 한가하다.”
최근 새누리당 주요 당직을 내려놓은 한 중진 의원은 6월 임시국회로 한창 바쁠 법한 지금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말인즉, “18대 국회에서는 당의 각종 회의나 의원총회, 국회 본회의 등 공식적인 일 말고도 해야 할 일들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지금은 공식적인 행사 말고는 할 게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 ‘해야 할 일들’이 뭐였냐고 물으니 “과거엔 아침에 누가 모임을 하자해서 가보면 세력을 모아서 이걸 한 번 해보자는 이야기, 저녁 술자리에 가면 형님(선수가 높은 리더 격을 뜻함)들이 ‘동생, 아우, 후배’ 하며 서로 줄세우기에 바빴다”고 답했다. 알게 모르게 골프도 자주 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누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사실 그런 움직임 자체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아무리 정권 초반이라 하지만 지금 여의도는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경제민주화니, 일자리니, 노동 입법이니 하는 정책적인 갈등 말고는 전개되는 ‘정치 국면’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재·보궐 선거로 복귀한 김무성 의원을 제외하고는 전혀 두각을 보이는 인물이 없다. 정국 분석에 능한 한 정치권 인사의 말은 이렇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에는 얼마나 당이 시끄럽고, 또 역동적이었습니까. 정두언 의원은 소위 ‘정두언의 난’을 일으켜 청와대 권력 3인방을 정조준하는 쓴 소리 바른 소리를 해댔고, 이재오 의원 역시도 ‘만사형통’이라던 이상득 전 의원과 대척점에 서면서 어떻게든 정부가 바로 서고 바로 가도록 했지요.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는 찍소리도 못하고 있어요. 박근혜 정부가 잘해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할 만한 깜냥도 못 되는 사람이 새누리당 현 국회의원 전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은 이를 두고 지나친 학습효과 탓으로 돌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유승민 의원이 “제대로 된 보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등 박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을 정조준 했다가 사이가 소원해졌다. 정두언 의원은 본인이 겨눴던 이 전 부의장과 일련의 일들로 엮어 송사 중인 데다, 이재오 의원은 개헌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지만 힘이 달려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솟아오른 못이 쑥 하고 박힌 것을 본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선 그렇게 튈 필요가 없다는 의식이 팽배해져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지부진한 경제민주화 이슈와 최근 남북당국회담 무산을 두고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을 두고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 “무능력해도 너무 무능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의원 보좌관은 “솔직히 이번 회담 무산은 ‘격(格)’을 따진 우리 정부 탓이 아니냐.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결국 차관이니 장관이니 따지다 큰 상처가 난 것인데 누구 하나 지적하지 않고 있다”며 “경제민주화도 기업을 옥죌 것이 아니라 불공정한 거래를 개선하는 쪽으로 여당의 색깔을 내야 하는데 전혀 그런 색감이 없다”고 지적했다. 소속 의원에게 이런저런 건의를 해도 “내가 뭐라고 나서겠느냐”는 힐난만 돌아왔다고 그는 전했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의 체질 자체가 비정치적이란 이야기도 있다. 과거에는 정치판 밑바닥에서부터 구른 당직자 출신이 등용되거나, 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던 정치적 인사를 발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19대 국회에서는 각 직능 분야 전문가들을 ‘모셔와’ 대거 공천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절반이 넘는 이런 신인들은 정치 자체에 관심도 없고, 재선 이상급에서는 정치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샌님’들만 남아 정치 교육이 전혀 대물림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이들은 정치보다는 정책이라는 생각이 커 보좌관도 대부분 정무 기능보다는 정책 기능을 우선시해 정치 실종을 불러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관계지향적인 정치인이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 동향을 파악하는 한 기관 관계자의 말이다.
“사실 정치란 것이 상대가 있는 싸움인데 새누리당으로선 너무 약체(민주당)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파트너가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지경이니 가만히 있으니까 점점 편해지는 것이다. 한 의원은 올해 국내에서보다 국외에 더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할 일이 없으니 밖으로만 도는 것 아니겠느냐.”
앞서의 정치권 인사는 “허수아비형 당 대표(황우여)와 친박 최고 실세 원내대표(최경환)로 꾸려진 새누리당 지도부가 꾸려지면서 정치 실종 사태가 더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며 “정치적 행위가 청와대에 직보될 것이기 때문에 대놓고 나설 이들은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재선들 모임의 멤버인 한 의원은 ‘왜 움직임이 없느냐’는 질문에 “영 신통찮다”는 말부터 했다. 준비된 것도 많고, 아이디어도 산적해 있는데 언제 써먹어야 할지, 그들 중 누가 깃발을 들어야 할지에 대해선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타이밍만 보고 있다”는 그는 “사실 재선급 전원이 참여한 것이 아니어서 대표성도 없고, 친이계나 중도파 의원들이 주도한 탓에 힘이 실리지도 않고 언론이나 여론의 관심도 적은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국회 의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집권 여당에서 정치행위가 사라지다 보니 국회 인근 식당들이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라고 한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