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에 몰린 두 남자의 칩거가 길어지고 있다.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과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그 장본인. 특히 윤 전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열었던 지난 5월 11일 이후 자택에서 모습을 감춘 지 한 달이 넘어가면서 그의 근황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했다. 현재 두 사람은 각각 ‘신변 이상설’, ‘이사설’, ‘도피설’ 등등의 갖가지 소문에 휩싸여 있지만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상태다. 베일 속에 가려진 두 사람의 근황을 추적해봤다.
윤창준 김포시 자택.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자택 1층에 있는 우체통은 윤 전 대변인의 칩거를 방증하듯 정리되지 않은 우편물이 방치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자택 현관문 앞에서 2시간가량 숨 죽여 기다려봤지만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나 윤 전 대변인이 문을 열어줄까 초인종을 눌러봤다. 초인종이 한창 울리다 소리가 뚝 끊겼다.
곧바로 두 번째 초인종을 눌렀을 때는 소리가 더욱 빨리 끊겼다. 빨리 끊기는 초인종 소리가 윤 전 대변인의 인터뷰 거부 의사를 밝히는 듯했다.
윤 전 대변인과 같은 아파트 단지 내 주민들은 윤 전 대변인의 모습을 통 보지 못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윤 전 대변인의 신변이 걱정된다는 주민도 상당했다. 단지에 오래 살았다는 한 주민은 “지난해에 아파트 7층에서 한 사람이 투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혹시 윤 전 대변인도 혹시나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라고 전했다.
서대문구에 위치한 윤 전 대변인의 오피스텔도 성추행 사건이 불거진 이후 드나드는 사람이 없는 듯 고요했다. 사건이 있기 전 이 오피스텔은 윤 전 대변인이 사무실로 이용하며 매주 드나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동안 윤 전 대변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지만 우편물은 정기적으로 누군가가 거둬가는 듯 우편함은 깨끗한 상태였다.
윤 전 대변인의 칩거가 길어지면서 여러 가지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윤 전 대변인이 그 와중에도 치킨을 배달해 먹었다더라”는 소문이다. SNS를 통해 급격하게 퍼져 화제가 됐던 이 소문의 진위는 현재 오리무중이다. 해당 치킨집으로 지목됐던 업소 관계자는 “소문이 난 이후 전화가 빗발쳐 영업에 지장을 줄 정도다. 치킨 배달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최근 불거진 소문 중에는 부인과의 ‘별거설’도 있다. 성추행 파문이 일파만파로 퍼져 직장에서까지 난처한 상황에 처한 부인이 결국 따로 나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주민은 “그제(6월 3일)만 해도 단지 앞에서 윤 전 대변인의 부인과 아들의 모습을 봤다. 부인이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가더라”라고 귀띔했다.
지난 13일에 불거졌던 “윤 전 대변인이 네티즌을 모욕죄로 고소했다”는 소문 역시 하나의 해프닝으로 밝혀졌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윤 전 대변인에 대한 게시물에 댓글을 남긴 한 네티즌이 ‘경찰출석요구서’를 받았다며 글을 올려 소문은 일파만파로 번졌지만, 윤 전 대변인이 고소한 것이 아니라 다른 네티즌이 고소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윤 전 대변인의 칩거가 길어지면서 ‘청와대와의 교감설’, ‘신변이상설’, ‘자택 탈출설’ 등 여러 소문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장본인인 윤 전 대변인은 자신을 둘러싼 소문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택에 칩거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상태다.
원세훈 서울 남현동 자택.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원 전 원장의 자택은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이 도마에 오른 지난 3월 중순에 일부 이삿짐이 빠져나간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한동안 자택에 사람이 살지 않는 듯 잠잠해 ‘이사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에 앞서의 여성은 “줄곧 이 집에 머물렀는데 이사라니 말도 안 된다. 미국에 도피하려고 했다는 얘기도 나왔는데 잠깐 여행 좀 갈까 해서 그런 것이지 도피설 역시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인근 주민들은 “이삿짐이 나가는 것은 봤어도 들어오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주민은 “원 전 원장의 부인을 며칠 전에 봤는데 원 전 원장은 좀처럼 보지 못했다. 원 전 원장이 자택 정문이 아니라 후문으로 몰래 들락날락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라고 귀띔했다.
한편 지난 11일 검찰은 원 전 원장에 대해 선거법 위반을 적용하면서도 불구속 수사를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원 전 원장의 여러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의 시행 여부에 대해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원 전 원장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그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